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코리아둘레길

남파랑길을 다녀온 후의 일상

by 걷고 2023. 10. 19.

 남파랑길을 5일간 걸었을 뿐인데 후유증이 있다. 짧은 기간 걸었을 뿐인데 일상으로 복귀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집에 있으면서도 뭔가 어색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마치 낯선 곳에 온 느낌이다.  딱히 할 일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5일간의 도보 여행은 내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걸으면 된다. 배고프면 식사하고, 숙소 정해서 자고, 씻고, 빨래하면 된다. 그 외에는 할 일이 없다. 하지만 집에 있으니 할 일이 없는데도 무언가를 해야만 된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완전히 회복되었지만, 며칠간 몸도 피곤하고 발이 조금 아픈 것도 후유증 중의 하나다. 집 밖을 나가지 않아도 전혀 심심하지도 않고 잘 지낸다. 이것이 후유증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원래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다. 혼자 걸어도 전혀 심심하거나 무료하지 않았고, 오히려 자유롭고 편안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 종일 집 안에서 하고 싶은 일 하거나 음악을 듣는 지금 이 생활이 아주 편안하다. 이런 편안한 삶이 후유증이라면 자주 도보여행을 떠나야 할 것 같다.    

 

 일요일 밤에 돌아와서 월요일에는 선후배들과 함께 대하를 먹으러 갔다. 40년 이상  함께 알고 지낸 아주 가까운 친구들이다. 네 명이 만나면 웃는 일도 많고, 수다도 많아진다. 한 선배를 위해 새우를 까주는 작업을 했다. 차 안에서 그냥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다. 원래 이런 일 하는 것을 싫어하고 귀찮아하고 불편해하는 사람인데,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새우 까기 작업을 하니 할 만한 일이다. 그간 왜 그렇게 귀찮아하고 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술도 한잔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분위기 있는 카페로 이동해서 차와 케이크를 주문해서 수다를 이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다리 타기를 하면서 오늘 비용을 분담하기로 결정했다. 50%, 30%, 20%, 그리고 1등을 차지한 사람은 차량 유류대 3만 원 내기를 했다. 대하를 먹은 후 각자 집에 보낼 대하를 주문하기도 했다. 운 좋게 1등을 했고, 단돈 3만 원에 먹고 마시고 선물까지 들고 올 수 있는 행운을 누렸다.      

 

 서로 가정사까지 잘 아는 사이이기에 우리만 먹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선물을 사기로 결정했다. 한 선배는 아내를 위해, 다른 선배는 조카를 위해, 후배는 어머니를 위해, 나는 딸과 사위를 위해 대하를 주문했다. 선배와 후배는 집에 가서 대하를 직접 구워 부인과 어머님께 대접해 드렸고, 모두 좋아하신다는 연락을 보내왔다. 선배의 조카와 딸네 식구들도 대하가 달고 맛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 좋은 것을 배웠다. 지금까지 가족을 위해 외지에 나가서 음식을 사거나 주문했던 기억이 전혀 없다. 이번 대하 선물은 가족을 위한 작은 정성이 들어간 선물이 얼마나 중요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지 알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큰돈 들이지 않고도 나를 포함한 가족이 모두 행복해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다음 날은 딸네 가서 손녀와 오후 시간을 함께 보냈다. 놀이터에서 놀기도 했고, 학습지를 풀 수 있도록 도움도 주고, 책도 읽어주고, 음식도 나눠먹는 등 다양한 일을 손녀와 함께 하며 좋은 추억을 만들었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다. 아이의 언어 표현을 듣고 놀란 것도 기쁜 일이다. 아이가 함께 놀 거리를 찾아서 함께 하자며 나와 놀아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딸이 올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손녀는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울기 시작한다. 우는 아이를 안고 달래는 경험도 소중한 경험이다. 이번에는 손녀와 집중해서 놀아주려고 꾀를 부리지 않고 노력했다. 손녀와 지금-여기의 경험은 평생 지금 이 순간 밖에 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 역시 마찬가지다. 아이랑 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마치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한 마음이 든다.     

