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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안거일기

<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왜 화두 참선을 해야만 하는가?

by 걷고 2022. 11. 21.

요 며칠간 수행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유 중 하나는 ‘나는 왜 걷는가?’라는 주제로 책 발간을 위한 원고를 마감하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이 책을 발간하기 위해 약 2년 전에 15명의 면담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며 원고를 정리했다. 그 원고와 출간 계획서를 출판사에 보냈지만, 잡지에 실린 인터뷰 기사 같다는 피드백이 돌아왔고, 책 발간은 무산되었다. 시간 내어 인터뷰에 응해 주시고 원고 수정까지 해 주신 분들에게 많이 미안했다. 늘 마음속 짐으로 갖고 있었다. 최근에 지인들이 전자책 발간을 도와주겠다고 해서 원고를 일부 수정했고, 내가 걷는 이유를 쓴 원고를 좀 더 추가해서 어제 원고를 마무리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도움을 주는 지인들을 만나 출간에 관한 협의를 하면 된다. 원고를 잡고 있으니 화두도 사라지고 원고 외에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어제 탈고를 하고 나니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하고 편안해진다.

 

또 다른 이유는 동안거 입제 한 지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이 해이해졌기 때문이다. 송담 스님 법문을 듣고 참선을 하고 있지만, 며칠 전부터 화두 대신 망상이 많이 올라온다. 최근에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스쳐 지나가듯 잠깐 시청했다. 배우 유해진 씨가 나와서 영화 작업을 마치고 동료 배우들과 술 한잔 마시는 재미도 즐거움의 하나라고 말하는 얘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지인들과 술 한잔 마시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 그간 술은 단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걷기 모임이나 해야 할 일은 일상생활처럼 하며 지내고 있지만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마치 동안거가 금주를 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금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만히 마음을 돌이켜보니 사람들을 만나서 얘기하고 술 한잔 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금주는 참선 정진을 잘하기 위한 방편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모습을 돌아보니 마치 금주를 위해 동안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불과 며칠 간이지만 공부가 잘 될 때에는 마음이 편안했고, 웬만한 상황에는 흔들리지도 않고, 화두를 제법 오랫동안 들고 있을 수도 있었고, 마음속에는 잔잔한 기쁨이 늘 머물고 있었다. 공부가 느슨해지니 잡념이 올라오고, 과거의 나쁜 습관들이 다시 머리를 내민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한다. 어제 아내와 작은 말다툼이 있었다.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반복되는 상황이다. 아내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어떤 상황에 대한 질문을 하고, 나는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답변을 한다. 하지만 늘 결론은 아내 생각과 판단대로 한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런 상황을 맞이하면 마음이 불편해지고 화가 나기도 한다.

 

경기 둘레길을 길 안내자로 걷기 동회회 회원들과 걷고 있다. 총 60개 코스로 매주 걸어도 1년 반 이상 걸리는 긴 프로젝트다. 걷는 사람들 중 매주 나오는 사람도 있지만, 가끔 시간 날 때 와서 걷는 사람들도 있다. 따라서 참석자들은 자주 바뀐다. 많은 사람들이 참석해서 함께 걷고 있다. 성인이 되어 만난 사람들이고 동호회라는 익명성이 보장되고 책임과 권리가 없는 자유로운 모임이다. 언제든 나와도 되고, 언제든 떠나도 된다. 어떤 강제성도 존재하지 않는 편안한 조직이다. 게다가 자연을 벗 삼아 걷기 위해 나온 심신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연령층도 4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이미 사회생활을 오랜 기간 해온 사람들이거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이 대부분 성인이 된 사람들이거나, 홀로 자신을 위한 삶을 즐기는 자유로운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말이 많아지고 서로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물론 좋은 우정을 쌓아 나가며 평생 길동무가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끔 불편함이 감지되면 길 안내자로서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정진을 게으르게 하는 것, 아내와의 반복되는 불편한 상황, 길동무들 간의 불편한 상황으로 인한 마음속 불편함은 서로 어떤 관계가 있을까? 오늘 아침에 걸으며 송담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화두 공부 지어가는 방법을 아주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법문을 들으며 다시 마음을 다잡고 수행 정진을 하게 된다. 마음이 수행으로 향해지니 아내와의 상황이나, 걷기 동호회 상황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이 저절로 수그러든다. 만약 지난 며칠간 꾸준히 정진을 해왔다면 같은 상황이 발생했더라도 마음의 불편함은 지금보다 많이 줄어들었을 것이다. 상황 속에 빠져들지 않고, 화두를 바로 들면서 조금은 쉽게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동안거라고 정해 놓은 기간 동안 안거를 하겠다고 큰소리만 쳐놓고 정진하지 못해 발생한 일들이다. 결국 아내나 동호회 상황이 나를 불편하게 만든 것이 아니고, 정진하지 못한 거친 마음 밭이 만들어 낸 허상에 놀아난 것이다. 그리고 그 허상에 빠져 벗어나지 못하고 점점 더 늪에 빠지듯 생각과 감정이 매몰되었던 것이다. 분하다!! 많이 속아왔는데 또다시 속은 것이 너무 분하다. 정진을 꾸준히 했다면 같은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반응이나 마음가짐은 지금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동호회 회원들의 불편한 마음을 좀 더 세심하게 살피지 못한 마음을 되돌아보며 길 안내자로서의 역할을 좀 더 잘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다행스러운 점은 안거 초반에 한 차례의 폭풍을 맞이한 것이다. 남은 안거 기간 동안 정신 차려 정진하면 된다.

 

마음은 참으로 변덕이 심하다. ‘나’라는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마음먹기에 따라서 다른 사람이 되기도 한다. 겉은 같은 모습이지만, 내면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다른 사람은 또 다른 변종을 만들어 낸다. 나의 실상은 없다. 무아다. 단지 ‘나’라고 생각하는 ‘나’만 존재한다. 상상 속 인물이다. 겉모습은 같은 인간이지만, 마음속 인간은 상상 속 인간이다. 마음의 장난에 놀아나며 그 놀아나고 있는 것이 자신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어리석은 사람이다. 결국 안거는 또 참선 수행은 자신의 본성을 찾는 공부법이다. 자성, 본성, 본래면목을 찾고 확인하는 작업이다. 자기가 주인이라고 착각하는 ‘마음’이 자신의 ‘참 주인’을 데리고 놀고 있을 때 바로 ‘참 주인’으로 돌아와 마음의 장난을 멈추게 하는 것이 화두 참선이다. 마음의 장난은 ‘알음알이’가 만든다. 그리고 이 ‘알음알이’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바로 화두 참선이다. 모든 생각과 판단을 끊게 만드는 것이 바로 화두이다. 앞으로도 마음이라는 놈과 ‘참 주인’의 숨바꼭질은 반복될 것이다. 동안거 기간 내내 반복될 것이다. 횟수를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화두 참선을 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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