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남파랑길을 5일간 걷고 왔다. 혼자 걸으며 오직 자신과 걷기에만 집중하며 걸었다. 약 13년 전 무릎 연골 파열로 등산과 달리기를 할 수 없게 되면서 찾은 취미가 걷기다. 걷기 동호회에 가입한 후 꾸준히 걷고 있다. 동호회에 가입한 이유는 심신 건강 회복을 위해서였다. 지친 상태에서 걸으며 몸은 회복되었고, 몸의 회복은 마음 건강을 되찾게 해 주었다. 그 이후에는 길 안내자 역할하고 있다. 요즘은 ‘나는 왜 걷는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걷고 있다. 이 질문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최근에 찾은 답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이다. 자유란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나를 구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만 자유를 되찾을 수 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 사회인으로서의 책임,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상황, 사람들의 시선, 언젠가는 죽는다는 실존적 과제, 정말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사실 등이 나를 구속하고 있다. 이러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찾은 방편이 바로 ‘걷기’다.
도보 여행에서 돌아온 후 읽은 책이 바로 <걷기의 즐거움> (수지 크립스 엮음, 인플루엔셜)이다. 도보 여행 후 바로 읽었던 책이어서 그런지 작가들의 글과 나의 경험이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즐겁게 완독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17세기 중엽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영미 작품 중 걷기에 관한 통찰을 표현한 책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는 유명 철학가, 수필가, 시인, 작가의 책이다. 걷기에 관한 통찰을 글로 정리한 책도 있고,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해 걷기를 표현한 책도 있고, 산책 경험을 시로 표현한 글도 있다. 걷기에 관한 통찰이 비록 각자 다르지만 공통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홀로 걷기’의 중요성과 ‘자유’를 찾는 과정이 ‘걷기’라는 점이다.
“혼자 걸어서 여행할 때처럼 그렇게 내가 완전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없었고, 감히 표현하자면 그렇게 완전한 삶을 영위한 적도, 그렇게 철저하게 나 자신이 되어본 적도 없었다. 걷기는 나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고 정신을 깨워주었다.” (본문 중에서)
함께 걷는 것도 즐겁기는 하지만 가끔은 상대방을 배려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해서 걷기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혼자 걸으면 오직 길과 자신에게만 집중하며 걸을 수 있다. ‘길’과 ‘걷는 자’만이 존재한다. 그 외의 어떤 것도 들어올 틈이 없다. 때로는 생각이 다른 곳을 헤매고 있기도 하지만, 금방 알아차리고 ‘지금-여기’로 돌아올 수 있다. 또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얻게 된다. 길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상황을 스스로 해결하며 걸어야만 한다. 물론 주변 사람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 역시 스스로 결정하고 판단해야만 한다. 우리는 삶 속에서 자신의 주인이 누구인지 또는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혼자 걷는 이 순간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회복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갖게 된다.
“이 순간부터 나는 제한과 상상의 경계선에서 해방되리라.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가리라. 스스로 완전하고 절대적인 주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멈추어 서서, 찾아보고, 받아들이고, 사색하며,
부드럽게, 그러나 불굴의 의지로 나를 옥죄는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리라. “ (본문 중에서)
걷기가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 이 시 구절을 읽으며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걷기 선배들이 있다는 것에 희열감을 느끼기도 했다. 혼자 걸으면 별의별 상상과 생각을 한다. 그리고 때로는 스스로 헛웃음을 짓기도 한다. 일상 속에서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발칙한 생각과 고상한 생각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기존 생각의 틀에서 벗어난다. 우리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 주어진 상황이 아니고, 상황을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마음이다. 마음은 구름처럼 모양도 없고 걸릴 것도 없는데, 마음속에서조차 철창을 만들어 자신을 구속한다. 이 부자유스러움이 일상에서 그대로 드러나 결국 자신을 틀 속에 가두어 놓는다. 하지만 홀로 걸으면 마음속 철창을 부수고 통쾌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또한 일상에서는 잘하지 않는 행동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된다. 산길을 걸으며 아무도 없는 곳에서 행하는 노상방뇨를 하며 약간 어긋난 자유를 느낀다.
이 책은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걷고 싶은데 용기가 없는 사람들, 굳이 왜 걸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걷기의 철학과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이 책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이유 중 하나는 총 34권의 걷기 관련 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걷기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읽었다. 대부분 걷기와 건강과의 관계, 걷기 코스 소개, 걸었던 경험 등을 정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으며 걷기에는 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다는 허전함이 마음 한 구석에 늘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그 허기를 채워 줄 책을 찾고 있었다. 때 맞춰 책, <걷기의 즐거움>을 만나게 되어 무척 기쁘다. 소개된 책을 읽으며 허기를 채우고 싶다. 늘 찾고 있었던 책이 모두 소개되어 있어서 이 책을 읽는 즐거움도 매우 클 것이다. 마치 멋진 뷔페식당에 들어온 느낌이다. 무엇부터 먹을지 모르는 다양한 뷔페 음식을 선택해서 먹는 즐거움이 있듯이, 어떤 책부터 읽을지 고민하게 되는 설렘이 있다. 소개된 책 중 한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에 꽂혀있다. 설렘과 기대감 그리고 즐거움을 느낀다. 책이 주는 즐거움이다. 독자들이 <걷기의 즐거움>이라는 책을 통해 걷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책 속에 소개된 책을 읽으며 독서의 즐거움도 함께 느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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