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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일기

<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 동안거를 마치며

by 걷고 2023. 2. 5.

동안거 해제일이다. 석 달간의 동안거가 끝났다. 오늘 아침에 한 시간 참선으로 안거를 마쳤다. 안거라고 하기에는 다소 민망하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참선한 것이 전부이다. 오히려 안거라기보다는 금주 기간이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석 달이라는 기간이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일상생활은 보다 단순해졌고 안정되었다. 마음 흔들림과 화나는 것이 많이 줄어들었다. 자신을 바라보고 지켜보는 힘이 조금 더 강해져서 쉽게 상황에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정, 생각, 감각, 느낌 등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는 통찰을 얻게 되었다.      

 

또 한 가지 큰 소득이 있다. 화두 공부에 대한 방법을 확실하게 체득하게 된 것이다. 화두 참선법 외의 다른 공부법을 기웃거리지 않고 집중해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간 이런저런 공부법을 따라다니고 기웃거리며 어떤 한 가지 수행법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만 동분서주하며 수많은 세월을 허비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어졌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 좋은 공부법이 늘 집 안에 있었는데 늘 남의 집만 기웃거리며 지내왔다. 화두 공부법에 대한 확고한 이해와 이 공부에 집중하겠다는 서원 자체만으로도 동안거는 의미가 있다.      

 

학교생활, 직장생활, 개인적인 친구 모임, 사회생활 속에서 늘 불편함이 있었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했고, 늘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그들에 맞춰 지내며 살아왔었다. 그러는 사이 나 자신의 실체는 사라졌고, 타인에 맞추며 살기에 급급한 왜소한 자신만 남아있었다. 상담사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의 일환으로 개인 상담을 전문가에게 6개월 정도 받은 적이 있다. 상담 선생님이 던진 단 하나의 단어 ‘contain'이 큰 통찰로 다가왔다. 원래 사전의 의미와는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그 선생님이 하신 말씀의 요지는 불편함을 내 안에 간직하며 지내라는 의미였다. 그 당시 아주 사소한 부담이나 불편함이라도 안고 있으면 매우 힘들었고 견디기 어려워서 빨리 벗어나려고 애쓰고 있었다. 마음처럼 잘 되지 않으면 분노가 올라왔고, 자신과 상대방, 상황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었다. 불편함 때문에 할 일도 손에 잡히지도 않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도 못했으며, 술에 의존하기도 했었다. 그날 상담 시간 이후로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불편함에 대응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한 채 할 일에 집중하며 보내는 연습을 했다. 일에 집중하니 불편하게 만들었던 상황이나 대상이 저절로 사라지기도 했고, 그들이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지도 않게 되었다.     

 

불편함과 함께 동거하는 연습을 한 지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다른 상황과 마주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걷기 동호회에서 길 안내자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사람들과 상황들이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고, 때로는 화나게 만들기도 했다. 명상 수행과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마음공부를 하기도 했다. 책 내용 중 ‘머릿속 생각’이 나의 생각이 아니라는 말이 마음 깊게 와닿았다. 그 이후부터 떠오르는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때로는 잘 되기도 했고 때로는 실패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 그리고 최근에 읽은 책에서 ‘생각과 감정, 느낌, 감각은 나의 것이 아니다.’라는 내용의 글귀를 발견하며 또 다른 통찰이 왔다. 머릿속 생각이나 느끼는 감정과 감각이 모두 나의 것이 아닌 어떤 놈의 장난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동안거를 시작했다. 화두를 들면 생각이나 감정, 감각 등은 저절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타난 모습을 순수하게 바라보며 화두를 들면 사라지고 또 다른 놈이 나타난다. 망상과 화두와의 치열한 싸움의 무한 반복이다. 마치 호미로 넓은 마당의 잡초를 뽑아내는 과정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이 쪽의 잡초를 모두 뽑으면 저 쪽에 다른 잡초들이 우후죽순 올라와있고, 뽑은 후 뒤를 돌아보면 다시 새로운 잡초들이 올라와있는 것과 같다. 화두 참선을 하며 아뢰야식에 쌓은 수많은 업장들이 올라오는 것이다. 수많은 전생의 수많은 업들이 얼마나 많을까? 화두 공부를 제대로 하며 업을 짓지 않으면 그만큼 업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참선 공부를 한다고 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업에 대한 업보는 반드시 받는다. 다만 화두 공부 시 떠오른 수많은 망상들을 흘려보내며 업의 무게를 줄여나갈 수 있다. 때로는 화두 공부를 하며 미망 속에서 헤매며 다른 업을 쌓기도 한다. 그래서 화두 참선은 스승의 존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점검을 받아야 한다. 비록 찾아뵙는 스승님을 안 계시지만, 전강선사와 송담 스님의 법문이 스승이다. 이 분들 말씀을 믿고 따르면 된다.    