 

 어제는 하루 종일 집안에만 있었다. 오전에는 전자책 원고 정리를 했다. 출판사 여러 곳에 종이책 출간 기획서를 보냈는데, 긍정적인 답변이 없다, 책 제목은 <금융 독립 만세>. 이제 남은 방법은 전자책을 발간하는 것 밖에는 없다. 원고를 보내면 전자책을 무료로 제작해서 유통까지 해 주는 플랫폼이 있어서 그곳에 원고를 투고할 생각이다. 아직 내가 쓴 원고를 책으로 발간하기에는 작가로서 준비가 안 된 것 같다. 전문가도 아닌 사람이 금융문맹탈출기를 쓴 것도 독자들에게 신뢰감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출판사에서 거절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들은 전문가로 이 책이 독자들의 주의를 끌 수 있을지 없을지를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아직 내가 쓴 원고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수준이 안 된다. 비록 출판사와 독자들의 관심 밖이지만, 전자책으로라도 출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금융 문맹 탈출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던 과정을 쓴 내용으로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단 한 명일지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번 주말까지 기다려 본 후에 출판사에서 연락이 없다면 다음 주 초에 투고할 생각이다.     

 

 오후에는 개인상담 한 사례를 진행했다. 외국에 있는 내담자와 페이스톡으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이 두 번째 회기다. 비록 대면상담은 아니지만, 얼굴을 가깝게 보며 상담을 진행하니 집중하게 되는 좋은 점도 있다. 내담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며 진심을 다해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남은 시간은 영화를 보기도 했고, 식사를 준비해서 먹고, 설거지도 하고, 집안 청소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차분히 앉아서 남파랑길 다녀온 느낌을 글로 정리했다. 어떻게 생각과 느낌을 정리할지 잘 모르겠어서 시간을 차일피일 미루며 글이 떠오르기를 기다렸다.  중요한 키워드를 메모해 놓았지만, 막상 글을 쓸 때는 메모를 보지 않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글을 썼다. 무슨 큰 숙제를 마친 느낌이 들 정도로 시원하다. 앞으로도 도보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매번 이런 작업 과정이 반복될 것이다. 남파랑길을 완보한 후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하기 위해 원고를 조금 길게 쓰고 있다. 길게 쓴 원고는 추후 정리하며 줄이는 작업을 하기가 쉽다. 하루가 참 편안하게 그리고 빠르게 잘 지나간다.      

오늘은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왔고, 두 권의 책을 빌려왔다. 한 출판사에서 책 리뷰 쓰는 조건으로 책 한 권 보내왔다. 나의 관심사인 걷기에 관한 책으로 책 제목은 <걷기의 즐거움>이다. 책을 완독 하며 리뷰를 쓰기 위해 하루 숙성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걷기의 인문학>과 <파리를 생각한다>라는 책을 빌려왔다. 모두 걷기에 관한 책이다. <걷기의 즐거움>을 읽으며 책에 나와 있는 걷기 관련 서적 리스트를 휴대전화 메모판에 정리해 놓았다. 앞으로 읽어 볼 책이다. 걷기 관련 책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은 대부분 코스나 개인적인 트레킹 경험담이어서 아쉬운 점이 많았었다. 오늘 읽은 책에 나와 있는 책들은 조금 더 깊이가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들을 꾸준히 읽어볼 생각이다. 도서관에서 나오며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한 후 제과점에 들려 호두파이를 샀다. 집에 와서 커피와 함께 먹고 마시니 기분이 좋다. 다만 호두파이 한쪽에 3,900원이나 하니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는 사 먹지 못할 것 같다. 오늘 밤에 아내가 귀국한다. 서로 할 얘기가 많을 것 같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