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동물인 우리들은 사람들 속에서 한평생 살아간다. 사회적 지위, 교육 수준, 경제적 상황, 건강 상태가 어떻든 사람들은 모두 사회 안에서 살아간다. 이기적인 욕구를 충족하려는 노력이 삶의 동력이 되고, 성취한 결과물이 그 자신이 된다. 명분은 사회와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한다고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이기적인 면을 충족시키는 방편에 불과하다. 타인의 행복이 자신의 행복이 되기 위해서는 ‘작은 나’를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작은 나’의 경계를 점점 더 확장시키며 ‘큰 나’가 되었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인간세상에서는 갈등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방편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이기심이 충족되지 않으면 화를 내거나 서로 비난도 한다. 어제의 사랑이 오늘의 원수가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물론 자신의 이기심을 극복하고 ‘작은 나’를 탈피해서 ‘큰 나’를 이룬 사람들도 있다. 성직자가 될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타인을 위한 참다운 봉사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약 12년간 활동했던 걷기 동호회에서 탈퇴를 했다. 좋은 추억과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고마운 동호회다. 오랜 기간 활동했고, 이제는 떠날 시기가 된 것이다. 내년부터 오랜 기간 준비해 온 ‘걷고의 걷기 학교’를 시작하기 위해 적당한 시기에 탈퇴를 했다. 서로 살아온 환경과 사회적 배경,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호회는 일반적 사회 모임과는 다른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다. 온라인 동호회이지만 오프라인에서 만나서 함께 걷고 즐겁게 대화하며 지낸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이 우리네 일상에서 발생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희로애락이 그 안에 모두 담겨 있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어떤 모임이나 단체에서도 그 나름대로의 문화가 있고, 그 안에는 희로애락이 존재한다. 12년 동안 활동했음에도 탈퇴한 것에 대한 이유를 묻거나 아쉽다는 연락을 한 사람들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탈퇴하는 순간 잊힌다. 내가 잘못 살아온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냉정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또한 동호회 활동이 지닌 한계성이라는 생각을 하며 애써 쓴웃음을 짓는다. 과연 그 긴 기간 동안 활동하며 만나서 함께 걷고, 웃고, 떠들고, 서로의 고민을 얘기했던 모든 인연들이 저절로 사라진 것이다. 참 허망하다. 탈퇴를 하면서 느낀 무상한 인간관계에 대해 한번 정리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이 글을 쓴다.
우리가 가장 오랜 기간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부모와 자식 지간에 만나는 기간은 약 60년 정도 될 것이다. 부부간의 기간도 길게 잡아 약 60년 정도 될 것이다. 학교 친구들과의 기간도 60년을 넘지는 못할 것이다. 그 6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도 늘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서로 사랑하고 미워하기도 하고, 서로 고마워하거나 원수처럼 대하기도 한다. 화를 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연민을 느끼기도 한다. 길다면 길 수도 있겠지만, 그리 긴 세월도 아니다. 살아가는 동안 자주 만나는 사람들도 있지만 가끔 만나거나 연락 정도만 취하며 지내는 사람들도 있다. 이번에 핸드폰 내의 모든 자료가 사라져서 며칠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서너 명의 연락처를 카톡으로 받고 나니 살아가는데 특별한 불편함은 없었다. 서로 필요에 의해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우리네 만남이다. 만남 속에서 편안하고 불편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기심을 삶의 동력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삶은 대부분 비슷하다. 하지만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감정의 기복이 줄어들고,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되고, 상대방이 지닌 다양성과 입체성을 이해하게 되며 갈등은 서서히 사라진다. 세월이 주는 또 다른 선물은 굳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이 필요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얻기 위해 과거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했던 것을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억울하기도 하다. 그들의 사랑과 인정은 나와 그들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는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이기심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기본적으로 나는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사랑이 없는 것일까? 요즘 들어 점점 사람들과의 만남에 대한 회의가 든다. 이번 동호회 탈퇴를 계기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과연 어떤 만남이 ‘참 만남’이고 어떤 만남이 ‘거짓 만남’일까? 이 두 가지를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을까? 지금까지 내가 찾은 기준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다. 이것이 있다면 ‘참 만남’이고, 없다면 ‘거짓 만남’이다. 나이 들면서 점점 만나는 사람들의 숫자와 횟수도 많이 줄어들었고, 그렇다고 나의 삶이 불편해진 것도 전혀 없다. 오히려 혼자 있는 것이 더욱 편안해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홀로 지내는 것을 편안해한다는 사실을 점점 더 알아가고 있다. 물론 친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것이 더 편하다. 지금 내 주변에는 서너 그룹 정도의 친구들이 있다. 대학시절 영어회화 모임에서 만난 선후배 세 명이 있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 두 명이 있다. 불교에 관심 있는 친구 다섯 명이 있다. 사회에서 만나 좋은 인연을 쌓아가고 있는 네 명의 친구들이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은가? 이 역시 나의 이기심에 의한 판단일 수도 있다. 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또한 과연 나는 그들 모두를 진심으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중에서도 존중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 역시 고정적인 것이 아니다. 어제는 미웠던 사람이 오늘은 고맙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기심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쩌면 일반적인 사람보다 더욱더 이기적일 수도 있다.
이기적인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그 안에 희로애락을 느끼며 울고 웃는다. 부처님께서도 “깨닫지 못하면 모두 중생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깨달음이란 ‘무아’의 진리를 체득한 것을 의미한다. ‘나’가 없음은 존재의 실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존재는 현상적 존재에 불과하다. 따라서 ‘존재’는 ‘무’가 된다. ‘나’가 없는 세상에는 이기심이라는 단어 자체가 설 땅이 없다. 살면서 우리가 쉽게 이기심을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이다. 자신의 몸을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이것이 잘 이루어지면 좋아하고,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맺고 이어가고 함께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관계가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불편하게 변하기도 한다. 때로는 관계가 좋지 않았던 사람들과의 관계가 호전되기도 한다. 늘 편안한 사람도 없고, 늘 불편한 사람도 없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마음에 따라 사람들과의 관계는 늘 변하게 되어 있다. 무상이고 무아다.
과연 사람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고 유지해 나가야 할까? 세 가지 방법이 떠오른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다. 함께 있는 시간에 온전히 상대방에 집중해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 만남이 끝나면 흐르는 물처럼 그냥 흘려보낸다. 어떤 기대나 편안함과 불편함도 역시 흘려보낸다. 또 다른 방법은 다른 사람들의 사랑과 인정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다. 그냥 자신의 할 일을 하면 된다. 누가 어떤 말을 하든 그 말을 듣고 참고할 것은 참고하되 할 일을 꾸준히 하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충족시키는 것이다. 스스로 독립된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신이 가득해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연 나는 만난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존중과 배려를 했는지를 스스로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끔 사람들과 만나고 돌아서며 후회할 때가 있다. 사람들은 무시하는 언행, 쓸데없이 자신의 어리석은 우월함을 드러내는 언행, 불필요할 정도로 친절하거나 자신을 낮추는 언행, 불필요한 말을 많이 한 일, 타인의 말을 끊거나 무시하는 언행, 자리에 있지도 않은 사람들에 대한 평가나 험담 등으로 인해 돌아오는 걸음이 무거운 적이 많았다. 만남을 마친 후 자신의 언행을 점검하며 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노력을 하며 살아가는 방법이다. 이 세 가지를 잘 실행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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