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안거일기

<나를 찾아 떠나는 동안거 2022> 한 생각

by 걷고 2022. 11. 11.

아침에 일어나서 송담 스님의 법문을 듣는다. 오늘 법문의 요지는 일어나는 한 생각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육도윤회에 빠진다는 말씀이다. 한 생각을 잘 다스리면 천상 세계에 살 수도 있고, 지옥 세상에서 살아갈 수도 있다. 슬픈 일이 있든, 기쁜 일이 있든,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맞이하든 그 상황에서  화두를 거각하는 화두 참선법이 한 생각을 다스리는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일어난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즉 두 번째 생각이 일어나기 전에 화두를 들면 육도윤회가 끊어진다고 말씀하신다. 반면에 일어난 생각을 따라가거나 두 번째 생각을 또 일으킨다면 절대로 윤회에서 벗어날 수 다.

 

부처님께서 ‘두 번째 화살’을 경계하라는 말씀을 하셨다. 화살을 맞으면 빨리 제거하고 치료를 하면 되는데 화살의 종류, 화살의 재질, 어느 지방의 재료 등인지를 따지느라 불필요한 시간을 끌게 되면 결국 죽게 된다. 두 번째 화살이란 바로 지금 일어난 생각을 따라 이어지는 생각을 의미한다. 그 생각을 빨리 알아차리고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화두를 들면 된다. 화두를 드는 것이 바로 화살을 뽑는 일이다. 일어난 생각을 쫓아가지 않고 빨리 알아차리며 화두를 드는 일은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공부는 결국 반복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다. 한 번에 안 되더라도 반복적인 연습을 통해서 서서히 무르익게 된다. 화두를 드는 일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요즘 화두를 들기는 하지만 순간적으로 들다 바로 놓쳐버린다. 이미 열반에 드신 적명스님께서 말씀하신 화두 공부법이 떠오른다. “표주박으로 바닷물을 모두 퍼 내듯이 화두를 들고 공부하라.” 이 말씀은 포기하지 않는 마음과 꾸준한 수행을 강조하신 표현일 것이다.

 

어제 월명암에서 내소사까지 가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월명암은 15년 전쯤에 자주 왔었다. 그 당시에는 일종의 현실 도피로 가끔 들려 일주일 정도 머물다 갔다. 그 당시 주지스님은 매일매일 도량을 가꾸는 운력을 하고 계셨다. 포클레인을 헬기로 분해해서 월명암으로 옮긴 후 조립해서 직접 운전하시며 땅을 일구며 도량을 가꾸고 계셨다. 그 스님에게는 도량을 도량답게 만드는 것이 수행인 것 같다. 처음 월명암을 찾았을 때는 대웅전, 사성 선원과 엉성한 공양간, 스님 거처, 허름한 요사채와 해우소가 전부였다. 스님의 노력으로 지금은 제대로 암자의 면모를 갖추었다. 어려운 형편에서도 스님께서는 사성 선원을 개방하고 수좌들의 방부를 받아 안거를 진행하기도 하셨다. 최근에 연락을 드렸더니 연락처가 바뀌었고, 다른 스님께서 주지를 맡고 계신다. 할 일을 마치신 후에 훌쩍 떠나신 것이다. 개인 사찰이 아닌 공찰(公刹) 임에도 최선을 다해 도량을 만들고는 아무 미련 없이 떠나셨다. 갑자기 그 스님이 보고 싶어 진다. 그 스님처럼 살아가는 것은 이기심이 남아있는 한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월명암에 올라 한 스님에게 사성 선원 위치를 물었다.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지만, 그냥 스님 만난 것도 반갑고 스님에게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사성 선원은 부설 거사와 부인, 두 아들과 딸, 네 분이 모두 깨달음을 얻은 네 명의 성인을 기리는 선원이다. 스님은 “집이 어디 가느냐?”라고 말씀하신다. 마치 선문답 하듯 다소 무심하게 내뱉는 말투가 그다지 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저 쪽으로 가보세요.’라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또 그렇게 답변하면 멋지게 보이나?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추는 말투나 방편을 사용하면 안 되나?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일어났다. 몸은 이미 선원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선원 앞에 서서 삼배를 올렸다. 선방 문은 닫혀있고, 목탁만 덩그러니 벽에 걸려있다. 안거 기간임에도 선원에 결제 중인 수좌가 없는 것이 안타깝다. 마치 직소폭포에 흐르는 물이 없는 것과 같고, 개천에 물이 없어 물고기의 활기를 느낄 수 없는 것과 같다.

 

동안거 결제 중이다. 월명암을 찾아온 이유도 부설 스님이 결혼한 후에도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설 거사를 기리며 마음속으로 수행을 잘하겠다는 다짐을 하기 위해서이다. 부설 거사는 재가 불자들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의 아이콘이다. 사성 선원 앞에 큰 은행나무가 햇빛에 비쳐 강하게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비록 부설거사는 지금 존재하지 않지만, 그 은행나무가 부설거사의 현신처럼 느껴진다. 크게 우뚝 솟은 은행나무는 쳐다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빛을 발하고 있다. 부설 거사는 몸을 바꾸었지만, 은행나무가 빛을 발하며 법문을 설하고 있다. 언제 어디에서든 공부를 꾸준히 이어가면 깨달음을 얻을 날이 올 것이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고.

 

오늘 아침에 송담 스님 법문을 들으며 월명암 스님의 답변이 떠올랐다. 스님의 답변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이 남아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런 상황을 미리 알고 계신 듯 ‘일어나는 경계를 발판으로 자기 본성 자리로 돌아오라’고 법문 하신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마운 마음이 일어나거나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거나 상관하지 말고 일어나는 마음자리에 화두를 들라는 말씀이다. 월명암 스님의 답변을 듣고 수많은 생각들이 찰나에 일어났고, 그중 일부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불편함은 지옥 세상이다. 한 생각 일어나서 지옥 속에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아침에 송담 스님 법문을 듣고 화두를 그 자리에 올리며 지옥고를 면하게 되었다.

 

오늘 아침에 모 기관의 채용 면접 담당관이 전화를 해서 면접 가능하냐고 물으며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한다. 가능하다고 하며 프로필을 카톡과 문자로 발송했다. 받았다는 답변이 없다. 예전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불편해지려고 한다. 사업을 할 때 고객사 담당자들은 필요시 전화로 다그치지만,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면 받았다는 연락을 하지 않는다. 그런 태도들로 인해 화가 난 기억들이 제법 있다. 오늘 채용 담당자의 태도가 과거의 고객사 담당자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많은 연습을 통해서 이런 상황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도 많이 줄어들었고, 상대방 나름대로 어떤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음에도 여전히 불편함이 올라오려고 한다. 송담 스님의 법문이 떠오른다. 경계가 나타날 때 바로 화두를 드는 것, 이것이 육도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말씀이 떠올라 화두를 들어본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담당자가 프로필을 잘 받았다고 답문을 보내왔다. 화두를 들면서 지옥고를 면하게 되었다. 결제 기간 동안 또 일상 속에서도 오늘 스님의 법문을 잊지 말고 꾸준한 수행과 연습을 통해 하루빨리 육도윤회를 벗어나길 발원한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