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323
코스: N/A
평균 속도: N/A
누적거리: 3,48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TV 프로그램에 과거에 출연했던 사람들 중 인기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간의 변화를 확인하는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10년 전, 혹은 20년 전의 모습과 지금의 변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얼굴에 주름살은 늘고 허리는 휘고 몸동작이 느려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열정적이고 꾸준히 자신의 일을 하며 활기차게 살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과거와 지금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노화로 인한 신체의 변화 외에 별다른 차이점을 찾을 수 없다. 과거의 모습이 쌓여 지금의 모습이 된다는 진리를 그분들의 얼굴과 삶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오히려 여유와 품위를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는 노래 가사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거제도에서 ‘매미 성’을 쌓고 있는 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소실된 밭을 지키기 위해 쌓은 방벽이 지금의 ‘매미성’이 된 것이다. 10년 전에도 성을 쌓고 있었는데, 요즘도 여전히 성을 계속해서 쌓고 있다. 한 가지 변화라면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성 주변에 놀러 와서 사진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이 자신의 밭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태풍 방벽이 아름다운 관광지로 변한 것이다.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이 많이 들어섰다고 하니,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오늘도 성 쌓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있다. 창고를 보여주는데, 창고의 천정에 구멍을 뚫어 놓아 자연 채광을 통한 조명 효과를 연출하였고, 벽에는 페트병을 이용한 칼라 조명과 장식을 만들어 놓았다. 성을 쌓아가시며 스스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멋진 성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혼자 잠시 그분의 과거 상황을 상상해 보았다. 어쩌면 그분에게 밭은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밭의 경작물을 모두 잃어버린 후 좌절감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일 년 농사가 무의미한 고생이 되었고,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부인과 자식들에게 미안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태풍 앞에 속절없이 무너진 밭은 그분의 삶 자체였을 수도 있다. 좌절 속에 무기력하게 하늘만 쳐다보고 원망만 하며 살 수 없는 그는 뭔가 할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는 태풍에게 당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이다. 가장으로서 역할을 하기 위해, 또 무너진 자신을 회복하기 위해 그는 방벽 쌓는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비록 사서 하는 쓸데없는 고생이라고 주위 사람들이 수군대거나, 당장 그 일이 삶에 보탬이 되지 않더라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해 냈을 것이다. 10년 후인 지금도 그는 매일 무거운 돌을 나르며 성을 쌓고 있다.
그를 보며 단편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의 주인공 알제아르 부피에가 떠올랐다. 부인과 자식을 여의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황무지에 정착을 한다. 그 부근에는 나무로 숯을 만들어 파는 사람들이 서로 경쟁하듯 벌목하며 이웃과 서로 싸우며 살고 있었다. 그는 그 마을을 벗어나 홀로 황량한 야산에 정착하며 매일 상수리 열매 100개를 정성스럽게 골라서 심는다. 그가 하는 일은 열매를 고르고 심는 일이 전부이다. 집 주변에서 심다가 나중에는 먼 곳까지 가서 심는다. 어떤 해에는 나무 1만 그루가 모두 죽는다. 그는 다음 날 아무런 일도 없듯이 다시 나가 다른 품종의 나무를 심기 시작한다. 그 땅은 심지어 그의 소유도 아니다. 그에게 이미 자신의 소유이건 아니건 별로 중요하지 않고, 오직 심을 수 있는 열매와 땅만 필요할 뿐이다.
전쟁 중에 군수 물자를 위해 벌목을 해도, 그는 그런 사실조차도 모른 채 나무를 심는다. 너무나 울창한 숲이 되어버린 곳에서 벌목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판단한 정부는 벌목을 중단하기도 한다. 나중에 정부 사람과 삼림 전문가가 와서 산을 보호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그가 그 나무를 모두 심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도 없고, 그는 굳이 자신이 심었다고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아마 자신이 심은 나무이고 숲이라고 얘기해도 그들은 믿지 않거나 못했을 것이다. 황량한 야산이 물이 넘치고, 꽃이 만개하고, 새들이 찾아오는 아름다운 산이 되면서 사람들이 찾아오며 마을이 들어서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만든 산에 터전을 잡고 행복하게 살아간다. 한 사람이 산과 마을을 이룬 것이다.
좌절과 절망 속에서, 그리고 앞이 보이지 않는 깜깜한 터널 속에서 ‘매미 성’의 성주와 알제아르 부피에는 같은 일을 하고 있고, 그 결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아간다. 자신의 절망을 오로지 맨 몸으로 겪어내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그들은 자신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생각도 하지 않고 단지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일과 자신이 하나가 된 것이다. ‘왜 그 일을 하는가?’라는 질문조차 그들에게는 무의미한 질문이 될 뿐이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자신의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명분, 손익, 결과, 기대감도 그들 앞에서는 저절로 무너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삶이라고 그들은 굳이 말로 하지 않는다. 그냥 그들은 그렇게 살아갈 뿐이다. 수행, 삶, 종교, 대의명분 등 어떤 말도 그분들의 모습 앞에서는 저절로 힘을 잃어버린다. 그저 성스럽고 아름다울 뿐이다. 이 말도 거추장스럽다. 그저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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