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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재심리상담센터

'체 하기' 버리는 연습

by 걷고 2023. 12. 28.

2023년도 저물어간다. 한 해가 넘어가면서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한 살 더 먹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앞으로 살아갈 방법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의 생명은 유한하고,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역시 유한하다. 어쩌면 생명이 유한하다는 것은, 또 에너지가 유한하다는 것은 축복일 수도 있다. 만약 생명이 무한하거나 또는 여러 개 있다면 삶과 생명의 중요성을 잊고 살아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제는 사랑니에 충치가 생겨서 발치를 했다. 앓던 이가 빠진 시원함도 있지만 동시에 있던 것이 사라지면서 입 안 한쪽에 허공이 생겨 마치 내 입 안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잠시 뿐이다. 하루 지나고 나니 마치 늘 그런 것처럼 허공이 생긴 입 안이 나의 입안처럼 느껴진다. 발치를 하며 또 스케일링을 하며 참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 만으로도 할 일이 많은데, 가족과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역할까지 생각하면 할 일이 훨씬 더 늘어난다. 나의 삶이지만 온전한 나의 삶이 되지 못한다. 가족을 포함한 사람들 외에도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를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가끔은 자발적 고독을 즐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인간인 우리는 사람들과 섞여 살아갈 수밖에 없다. 섞여 살아가기 위해서 때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만 한다. 반면에 내가 힘들거나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때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나만의 편의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은 결국 사회 안에서 자신을 고립시킨다. 자신만의 삶과 타인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삶,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자신과 사회, 그리고 타인과의 삶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살아가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늘 화두였다. 최근에 고(故) 최인호 작가의 ‘길 없는 길’을 다시 읽었다. 경허 선사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읽게 되었다. 우리네 삶은 책 제목처럼 ‘길 없는 길’이다.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길이 있다. 길이 있다기보다는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 그 길이 자신의 길이 된다. 때로는 먼저 앞서 간 사람들의 길을 따라가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각자 자신의 길을 가게 되어 있다. 따라서 길의 숫자는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숫자만큼 많고 다양하다. 설사 같은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태어나는 순간에는 혼자 태어나고, 죽는 순간에는 혼자 죽음을 맞이한다. 아이러니다. 혼자 태어나고 혼자 죽는데 살아갈 때는 함께 살아간다.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면서 대중과 함께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때로는 자신만의 삶을 산다고 타인과 사회와 동떨어져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 역시 언젠가는 밖으로 나와 함께 살아가게 된다. 수행자 역시 마찬가지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 주변에 철조망을 치더라도 깨달음을 얻고 난 이후에는 저절로 사회 속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고통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 적응을 하지 못해 혼자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수행을 하는 두 극단의 사람들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 가정을 만들고 살아가고, 대충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가고, 때로는 종교에 관심을 갖기도 하고, 때로는 경제적 동물이 되기도 하는 일반적인 우리네 삶의 얘기를 하고 싶다. 과연 어떻게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고, 동시에 타인과 또는 사회 속에 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 혼자 있으면 편안하지만 때로는 외롭다. 함께 있으면 즐겁지만 때로는 불편하다. 결국 혼자 있어도 편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편하지 않다. 불교에서 얘기하는 두카(Dukkha)가 바로 이런 의미일 것이다. 편한 상태는 늘 불편한 상태로 변하게 되어 있다. 좋은 관계는 늘 좋지 않은 관계로 변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동시에 성립한다. 세상사는 모두 불안정하다. 고정된 실체나 변하지 않는 상태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일반적으로 좋은 관계는 늘 좋기를 희망하고, 좋지 않은 관계에서 빨리 벗어나길 원하고 있다. 문제는 좋고 싫다는 기준은 자신이 만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상황도 다른 사람은 싫어할 수도 있다. 한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도 다른 사람은 좋아할 수도 있다. 각자의 잣대로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편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불편함을 감수하기도 한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의 삶도 이와 많이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어떻게 사람들과 살면서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늘 해왔다. 최근에 읽었던 책 ‘길 없는 길’에서 한 가지 방법을 찾았다. 

 

 “경허는 정직한 체하기보다 정직에, 청정한 체 꾸미기보다 청정에, 거룩한 체 보이기보다 거룩함 그 자체에 철두철미하였던 것이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아름다움과는 별개의 문제다. 거룩하게 보이는 것은 거룩함과는 별개의 문제다. 거룩하게 보이기 위해 거룩함을 꾸미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거짓이다. 정직하게 보이기 위해 정직함을 꾸미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도둑질인 것이다.” (길 없는 길 본문 중)

 

 이 글을 읽는 순간 늘 고민해 왔던 것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었다. 그간 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만나며 살아왔다. 그 불편함의 이면에는 나의 경험과 그에 대한 나의 태도나 감정의 불일치가 있었다. 상대방의 태도가 불편한데도 웃는 경우 같은 일이다. 특히 고객을 만날 때 수주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불편한 상황을 감수해야만 하는 상황들이 있었다. 경험은 불쾌한데, 얼굴에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불편함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가 어떤 자극을 만날 때 표출되어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만든 적이 많았다. 업무 상 외의 모임에서도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마음이 늘 있었다. 불편한 상황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하거나, 좋은데 좋은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나의 경험과 나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아 마음속에는 늘 불편함이 있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소설의 문구가 크게 느껴졌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체했던 적도 있다. 욕망이 가득하면서 마치 욕심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한 적도 있었다. 불교를 모르면서 마치 불교에 대해 잘 아는 체했던 적도 있었다. 정직하지도 않으면서 정직한 척한 적도 있었다. 이런 삶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돌이켜 보니 내가 삶을 살아온 것이 아니고, 내가 만든 아바타가 나의 삶을 살고 있다. 주인은 나인데 도둑놈이 내 안에 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살고 있다. 도둑놈을 쫓아낼 유일한 방법은 나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즉 ‘체 하지 않기’를 실행하는 것이다. 60여 년을 ‘체 하며’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체 하기’를 멈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연습하면 죽는 순간에는 좀 더 나 자신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사소한 일부터 시작하자.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지내보자. 가깝고 믿을 수 있는 가족이나 지인들은 나를 많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고, 그들에게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도 관계에 금이 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나의 감정과 생각을 거르지 않고 막무가내로 표출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는 생각, 감정, 느낌 등을 편안하게 표현하면 된다. 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굳이 표현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솥에 눌어붙은 누룽지를 숟가락으로 닥닥 긁어내어 퍼낼 필요는 없다. 그렇게 하다가는 솥에 구멍이 날 수가 있다. 감수할 수 있는 것은 그냥 감수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을 굳이 표현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다. 수용할 것은 수용하고, 수용하면 부정적인 경험이 남을 것 같은 것을 편안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해나가면 될 것이다. 

 

 새해는 나에게 좀 더 가깝게 접근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란다. 그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나는 모른다. 무척 가까울 수도 있고, 매우 멀 수도 있다. 다만 거리감과 상관없이 얼마나 자신을 잘 지켜볼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늘 자신의 생각, 행동, 언어, 행동, 감정, 느낌 등을 지켜보는 연습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체 하기’를 버리고 ‘거짓 나’에서 탈피해서 ‘참 나’로 다가가는 새해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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