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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일기

<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 사전(死前) 장례식

by 걷고 2023. 1. 18.

격주 간으로 상담 전문가 두 명과 함께 상담 전공 공부하는 모임에 참석한다. 나보다 상담 경험이 많은 분들과 공부를 하며 많이 배운다. 상담가로서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을 한 시간 정도 갖고 준비해 온 자료를 나누며 공부한다. ‘치료자의 자기 분석과 성장을 위한 워크북’에 나온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 첫 한 시간을 보낸다. 약 10년 정도 알고 지낸 편안한 동료 상담사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서 자기 노출도 편안하게 할 수 있다. 어제는 상담사로서 기능하는데 방해가 되는 자신의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각자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세 사람 모두 공통되는 의견이 한 가지 있다. 스스로 상담사로서 아직 부족해서 그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두 분에 비해 나는 많이 게으른 상담사이다. 나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임상 경험이 더 많은 분들도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데, 정작 부족한 자신은 그분들보다 노력을 덜 하고 있다.     

 

상담사로서 기능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얘기하다 최근에 느꼈던 생각을 얘기했다. 인정 욕구와 경제적 결핍에 대한 부분이다. 이 두 가지는 평생 나를 괴롭혀 온 문제들이다. 다른 두 분은 이 두 가지는 나의 욕심이라고 하며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고 코멘트를 한다. 또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인해 억압되고 있다고 하며 좀 더 편안해지면 좋겠다고 한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아내가 떠오른다. 스스로는 지금 상황에 만족하고 있는데, 아내를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해 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이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가 아내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 분은 부족한 부분을 좀 더 채운 후에 다시 비우는 작업을 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빨리 모든 짐을 내려놓고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더 채울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지금의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집에 돌아오며 또 돌아온 후에 ‘채운 후 다시 비운다’라는 동료 상담사의 말의 여운이 남는다. 다시 생각해 본다. 나는 과연 아내만 편안하면 정말로 자유롭고 충만해서 늘 평화롭고 행복할 수 있을까? 조용히 생각을 거듭하다 보니 나 자신의 결핍을 아내에게 투사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마음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결핍감이 만든 시선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아내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편안해지면 나도 편안해질 것이다’ 또는 ‘내가 불편한 이유는 아내가 경제적으로 풍요롭다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아내가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지 않아서 속상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물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못하기 때문에 아내도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못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단지 아내가 불편하기 때문에 내가 심리적으로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가만히 자신의 생각을 점검해 본다. 내 안의 결핍감이 만들어 낸 투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부부가 함께 살면서 좋은 시간도 있고, 불편한 시간도 있다. 그런 희로애락을 함께 나누며 부부는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고 의지하며 둘이 하나가 되어간다. 그간 아내에게 투사했다는 생각이 드니 미안한 마음이 많이 든다. 아내의 불편함을 모두 해소해 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로 인해 아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 수는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아내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 된다. 그래도 아내가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아내 스스로 풀어야 한 숙제일 수도 있다. 그 숙제 역시 필요하면 같이 풀어나가면 된다. 생각이 정리되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다.     

 

다시 ‘채운 후 비운다’라는 생각이 떠오르며 ‘사전 장례식’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같이 떠오른다. 환갑이 지났으니 모든 상황에서 자유로울 줄 알았다. 착각이었다. 여전히 마음은 시끄럽고, 유혹을 많이 느끼고, 욕심은 늘어나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여전히 채워지지 않은 결핍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며칠 전 영종도로 가는 배 위에서 바라본 갈매기 한 마리의 자유로운 날개 짓을 사진에 담았다. 그 자유로움이 그립다. 결국 결핍감에서 해방되어 모든 걸림에서 자유롭고 싶다. 내 삶의 화두는 ‘자유’다. 지금 나의 결핍감은 인정 욕구와 경제적 충족에 대한 욕구,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루빨리 이런 욕구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동안거를 하네, 명상을 하네, 수행과 마음공부를 하네, 길을 걷네 하면서 지내왔다. 욕구를 벗어나려는 행동들이 공부에 대한 욕구와 다른 일을 하는 욕구를 만들어냈다. 마음속 욕구가 사라지지 않은 상태에서 겉으로만 누르려 애쓰고 있었다. 땅 속에서 자라고 있는 풀의 뿌리를 뽑아내지 못하고 올라오는 풀을 돌로 누르려고만 했다.    

  

아직 비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아직 결핍감이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채우는 것이 낫다. 인정받고 싶은 것은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경제적으로 충족되지 못한 것은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 이 두 가지는 이성적인 판단으로 버리려고 한다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어제 동료 상담사 말씀처럼 ‘채운 후 비워라’라는 말을 따르는 것이 현명한 대처 방법이 될 수 있다. 얼마나 채워질지는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후회는 없을 것이다. 주식 공부를 하며 이것저것 써 놓았던 노트를 꺼내보았다. ‘10억 목표’라고 써 놓은 글을 발견했다. 약 2년 전 주식 공부를 하며 만들고 싶은 목표액을 아무 생각 없이 써놓은 것이다. 어제 동료 상담사들에게 ‘한 10억 벌어볼까?’라고 웃으며 던진 말인데, 이미 예전에 이 금액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실현 가능 여부와 상관없이 목표가 생긴 것이다. 인정 욕구는 책 발간과 걷기로 충족시키려고 한다. 걷기는 글쓰기와 직결된다. 경기 둘레길, 코리아 둘레길, 산티아고 포르투갈 길, 홍콩 MacLehose Trail, 제주도 올레길과 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을 걷고 길에 대한 느낌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 그리고 ‘인생 2막’에 대한 책과 니까야를 읽으며 부처님 말씀과 삶의 연결 고리를 찾는 작업을 정리해서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시점을 앞으로 역 4년 반 후인 만 70세로 생각하고 있다. 어느  만큼 이룰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나의 생활태도로 볼 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냥 꾸준히 하면 된다. 꾸준히 하는 것은 자신이 있다. 그리고 만 70세 생일에 칠순 잔치를 하며 사전 장례식을 치르고 싶다. 삶에 영향과 도움을 주신 분들을 한 자리에 모아 파티를 하며 감사의 말씀과 함께 금생의 인사를 나누고 싶다. 월정사 단기 출가에서 삭발식을 하며 미음 속으로 부모님과 맺은 인연에 종지부를 찍었다. 칠순 잔치에서 금생에 맺은 모든 인연들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하며 종지부를 찍고 싶다. 그 이후에 그분들을 만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분들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돈, 인정 욕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모두 벗어나서 참 자유인이 되고 싶다. 이 세 가지와 함께 살되 묶이지 않고 살고 싶다. 마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동안거가 끝나가고 있다. 이번 동안거는 비록 화두참선 공부는 잘하지는 못했지만, 덕분에 삶에 대한 정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고 있다. 남은 안거 기간 동안 화두참선에 좀 더 집중해서 정진하고, 안거 후 돈과 명예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진을 지속해 나가면 된다. 돈과 명예를 쫓아가되 이 둘이 나를 매몰시키면 안 된다. 이 점 늘 경계하며 정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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