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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일기

<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 산다는 것은?

by 걷고 2022. 12. 2.

세상이 혼란스럽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기근과 홍수, 화재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최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 사건도 잊지 못할 고통이다. 그제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숨이 막혀 고생을 했다. 지하철 파업으로 열차 배차 간격이 늘어나면서 발생한 일이다. 지하철 내에서 사람들 틈에 갇혀 숨을 제대로 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고통을 느끼며 이태원 참사가 동시에 떠올라 더욱 힘들었다. 그들의 고통을 아주 미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나의 고통을 통해 남의 고통을 느낄 수 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경제가 멈추었고, 정부와 민노총과의 갈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그들은 국민을 담보로 치열한 세력 싸움을 하고 있다. 국민을 위한 정부와 노조 단체들이 과연 정말로 국민에 대한 걱정과 국민을 위한 생각을 하고나 있는지 회의가 든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월드컵 경기가 한창이다. 결과에 따라 희비가 교차된다. 이기면 좋다고 난동을 피우고, 지면 기분이 나쁘다고 난동을 피운다.      

 

가끔 각자 자기 역할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자신의 역할만 충실하게 수행하면 세상을 잘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 역할을 하되 어떤 마음으로 하는 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해 정책을 핀다고 한다. 과연 그 정책이 정말로 국민을 위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국민보다는 오히려 정권을 유지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위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들의 명분은 국민이고 속셈은 자신의 명예와 권력과 부귀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조 연합 단체 역시 같다. 힘없는 노조원들을 위한 노조가 아닌 노조 집행부의 권력과 부귀를 위한 노조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명분과 실제와의 간격이 클수록 일반 서민들의 고통은 점점 더 커 진다.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좋을까?     

 

어제는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다. 최근에 모친을 여읜 친구를 만났다. 모친의 노환으로 마음고생을 했던 친구인데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궁금했다. 연락을 취하기도 펀치 않은 상황이다. 최근에 연락이 와서 모친 소식을 듣게 되었고 어제 만나 얘기를 나눴다. 다른 한 친구도 함께 만났다. 중국 주재원으로 나갔다가 돌아온 반가운 친구다. 가끔 만나 술 한 잔 나누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편안한 친구들이다. 서로의 소식을 묻고 들으며 친구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한 친구의 아픈 소식은 나의 아픔이 되고, 한 친구의 반가운 귀국은 나의 즐거움이 된다. 우리는 서로 연결된 존재다. 이 사실을 점점 더 깊게 느끼게 된다. 지구촌 한 구석의 전쟁이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한 구석의 축구 경기가 전 세계를 들썩이게 만든다. 친구의 슬픔과 기쁨이 나의 것이 되고, 나의 것이 그들의 것이 된다.     

 

산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잘 살아가는 것일까? 세상사는 나와는 상관없이 세상사의 이치대로 돌아가고 있다. 나는 세상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사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불만과 고통이 시작된다. 세상과 나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다만 서로 연결되어 있을 뿐이다. 세상과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온 우주, 사람과 지구, 모든 존재들이 서로 연결된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각하는 순간 자신의 언행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각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그 일과 그 일을 하는 마음이 남을 이롭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자신의 하는 언행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닌 다른 존재들을 위한 것이라는 마음바탕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보다 이전에 살았던 수많은 선배들이 하신 말씀은 바로 봉사 정신이다. 봉사는 베푸는 것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행위다.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을 나누고, 돈이 있는 사람은 돈을 나누고, 지혜가 있는 사람은 지혜를 나누는 것이 봉사다. 그 나눔은 다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게 돌아온다. 자신에게 직접 돌아오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후손들에게라도 반드시 돌아간다. 한 만큼 받는다. 좋은 일 하면 좋은 과보를 받고, 나쁜 일하면 나쁜 과보는 받는다. 이는 우주의 섭리다.      

 

오늘이 오랜 기간 좋은 인연으로 지내고 있는 친구의 환갑이다. 날짜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페이스북이 알려주었다. 친구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며 간단한 선물을 보냈다. 기분이 좋아진다. 받는 것도 기쁜 일이지만, 주는 것은 더욱 기쁜 일이다. 그 친구의 삶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기에 그의 환갑이 더욱 고맙고 기쁘게 다가왔다. 힘든 역경을 멋지게 극복하고 지금의 그가 되었다. 교수로, 또 대학의 주요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사회 명사가 되었다. 어릴 적 힘든 상황을 오직 자신만의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하고 살아왔다. 결혼 후 아이들로 인해 힘든 시간도 보냈다. 그럼에도 그는 모든 풍파를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뿌리 깊은 나무처럼 굳건히 버텨냈다. 그리고 지금의 그가 되었다. 정년 퇴임 후에는 사회 약자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며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자신의 고통을 딛고 일어서서 주위를 살펴보니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의 고통이 있는 한 그 역시 괴로울 수밖에 없다. 모두 연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연민의 마음이 저절로 일어난 것이다. 바로 보살심이다.      

 

세상사와 상관없이 자신과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가 현명하게 살아가는 방법이다. 세상사에 속지 말고, 자신에게 속지 말고, 자신의 본래 모습을 찾고 확인하고, 그 모습대로 살아가야 한다. 전강 선사는 법문에서 유위법에 속아 다니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유위법이란 나타났다 사라지는 무상한 것들이다. 부귀, 명예, 권력 모두 무상한 유위법이다. 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좋아 보인다고 또 남들이 쫓아간다고, 자신의 본모습을 잊은 채 살아간다. 귀신을 쫓는 일이다. 귀신을 쫓다가 자신이 귀신이 되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하며 미친 짓을 하고 살아간다. 빨리 자신의 본모습을 보고 확인하고 원래 주인 자리로 돌아가 주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 동안거를 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어떤 놈’이 나의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근데 주인인 ‘나’는 ‘어떤 놈’이 내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 ‘어떤 놈’이 주인인 줄 알고 쩔쩔매고 뒤만 쫓아다니고 있다. 종이 주인의 명령을 따르는 이상한 삶을 살고 있다.      

 

전강 선사께서는 화두를 ‘찾는 놈을 되찾는’ 방법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놈을 찾는데 간절하고 꾸준히 찾아가야 한다며 끊임없는 수행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어제부터 화두가 겉돌 듯 들리지 않는다. 잡아도 금방 사라진다. 망상만 가득하다. 선사께서는 그럴 때일수록 더욱 정진하고 특히 자세를 바르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눈을 평상시처럼 뜨니 망상도 사라지고 바짝 정신 차리게 되며 순간적으로 화두가 들린다. 자세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화두를 들고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자세의 중요성을 잊고 있었다.  결국 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하는 것 외에 보다 나은 수행법은 없다. 산다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사와 상관없이 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할 일을 하며 사는 것, 그 외의 별다른 방법은 없다. 수행이나, 사는 것 모두 물맛과 같다. 아무 맛도, 냄새도, 색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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