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남파랑길을 걸으며 어느 식당에서 본 일이다. 할머님 다섯 분이 점심 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섯 명이 동시에 얘기를 하고 있는 신기한 장면을 목격했다. 듣는 사람은 없고 말하는 사람만 있다. 그럼에도 희한하게 이들은 계속해서 얘기를 이어간다. 가끔 누군가가 자신의 말을 하던 도중에 다른 사람의 말에 토를 달고는 다시 자신의 얘기를 이어간다. 하고 싶은 얘기는 많지만 듣고 싶은 얘기는 없다. 아니면 말을 할 사람들이 없어서 친구 모임에서 자신의 얘기를 늘어놓기도 한다. 그분들 모두 외롭다는 생각이 들어 순간 마음이 짠하다. 비단 이분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일이 매우 자주 발생한다. 카페에 가면 서로 자신의 얘기를 소리 높여 떠드느라 목소리가 커진다. 이는 대화가 아니다. 소음이고 공해다. 나 역시 혹시나 이런 경우에 해당할 수도 있으니 스스로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
말을 듣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나만의 분류법이다. 남의 말을 듣고 있지만 듣고 있지 않는 사람이 첫 번째 분류에 속한다. 위의 할머니들과 같은 경우다. 마치 이어폰을 꽂고 상대방의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듣고 있는 척은 하지만 결코 상대방의 말을 듣지 않는다. 귀가 겉으로는 뚫려 있지만, 속은 막혀있다. 귀머거리 아닌 귀머거리다. 이런 사람들과 얘기를 하면 할수록 더욱 외롭다. 마치 벽에다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두 사람 사이에 높은 장벽이 가로막혀있다. 오래전에 힘든 일이 있어서 한 친구를 불러내어 얘기한 적이 있다. 나를 잘 이해해 줄 수 있는 친구라는 생각에 불러내어 술 한잔을 같이 하며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내 얘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식당 내 TV를 통해 야구 중계를 보며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외로웠다. 꽤 오래전의 일인데 지금도 그 장면이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은 그 친구는 만나지 않는다. 먼저 연락 오면 만날 수는 있겠지만, 내가 먼저 연락할 일은 없다.
또 다른 방법은 말의 행간을 듣는 방법이다. 사람의 말을 들으며 그 사람의 감정이 어떤지, 왜 저런 말을 하는지를 살피며 듣는 방법이다. 말을 있는 그대로 듣기보다는 말에 담긴 감정과 정서, 생각을 고려해서 듣고 그에 따른 반응을 해주는 방법이다. 공감은 상대방의 마음의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상황에 맞게 상대방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이해해 주는 것이다. 흔히 공감한다는 말을 하지만, 제대로 공감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으로 상대방의 감정과 생각을 이해하고는 공감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상담 공부를 하면 할수록, 또 내담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공감이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는 한 참다운 공감을 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행간을 듣는 방법 역시 주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성을 지니게 된다.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시선으로 주변을 바라보며 이해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자신의 주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자신은 객관적으로 상황과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과연 정말로 객관적인 시각일까? 주관에서 판단한 객관적인 시각이 아닐까? 사람은 또 모든 생명체는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생존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객관적으로 사람과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잘 모르겠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니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나 완전한 객관적인 시각을 지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공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주관에서부터 벗어나는 작업을 먼저 진행해야만 한다.
마지막 방법은 ‘들리는 그대로 듣기’다. 상대방의 얘기를 해석과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듣는 것이다. 한 친구가 뜬금없이 배고프다고 하면 그냥 같이 식당에 찾아가 식사를 하면 된다. 왜 식사 시간이 아닌데 배가 고플까? 마음이 허기진 것은 아닌가? 무슨 힘든 일이 있나? 어제 무슨 바쁜 일이 있어서 식사를 하지 못했나?라는 생각과 예단은 이 관계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친구가 배고프다고 하면 그냥 함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선호하는 편이다. 굳이 따지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식사를 하다 보면 또는 식사가 끝난 후에 친구가 먼저 자신의 상황을 얘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때도 그냥 자신의 판단과 해석을 내려놓고 들어주면 된다. 문제가 있을 시 해결해 주려는 마음에 자신의 짧은 경험과 판단으로 충고나 조언을 하기보다는 그냥 묵묵히 들어주는 것이 그 친구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수 있다. ‘들리는 그대로 듣기’ 역시 자신의 주관을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누군가가 고민을 얘기하면 답을 주려고 애쓴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다. 대부분의 문제는 또는 힘든 상황은 스스로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냥 힘들고 답답해서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 그냥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을 한다. 설사 도움이 되는 답을 주었다고 해도 매번 답을 줄 수는 없다. 스스로 답을 찾아가며 자신의 발로 걸어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편견과 판단을 내려놓고 그냥 그대로 듣고 상대방이 그 순간에 원하는 것을 함께 하는 것이다. 함께 있는 그 자체, 들어주는 그 자체,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상대방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나는 과연 공감과 ‘들리는 그대도 듣기’를 잘하고 있나? 집중해서 듣는 것도 잘 못하는 것 같다. 자신을 내려놓고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하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어야 집중해서 들을 수 있고, 집중해서 들어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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