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휘재심리상담센터

Done is better than good

by 걷고 2023. 12. 6.

‘마무리 하는 것이 잘 하는 것 보다 낫다’라는 글이다. ‘마무리’와 ‘잘 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마무리는 일단 시작한 일을 끝까지 하는 것이다.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끈기가 필요하고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마무리’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반면 ‘잘 하는 것’은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타인을 의식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잘 하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하지만 끝까지 마무리 하지 못하는 경우 노력이 허사가 될 수도 있다. ‘마무리’는 자신과의 싸움이고, ‘잘 하는 것’은 자신과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하는 행위다. 그렇다고 할 일을 대충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일단 시작한 일은 끝까지 진행하고 결말을 맺으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무성의하게 또 아무렇게나 마무리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 보다 못하다. 하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마무리하기 위해 쏟은 시간과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과정을 돌이켜보면 허투루 마무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배우는 것도 있고, 어떻게 하면 잘 마무리를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도 하게 되고, 포기하지 않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찾기 때문이다.   

   

‘마무리’의 중요성을 깨달은 중요한 경험이 있다. 약 10여 년 전 월정사 단기 출가를 다녀온 적이 있다. 일반적으로 4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지만, 그 당시에는 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참석한 3주간의 프로그램이었다. 무척 열심히 수행하는 동료가 있었다. 하지만 가끔 얼굴에서 분기(憤氣)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프로그램 또는 동료들과의 마찰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내일이 회향일인데 오늘 밤에 자신의 행자복을 빨래하고 혼자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하루를 못 참은 것이다. 어쩌면 하루 더 지낸다는 것이 그에게는 무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함께 좁은 사찰 내에서 단체생활을 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또 사찰의 규율과 스님들의 언행을 보며 짜증이 나거나 화가 나는 경우도 있다. 그 역시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20일을 지내고 단 하룻밤을 함께 지내지 못한 채 먼저 나간 것이다. 우리는 다음 날 회향식에서 동료들과 웃으며 사진도 찍고 즐겁게 마무리했다. 지난 시간의 불편했던 감정과 상황은 회향식을 통해 저절로 사라져 버렸다. 사진을 찍으며 먼저 떠난 동료를 생각했다. 무척 안타깝고 아쉬웠다. 단 하룻밤만 참고 지내면 같이 회향할 수 있었을 텐데. 이 경험을 통해 마무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그날 이후로 일단 시작한 일은 가능하면 끝까지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또한 일단 시작하기 전에 이 일을 꼭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습관도 생겼다.      

 

