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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일기

<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내 안의 중생심

by 걷고 2023. 1. 27.

육조단경을 읽고 있다. 하루에 몇 페이지씩 읽고 있다. 또한 송담스님의 법문도 듣는다. 집에서는 단경을 읽고, 기사 노릇을 하며 대기할 때에는 법문을 듣는다. 기사처럼 밖에서 혼자 차 안에서 기다리는 모습이 안쓰럽고 미안한지 소연이는 자꾸 뭐 하느냐고 묻는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할 일이 많이 있고,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 종일 혼자 지내도 심심하지 않고 오히려 편안하다. 물론 사람들과 어울릴 때는 비교적 잘 어울리는 편이다. 혼자 있어도 좋고, 함께 있어도 좋다. 하지만 가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소음 같은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사람들 만나는 것을 가끔 꺼리게 된다. 그래서 그간 인연 맺어온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잘 유지하며 지내고 있고, 가능하면 불필요한 새로운 인연을 맺지 않으려 한다. 인연이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닌지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육조 단경을 읽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구절이 있다. “선지식들이여, 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고 함은 혜능이 선지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의 중생을 각기 자기 몸에 있는  자기의 성품으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육조단경 본문 중) 염불 할 때 또는 법회 시 늘 외우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라는 경구가 있다. 이 경구를 깨달은 후 중생들을 모두 구제하겠다는 발원을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근데 혜능 스님께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외부의 중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내부에 존재하고 자라고 있는 중생심을 제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경구가 마음에 와닿은 이유는 요즘 동안거를 지내며 내 안의 중생심을 바라볼 기회가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안거를 한다면서 마음은 늘 일상 속에 머물고 있다. 마음속에는 시기심, 열등감, 결핍감, 대접받고자 하는 욕심, 노력을 하지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기다리는 도둑놈 심보, 남의 좋은 점을 깎아내리려는 못된 심보, 자신의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못된 마음, 사소한 일을 하면서 마치 큰 일을 하는 것처럼 침소봉대하는 자기 과시 욕구 등이 가득하다. 수많은 중생심이 내 안에서 머물면서 점점 더 크게 자라고 있다. 안거는 중생심을 제도하는 방편인데, 안거를 한다고 떠들며 오히려 내세우고자 하는 어리석은 중생심을 키우고 있다. 경제적인 결핍감을 느끼며 주식 공부를 하기 위해 책과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마음공부와는 먼 일을 하느라 바쁘게 지내고 있다. 물론 경제적인 환경을 무시하는 것이 반드시 수행은 아니다. ‘깨닫기 전까지는 모두 현실’이라는 송담스님 말씀이 기억난다. 현실을 바탕으로 깨달음을 향한 노력을 해야 한다. 먹고살기에 급급하여 몸과 마음이 너무 바쁘고 힘들다면 수행하는데 오히려 짐이 될 수도 있다. 공부가 많인 된 사람에게는 환경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나처럼 초심자에게는 사소한 장애도 큰 걸림돌이 된다.

 

최근에 지인인 작가에게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은 적이 있다. 내 안의 틀을 깨지 못한다는 말이 가슴 아프게 느껴진다. 그간 틀을 깨려고 노력해 왔는데 오히려 틀 속에 갇혀 있다고 하니 마음속 한 구석에서 억울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작가는 단호하게 내게 자신의 틀을 전혀 깨지 못했다고 말했다. 길에 대한 글을 쓸 때에는 정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재미를 느낄 수도 없고 지루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글을 줄여서 쓰라는 조언도 해 주었다. 또한 자신의 삶이 드러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일침을 가해 주었다. 틀을 깨는 것과 글을 줄이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고 노력해서 고칠 수 있겠지만,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아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드백이 끝날 즈음 자신이 읽었던 책 중 도움이 될 것 같다며 ‘아티스트 웨이 (나를 위한 12주간의 창조성 워크숍, 줄리아 카메론 저)’를 선물해 주었다. 친절한 가르침과 선물에 감사를 드린다.

 

요즘 이 책을 매일 조금씩 읽고 있다. 개인적, 가정적, 사회적인 틀을 깨고 자신의 내부에 잠자고 있는 창조성을 깨워 자유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수많은 자신의 경험과 강의 경험을 통해 정리해 놓은 책이다. 혼자 읽고 따라가며 공부해 나갈 수 있는 친절한 안내서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나는 것이 두 가지,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이다. ‘모닝 페이지’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 쪽 분량의 글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자유롭게 쓰는 것이다. 어떤 형식이나 규제도 없다. 그냥 자신 속에서 올라오는 대로 쓰면 된다. 일주일 이상 매일 쓰고 있다. 세 쪽을 쓰는 것이 조금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막상 쓰다 보니 오히려 짧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떠오르는 생각이 많다. 그만큼 쓸데없는 생각들이 수없이 들끓고 있다. 글을 쓰며 감정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는 방식이다. 누가 볼 내용도 아니고 누군가를 의식해서 쓸 것도 아니니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 누군가에 대한 욕을 실컷 해대기도 했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창조성과 자유는 걸림에서 해방되어야 드러난다. ‘모닝페이지’는 올라오는 감정과 생각을 써서 버리는 방법이다. 매몰되지 않고 끌어내어 던져버리며 마음 밭의 잡초를 제거하는 방식이다. 반면 화두는 올라오는 생각의 뿌리를 바로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 화두를 들어 뿌리 채 사그라들게   만드는 방법이다. 두 가지 모두 한 가지 목표가 있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빠지지 않고 모든 걸림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목표이다. 책을 선물 받고 '모닝페이지'를 쓰며 마음 밭을 경작하는데 도움받고 있다. 가까운 지인 중 예의를 지키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던 친구가 있다. 하루는 ‘모닝 페이지’에 그 친구의 욕을 잔뜩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를 만났는데 너무 반가운 친구를 만난 듯 웃으며 그 친구를 대할 수 있었다. 그 친구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모두 ‘모닝페이지’에 써서 버렸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화두 참선과 ‘모닝 페이지’는 적어도 내게는 서로 상승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수행만 하는 수행자라면 화두 참선으로 충분하지만, 나처럼 일상 속에서 생활하며 마음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모닝페이지'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자신에게 주는 선물이다. 몸과 마음을 편히 쉬며 자신을 돌보는 일이다. ‘아티스트 데이트’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영화 한 편을 보고 안락한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듣는 것이다. 아직 하지는 못했다. 걷는 것도 좋은 ‘아티스트 데이트’가 될 수도 있지만, 걷는 것은 이미 일상생활이 되어서 뭔가 다른 상큼한 데이트가 좋을 것 같다. 영화관으로는 광화문 시네 큐브를 생각하고 있고, 그 근처의 커피숍은 천천히 찾아볼 생각이다. 당분간 걷기로 데이트를 대신하며 내게 맞는 커피숍을 찾아볼 생각이다. 자신을 돌보며 자신에게 선물을 베푸는 일은 결핍된 내면의 어린 자아에게 주는 선물이다. 결핍으로 늘 불만에 가득한 내면 아이에게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주며 아이를 달래는 일이다.

 

중생심을 다스리는 것이 무엇인지 육조 헤능 스님의 말씀을 듣고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동안거 기간에 집중하며 화두 참선을 하는 것도 내 안의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이다. 또한 최근에 알게 된 ‘모닝 페이지’와 ‘아티스트 데이트’도 안거 이후에 자신을 돌보며 중생심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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