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거나 어떤 모임에서 얘기를 나눌 때 주로 듣는 편이다. 듣는 것을 좋아하기보다는 말하는 재주가 없기 때문이다. 대화 속에 끼어들지 못해서 가끔 소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소외감은 모임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거나 또는 그 모임 참석을 꺼리는 이유가 된다. 내가 하는 말에 피드백이 없이 바로 다른 대화 주제로 넘어가거나 다른 사람이 말을 받아 바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가끔은 지금 진행 중인 대화와 맥락이 닿지 않는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이 나의 말에 귀 기울여 듣지 않고 피드백도 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한다. 모임에는 늘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다. 재미있게 얘기하는 친구도 있고, 다양한 주제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모두 풀어내는 친구도 있고, 모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신의 일상을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친구도 있다. 그들의 그런 재주나 능력을 부러워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얘기를 듣는 것이 매우 불편하고 시간과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들의 주제는 쓸데없는 정치 얘기, 자신의 자랑 얘기, 사회와 남을 비난하는 얘기, 자신의 무용담이 대부분이다. 내가 전혀 관심 없는 얘깃거리다.
한 사람이 자신의 힘든 경험이나 고민거리 같은 개인적인 얘기를 할 때 처음에는 듣는 척하다가 결국 자신의 얘기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친구들을 보면 밉기도 하다. 친구의 힘든 얘기를 경청해 주면 좋을 텐데, 오히려 힘들게 꺼낸 친구의 얘기를 자신의 과거 경험과 연결시켜 친구의 입을 막는 경우도 있다. 또는 친구의 고민거리를 들으며 그 고민은 자신의 고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는 경우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다. 큰 목소리로 좌중을 휘어잡으려는 친구들을 보면 오히려 우습게 보인다. 대부분 사람들은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 있다. 말을 끊임없이 이어지는데 대화는 없다. 소통은 없고 불통만 있다. 이런 의미 없는 말은 소음 공해가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사람들과의 모임을 많이 줄여나가고 있다. 에너지와 시간과 경제력은 유한하다.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줄어드는 것 같다. 그래서 이 세 가지를 지불해도 아깝지 않은 모임에 나가는 편이다. 나의 이런 모습이 이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제는 타인 시선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어차피 내 인생은 주변의 평가와는 상관없이 진행된다. 또 나의 삶이 어떻게 되든 대부분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내게 관심이 없는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하는 언행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나를 아끼고 존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나면 즐겁고 삶의 활력을 느낀다. 지금 즐겁게 만나고 있는 모임이 있다. 한 모임은 대학시절 영어회화 클럽에서 만난 선후배 모임이다. 오랜 기간 만나 온 만큼 서로에 대해 또 가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예전에는 서로 불편한 경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조차 추억이 된 끈끈한 모임이다. 서로의 건강을 챙기고, 생일도 챙기며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멋진 모임이다. 사회에서 만난 모임으로 20여 년간 알고 지낸 친구들도 있다. 대부분 불교에 관심을 갖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는 영혼이 맑은 친구들이다. 아직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멋진 친구들도 있다. 헤드헌팅 업무를 하며 만난 친구들로 기업 및 지자체 채용 전문 면접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다. 그리고 길에서 만난 좋은 길동무도 있다. 이 정도의 친구들을 갖고 있다면 나름 잘 살아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한다.
친구의 정의는 무엇일까? 내가 내린 정의는 ‘상호 존중과 배려’를 하는 사람’이다. 일방적인 친구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역량, 사회적 지위, 나이, 또는 어떤 특정 분야의 우열로 인해 친구 관계가 어느 순간 한쪽으로 기울게 된다면 이미 친구가 아니다. 대부분 모임은 목적을 갖고 만난다. 이런 이유로 인해 비슷한 환경의 사람들이나, 또는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친구들끼리 모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친구사이라기보다는 ‘이해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언제든지 이해득실에 따라 이합집산이 될 수 있는 모임이다. 참다운 친구는 서로의 상황과 상관없이 늘 서로 존중하고 아껴주고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부침을 겪게 된다. 그런 부침 속에서도 늘 한결같은 친구를 친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친구들과의 만남과 대화는 즐겁다. 딱히 대화를 주도하는 사람도 없다. 물론 말을 많이 하는 친구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가 대화를 주도한다는 생각조차 하지도 않는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얘기를 편안하게 하고 그 얘기를 흘려듣지 않고 경청한다. 서로를 존중하기에 각각의 얘기가 바로 나의 얘기가 되고 우리의 얘기가 된다.
대화 속에 끼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 적도 있고, 반대로 대화의 주인공이 된 적도 있다. 주인공이 되면 한편으로는 즐겁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럽기도 하다. 어떤 모임에서도 리더가 되거나 주인공이 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편이다. 또 사람들이 내게 칭찬을 해주면 어색하고 쑥스러워하는 편이다. 칭찬을 받거나 주변의 지지를 받아본 경험이 없어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칭찬받고 싶고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마음도 갖고 있다. 상반되는 감정이 함께 존재하고 있다. 요즘은 친구들 모임과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지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모임에 나가면 굳이 내 얘기를 할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하지만 동시에 하고 싶은 얘기는 서슴지 않고 얘기하는 편이다. 얘기를 하지 않아도 소외감을 느끼지도 않고, 어떤 얘기를 해도 모임 구성원의 피드백에 연연하지도 않는다. 나의 얘기에 경청해 주고 나를 인정해 주는 느낌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말을 하거나 안 하거나, 피드백이 있거나 없고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임에서 나를 얼마나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들의 인정과 존중은 일상생활에서 보이는 나의 태도에 달려있다. 결국 나의 태도나 일거수일투족이 나를 만들고, 내가 만든 나의 모습 덕분에 또는 그로 인해 상대방의 태도가 결정된다. 하루하루 잘 살아가는 것 외에 다른 것은 필요치 않다. 잘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나와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나의 친구는 내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친구들 역시 나를 그렇게 대해 주길 바란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본다. 과연 나는 친구들을 또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지내왔는가? 아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나름 좋은 환경이나 상황에 있을 때에는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기도 했다. 또 그 반대의 경우에는 친구들이 잘 되는 모습을 보며 배알이 꼴린 적도 있었다. 내가 스스로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런 대우를 원하고 있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 화를 내거나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거나, 그들을 비난하거나, 그들을 떠났다. 그럼에도 지금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나의 단점과 못된 점, 부족한 점을 모두 잘 알고 있으면서도 친구로 받아 준 그 친구들이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진다. 대화는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의 연결이 입이라는 도구를 통해 말이라는 소리로 전달되는 대화다. 말과 단어, 언어는 그 자체의 힘도 있지만, 그 자체가 지닌 한계성도 분명히 갖고 있다. 따라서 말은 하나의 수단과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 말없는 말, 즉 마음의 연결이 참다운 대화라고 할 수 있다. 대화는 바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 판단, 느낌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다. 이런 시각은 이미 왜곡된 시각이다. 자신을 내려놓고 온전히 상대방의 감정과 마음을 읽어야 제대로 된 존중과 배려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시각에서 벗어나는 작업은 자신에게 또 친구들과의 멋진 대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명상도 이 작업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기심이 올라올 때 알아차리는 것도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이기심이 늘 발동한다. 그 이기심은 주관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주관적인 판단과 해석을 객관적이라고 착각하며 사람들에게 설득하거나 강요한다. 목숨을 지닌 인간인 이상 이기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이기심을 알아차린 후 다른 결정과 선택을 할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낼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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