걷기 돟호회에서 ‘경기 둘레길’을 진행하며 포기하고 싶은 때도 있었다. 사람들과의 마찰도 있었고, 걷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길 안내자로 나선 만큼 끝까지 책임을 완수하고 싶었다. 아마 안내자가 아니었다면 중간에 포기했었을 것이다. 길 안내자를 자처하고 함께 걷자고 약속했으면서 먼저 포기한다면 무책임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타인의 시선도 의식했다. 매주 주말에 걸으며 완보하는데 1년 3개월의 시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런저런 상황을 맞이했지만 결과적으로 완보를 했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마무리를 잘 했다. 걸었던 후기를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할 준비를 하고 있다. 길을 시작하겠다는 생각이 시점이라면, 완보를 한 후 한 권의 책으로 나오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종점이 된다. 책이 발간되면 마무리가 되는 것이다. 길 안내를 잘 하려고 애쓴 것 보다는 마무리하려고 애쓴 것 같다. 책 역시 잘 쓰려고 노력한 것 보다는 진솔한 느낌과 생각을 정리해서 마무리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리더로서 완벽하거나 잘 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끝까지 마무리 하는 리더가 되고 싶었다.  잘 하려는 노력보다는 마무리하기 위한 노력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완벽하게 준비해서, 완벽하게 시작하고, 완벽하게 마무리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각자 삶의 방식이 다르기에 그들의 방식을 존중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준비 과정에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서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일단 시작을 한 후에도 자그마한 실수도 하지 않기 위해 사소한 일에 너무 집착을 하며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아왔다. 대부분의 일은 마감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 시간을 넘기면 의미가 없어지는 일도 있다. ‘완벽’의 반대는 ‘대충’이나 ‘허투루’가 아니다. ‘완벽’의 반대는 ‘마무리를 못하는 것’이다. ‘구슬이 서 말이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있다. 구슬은 하는 일이고, 마무리는 꿰어 보배를 만드는 일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이 두 가지 있다. 코리아 둘레길 4,500km를 완보하는 것과 매년 책 한권 발간하는 것이다. 이 일을 끝낼 생각을 하면 큰일처럼 느껴져 부담이 된다. 일을 끝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단지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꾸준히 하면 저절로 끝이 나게 되어 있다. 꾸준함이 바로 마무리로 연결된다. 코리아 둘레길을 매월 2박 3일간 걸으면 약 8년 정도 걸릴 것이다. 8년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걷기를 좋아하니 매월 2박 3일간 걸으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마무리가 된다. 책을 매년 발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브런치 작가로 활동했던 지난 6년간 쓴 글이 800편이 넘는다. 매년 약 130편의 글을 써왔고,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 길을 걸으며 느낀 후기도 쓰고, 신문이나 영상을 보고 느낀 소감도 쓰고, 책을 읽은 후 독후감도 쓰고, 일상 속 성찰을 글로 정리하고, 심리상담 전공 서적을 공부하며 중요한 대목을 정리한 글을 쓰기도 한다. 이런 글들이 모여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나온다. 결과를 맺기 위해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과정의 부산물이 결과물이 된다. 다만 ‘하지 않음’을 또는 ‘포기하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된다.      

 

최근에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더 늘었다. 약 20년 전에 읽었던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을 다시 읽고 있다. 경허 선사의 발자취를 따라 걷고 싶다. 그가 머물렀던 사찰 기행을 하며 그의 선기(禪氣)를 느끼고 싶다. 경허 기념관이 조계사 근처에 있다고 한다. 경허 전문가인 홍현지 박사가 운영한다고 들었다. 기념관에 가면 경허스님의 발자취를 쫓아가는데 필요한 정보를 많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홍박사는 경허스님의 일대기를 책으로 발간 중이라고 들어서 그 책도 확인하고 싶다. ‘길 없는 길’을 읽으며 스님께서 머물렀던 사찰 이름을 정리하고 있다. 이 일 역시 꾸준히 하면 된다. 시간 날 때마다 사찰을 참배하며 스님의 족적을 따라갈 생각이다. 그리고 그 기록이 언젠가는 한권의 책으로 발간되어 세상에 나올 것이다. 걷고 글쓰기가 일상이 되고, 일상이 테마 여행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사찰 순례로도 이어진다. 좋은 일이다. 

 

내게 걷기와 글쓰기는 목적 없는 행동이다. 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전문 작가도 아니기에 이 두 가지는 네게는 목적없는 행동이다. 그냥 걷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목적이 없기에 원하는 것도 없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타인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이 일을 하며 마음 속 충만감을 느낀다. 걷고 글 쓰며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냥 일상이 되어 편안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뿐이다.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또 ‘하기 싫은 것이’ 싫으면 다시 하면 된다. 그리고 정 심심하면 책을 읽으면 된다.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다. 그 외에 다른 할 일도 없으니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게 될 것인가? 할 일을 하며 행복하게 마무리 하고 싶다. 할 일이란 걷고, 글 쓰고, 책 발간하고, 심리상담하고, 독서하는 일이다. 죽는 순간에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걷고, 글 쓰고, 상담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미소 지으며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마무리는 죽음이 된다. 시작된 삶은 스스로 끊는 것이 아니다. 할 일을 마치면 저절로 끝이 난다. ‘Done is better than good'의 의미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할 일을 찾고 그 일을 잘 마무리 하라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728x90

'이휘재심리상담센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 하기' 버리는 연습  (2) 2023.12.28
자유로운 인간관계  (1) 2023.12.13
걷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상담심리사  (2) 2023.12.01
대화에 관하여  (2) 2023.11.16
아프지만 건강한 친구  (2) 2023.11.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