  

석 달의 안거 기간이 끝나가는 시점에 한라산 등정을 다녀왔다. 이 등정은 큰 의미가 있다. 꾸준한 정진만이 깨달음에 다다를 수 있다는 첫 번째 통찰이다. 화두 공부가 되지 않는다고 공부법을 바꾸거나 포기하는 대신 그 안 되는 마음에 화두를 올리면 된다. 그리고 꾸준히 하면 된다. 한라산 정상도 한발 한발 전진하면서 오르듯이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하면 언젠가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친구들 여러 명과 함께 등정하며 또 1박 2일을 함께 보내며 사람들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들 역시 나의 다양한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때로는 실망스러운 모습이 보이고, 때로는 아름다운 모습도 보이고, 때로는 길동무들을 통해 배움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짧은 기간 동안 내 안에서 올라오는 다양한 생각과 감정, 감각을 마주하며 나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 불편한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들을 붙잡고 스스로 더 큰 고통을 만들어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이 두 번째 통찰이다.     

 

떠오르는 감정, 감각, 생각, 느낌 등을 붙잡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냥 흘려보내면 된다. 붙잡고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욱 깊은 고통의 수렁에 빠지게 된다. 그냥 놓아버리면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대상들은 저절로 사라진다. 고통의 원인을 따지고, 시비 분별을 하고, 고통 속에 들어가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자신의 판단과 평가, 잣대로 재단하며 스스로 고통을 키워나간다. 나의 생각과 감정이 나의 것이 아닌데, 나의 것이 아닌 것들로 인해 투쟁을 하며 자신을 괴롭히고 있다. 마치 인형극 연출 시 뒤에서 조정하는 사람들은 서로 웃고 장난을 치는데 인형들은 서로 칼싸움과 발길질을 하며 얼굴에 쌍심지를 켜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화두를 들고 앉아있을 때, 화두가 사라지는 순간 수많은 인형들이 주인공인양 나를 갖고 놀고 있다. 지옥 세상이다. 그들을 없애려고 그들과 싸우면 싸울수록 인형들의 장난은 더욱 거칠어지고 그들은 신나서 웃고 장난질을 즐긴다. 그들과 싸우는 대신에 화두를 들면 이들은 연기처럼 사라진다. 극락이다. 지옥과 극락은 하나이다. 환상에 빠져 살면 지옥이고, 환상에서 벗어나면 극락이다. 모두 환상이고 물거품이며 꿈에 불과하다. 환상에 빠져 자신의 주인공을 잃고 살아가고 있다. 떠오르는 모든 생각, 감정, 감각, 느낌 등을 갖고 싸우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 화두를 올리면 된다. 그리고 평상시에도 화두를 늘 들고 있으면 된다. 화두가 들리지 않으면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에 끌려 다니지 말고 그냥 흘려보내면 된다. 한 번에 쉽게 되지는 않겠지만, 연습을 반복하면 누구나 충분히 할 수 있다. 다만 습관을 바꾸는 연습과 시간이 필요하다. 꾸준한 반복 연습을 하면 마음근육이 바뀌게 된다. 떠오르는 감정과 감각, 느낌, 생각이 떠오를 때 판단과 평가, 해석, 재단 등을 하지 않고 그냥 바라보며 흘려보내기만 하면 된다.      

 

마음챙김(mindfulness)의 핵심은 모든 법(dharma), 즉 떠오르는 생각, 감정, 느낌, 감각 등을 자신의 잣대로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순수하게 바라보면 사라진다. 매 순간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에 반응하지 않고 그냥 순수하게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지고 다른 놈들이 나타난다. 또다시 그냥 순순하게 바라만 보면 된다.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이 흘려보내는 것이고, 흘려보내는 것이 붙잡지 않는 것이고, 붙잡지 않는 것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안거 기간 동안, 또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수행했던 마음공부를 통해 얻은 안심법(安心法)이 바로 ‘순수하게 바라보고 흘려보내는 것’이다.    

  

안거를 잘 마치게 보호해 주신 호법신장님들께 감사를 올립니다. 공부를 지도해 주신 전강선사님과 송담스님의 법문에 감사를 올립니다. 공부가 잘 될 수 있도록 금주를 허락해 주신 도반 여러분들에게 감사를 올립니다. 방 한 칸을 온전히 차지한 채 좌복 위에 앉아 있는 것을 허락해 주신 아내에게 감사를 올립니다. 길을 함께 걸으며 즐거움과 귀한 통찰을 주신 길동무들께 감사를 올립니다. 삼보께 마음 모아 귀의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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