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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196] 자연을 걷다

by 걷고 2021. 3. 28.

날짜와 거리: 20210326 – 20210327  24km

코스: 서울 둘레길 우이동 구간, 우이천, 북서울 꿈의 숲, 오패산 진달래 능선

평균 속도: 5km

누적거리: 3,530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봄소식을 전하는 비가 내린다. 비를 맞으며 북한산 둘레길과 우이천을 걸었고, 오패산에 올라 진달래 능선을 걸었다. 북한산에도 진달래 능선이 있지만, 오패산만큼 많이 피지는 않는다. 오패산은 마치 전국의 모든 진달래를 모아 놓은 느낌이 들 정도로 산 전체가 진달래로 가득하다. 산 길 옆에 핀 개나리와 구석구석에 품격을 유지하며 고고하게 피어있는 모란도 볼 수 있다. 모란은 귀부인 느낌이 든다면, 진달래는 활짝 핀 젊은 청춘

의 느낌이 든다. 개나리는 어린이 집에 다니는 병아리를 기억나게 만든다. 어린이 집에 다니는 손녀가 떠오른다. 그런가 하면 길가에 있는 수양버들은 세상의 모든 풍파를 겪어낸 노인네를 연상시킨다. 우이천 둑길에 가득한 벚꽃은 마치 도열해 있는 절도 있는 의장대가 떠오른다. 꽃마다 느낌이 다르다. 

빨래골에서 흰구름길과 소나무길을 지나 우이동 솔밭 공원으로 가는 길은 걷기에 편안한 길이다.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걷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위축되지 않고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답답함을 떨치기 위해 건강한 활동을 하고 있다.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산을 활기차게 만든다.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맑은 물과 활기찬 물소리는 산의 건강함을 표현하고 있다. 산은 이렇게 물, 바위, 꽃, 나무, 그리고 찾아오는 사람들로 활기를 띤다. 가끔 물이 없는 계곡의 바위를 보면 삭막함과 외로움, 그리고 안타까움이 떠올랐는데, 비록 많은 물은 아니지만 맑은 물이 고여있는 계곡과 그 안에 있는 바위와 작은 돌들이 보기 좋은 조화를 만들어 낸다. 

 솔밭 공원 바로 옆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굳이 집 안에 정원을 만들 필요가 없다. 문 밖으로 나오면 넓은 정원이 펼쳐진다. 굳이 사람들을 고용해 나무와 정원을 가꿀 필요도 없다. 정부에서 관리를 해 주는 정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공원을 걸으며 홀로 눈이 쌓인 이 길을 걷는 상상을 해 봤다. 여름에 겨울이 떠오른 것이 신기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공원 눈을 밟으며 조용히 걷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차분해진다. 제법 넓은 공원에는 운동기구도 있고,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함께 걷는 길동무들은 걷기 마니아들이다. 원래 계획은 솔밭공원을 지나 북한산 우이역에서 마칠 계획이었는데, 길동무 한 사람이 우이천 벚꽃 길을 걷자며 길 안내를 나선다. 굳이 마다할 필요도 없고, 나 역시 끝나기에는 뭔가 조금 아쉬운 느낌이 든다. 비가 차분이 내리는 우이천을 걸으며 오리와 원앙, 백로가 비를 아랑곳하지 않고 유유히 떠다니며 가끔 주둥이를 물 밑으로 넣어 먹이를 찾기도 한다. 한 쌍의 원앙이 사이좋게 물을 가르며 유유히 가는 모습이 한가롭고 편안해 보인다. 우이천 곳곳에는 잉어 같은 아주 큰 물고기 떼가 모여있다. 불광천에서도 그런 물고기 떼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는다. 가끔 불광천에서는 물이 얕아서 그들이 살고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며 안타깝게 느껴진 적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개천이 그들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끔 다른 터전에 와서 고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같다. 

 

 닭볶음탕을 주문해서 술 한잔 곁들여 길동무들과 뒤풀이를 했다. 우리 네 명이 아마도 그날 받은 손님일 것이다. 주인은 그럼에도 활기찬 모습으로 음식을 내오며 씩씩하게 살고 있다. 그런 강한 생명력이 안쓰럽기도 하면서도 보기 좋다. 힘들다고 위축되어 있지 않고, 그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도 않으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일반 민초의 모습을 보며 희망을 찾게 된다. 근처 커피숍으로 이동해서 쿠키와 함께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버스와 전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 전철 속에서 잠시 졸기도 했다. 약 16km를 걷고 나서 술 한잔 한 취기 때문에 단잠을 잘 수 있었다. 그런 잠깐의 잠은 보약이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배낭을 정리했다. 귀찮아도 정리하지 않으면 다음 길을 가는데 번거로움이 발생한다. 오늘 일은 오늘도 모든 정리를 마치고, 다음 길을 위해 준비를 철저히 하면, 다음 길 떠나기가 훨씬 더 수월해진다. 귀찮아서 오늘 마무리를 잘하지 못하면, 그 여파가 다음 길에 영향을 미친다. 모든 일이 그렇다. 오늘의 끝이 내일의 시작이다. 오늘 마음속에 들었던 느낌 역시 오늘로 마무리를 해야 한다. 내일은 새로운 시작이기에 오늘의 기분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태도이다. 내일은 오늘의 자신이 아닌 새로운 자신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과거의 자신 속에서 살아간다면 영원히 변화할 수도 없고, 따라서 미래를 만들어 나갈 수도 없다. 

 

 많은 꽃을 볼 수 있었다. 개나리, 진달래, 모란, 벚꽃, 수양버들,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들. 그들의 이름을 모르는 것이 그들에게 미안하다. 그 꽃들 역시 오늘 피고, 내일 진다. 그들은 그런 변화에 역행하지도 않고, 거스를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운명을 수용하며 부드럽고 유연하게 살아간다. 비가 와서 잎이 떨어져도 비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삶이기에 수용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간다. 욕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만이 자신의 삶에 불만을 품고 살아간다. 주어진 운명을 수용하면 편한 것을. 그런데 그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 통찰을 통해서 엄청난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야만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연을 걸으며 자연의 이치에 수긍하는 초목을 보며 배움을 얻게 된다. 그들은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라고 말 없는 가르침을 펼친다. 함께 한 길동무들과 자연에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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