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다. 늘 같은 날인데도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그렇다고 인생이 리셋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할 뿐이다. 과거는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 새해를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는 이유는 미래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이다. ‘첫날’, ‘첫눈’, ‘첫사랑’, ‘첫 경험’, 첫 만남‘ 등 ’첫‘의 의미가 특별한 이유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첫‘은 과거와의 이별을 의미하며 동시에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마치 첫눈이 온 다음 날 첫걸음을 시작하며 자신만의 족적을 만드는 것처럼. 아이들 장난감 중에 지워지는 칠판이 있다. 그림을 그린 후에 버튼을 누르면 그림이 지워지고 그 위에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칠판이다. 그린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망설일 필요가 없고 지운 후 다시 그리면 된다. 우리네 삶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온 삶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새롭게 시작을 하면 된다. 물론 인생은 칠판처럼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변화된 삶을 살면서 과거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있다.
어젯밤에 꿈을 꾸었다. “남편이 죽었다. 부인은 안타까워하며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 사람인지 모른다고 통곡을 한다. 그 옆에 다른 사람이 그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얘기한다. ‘살아 있을 때 잘하지’라고. 그 꿈을 꾸며 과연 나는 아내에게 잘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왜 이 꿈을 꾸게 되었을까? 최근에 지인의 남편이 고인이 되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지인은 남편에 대한 상실감, 고마움과 그리움으로 힘들어한다고 한다. 평상시에 그 지인이 남편에 대해 얼마나 불평을 많이 했는지 잘 알고 있기에 지인의 말씀이 이상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 고통은 진짜일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되신 분을 추모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리석게도 함께 살아갈 때는 미워하다 죽은 후에 그리워한다. 미움과 그리움은 감정이지만, 과연 그 감정은 현실 감정일까 아니면 가상의 감정일까? 한 가지 상황에 대해 상대방이 미워지기도 하고 고마워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친구가 아침 인사로 가볍게 어깨를 툭 친다. 기분이 좋을 때에는 웃으며 같이 어깨를 치거나 악수를 하지만, 기분이 나쁠 때에는 그런 인사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 친구와 관련된 과거의 묵은 감정까지 끌어내어 친구에게 반감을 표시한다. 과연 이 둘 중 어떤 감정이 진실일까? 친구의 행동은 같다. 하지만 나의 기분 상태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은 다르다.
친구의 한 가지 행동에 대해 수많은 생각을 한다. 행동은 그저 행동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그 행동이 만들어 낸 감정과 연이어 나타나는 생각들은 행동 자체보다 더 큰 괴물이 되어 우리를 괴롭히고 어느 순간 우리는 괴물의 노예가 된다. 사람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며 우리를 괴물로 인식하고 괴물에 맞는 대우를 한다. 그렇게 하면서 상대방들도 어느 순간 괴물이 되어 간다. 한 가지 행동으로 인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괴물로 변한다. 과연 사람이 괴물로 변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사람 마음속에 들어있는 것이 바로 그 사람이다. 마음을 도화지에 비유한다면 도화지 위에 그린 그림이 자신이 된다. 마음속에 천사가 있으면 우리가 천사가 되고, 마음속에 괴물이 있으면 우리는 괴물이 된다. 하지만 우리의 본바탕인 도화지는 그냥 도화지일 뿐, 화장지나 색종이도 아니고, 동시에 괴물이나 천사도 아니다.
상황과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감정과 생각들이 올라온다. 이미 벌어진 상황이나 행동은 현실이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느낌은 이미 가상현실이다. 자신의 감정과 주관, 생각,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는 가상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살아가는 것은 사람들을 만나고, 상황들을 마주치며 그에 따라 선택과 결정을 하는 일의 연속이다.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에 주관이 섞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삶의 고통은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몸을 지닌 존재로서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고, 이 이기심이 주관과 욕심을 불러일으키며 고통이 시작된다. 결국 고통의 원인은 몸을 지니고 태어난 것 때문이다. 그렇다고 몸 없이 살아갈 수도 없다. 몸을 지니고 고통 없이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고통을 고통 자체로만 느끼고 더 이상 그 고통이 변질되거나 발전되지만 않아도 고통의 크기와 빈도는 많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손에 상처가 나면 그 상처로 인해 잠시 고통만 느끼면 되고 치료를 하면 된다. 하지만 상처가 발생한 이유와 주변 사람들, 상황에 대한 원인을 따지고 화를 표출하면 손의 상처뿐 아니라 마음의 상처까지 받게 된다. 두 번째 고통이 신체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크고, 이 고통은 또 다른 고통을 야기한다.
꿈은 내게 꿈속에서 깨어나라고 친절하게 한 가지 상황을 보여주었다. 동안거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간다. 최근 연말에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면서 마음이 많이 흐트러졌고, 따라서 화두도 힘을 잃어버렸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의 풍랑이 거세게 자신을 몰아치고 있다. 나 같은 초심자에게 안거는 세상과 동떨어진 산속에서 스승님과 도반들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하는 것이 맞는다고 절실하게 느낀다. 아직 공부가 익지 않고, 공부의 힘이 없는 초심자가 일상 속에서 화두를 들고 생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괜히 사람들에게 안거를 한다고 말빚만 짓고 있다. 하지만 시작한 일이니 해제까지는 안거의 겉모습이라도 유지하며 지낼 것이다. 시작한 일은 끝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무의미한 일이라도 끝을 맺으면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예전의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젯밤 꿈은 내게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나의 참모습을 빨리 깨닫고 세상을 현실로 바라보라고 경고하고 있다. 남은 한 달 기간의 안거를 충실하게 보내라고 경책하고 있다. 자신의 모습도 모른 상태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가상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것과 같다. 모두 꿈속의 일일 뿐이다. 빨리 꿈에서 깨어나고 가상현실에서 벗어나 참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 꿈속에서 나 자신과 타인, 또 주변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꿈속 지인은 나의 모습이다. 그 지인처럼 나 역시 죽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다고 말할 것이다. 마치 꿈속에서 지인이 남편에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하는 것처럼. 꿈에서 깨어나고, 가상현실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화두참선이다. 하지만, 요즘 화두가 힘을 잃어버렸다. 방금 들어도 금방 죽어버리고, 들어도 들리지도 않는다. 연말 분위기에 휩싸여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몸도 마음도 분주하게 지내다 보니 화두가 힘을 잃어버린 것이다. 오늘 아침에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화두를 들어본다. 화두는 찰나에 사라진다. 다시 들어본다. 또 사라진다. 그냥 반복해서 든다. 화두가 사라지고 힘이 없는 것조차 인식하지 않고 그냥 무심히 들어본다. 그리고 반복한다. 화두는 순수하게 든다는 것을 상기하며 다시 화두만 들어본다. 그냥 할 뿐이다. 꿈은 집단 무의식이다. 어젯밤 꿈은 마음 공부하는 분들의 집단 무의식이 내게 빨리 꿈에서 깨어나라고 격려를 하는 매우 친절하고 고마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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