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정들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었다. 최근에 면접관 의뢰가 평상시보다 조금 더 들어와서 경기도 내 여러 지자체 단체를 다녀왔고, 지난 주말에는 제주도까지 다녀왔다. 한라산 입산 예약을 하지 못해 한라산 등산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1박 2일 동안 동료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냈고, 오랜만에 제주 올레길 일부를 걷기도 했다. 제주도의 돔배 고기와 몸국 등 향토 음식도 맛볼 수 있었다. 관광지가 아닌 제주도민들이 다니는 식당에서 맛보는 음식과 분위기는 늘 다녔던 관광지의 음식 맛과 분위기와는 제법 다르다. 그 다른 점이 오히려 더 지방 여행을 다녀온 느낌을 갖게 한다. 1박 2일의 일정이 3박 4일 정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알차고 밀도 높은 일정을 마쳤다.
동안거 기간 동안 계획도 구체적으로 정리되었다. 화두 참선 세 시간, 행선 두 시간, 송담 스님 법문이나 동안거 온라인 법회 법문 듣기와 동안거 일기 쓰기가 하루 일정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상담 공부와 육조단경 공부, 화두 들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 정도이다. 상황에 따라 매일 일기를 쓰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일정에 얽매이지 않고 편안하게 하루하루 공부해 나갈 생각이다. 일상 속 화두를 들고, 안거 기간이라는 의식을 항상 유지하며 지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인들에게는 사적인 모임을 갖지 않겠다고 미리 말씀을 드렸다. ‘금주’와 ‘화내지 않기’도 매우 중요한 다짐이다. 경기 둘레길 진행은 계속해 나갈 것이고, 손주들 돌보는 일도 즐겁게 해 나가는 중요한 일상 속 공부이다. 상담 공부 스터디 모임도 결성되었고, 격주 단위로 모여 공부하기로 했다. 16일부터 시작되는데 오늘 첫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사전에 공부하기로 한 범위를 읽었다. 그간 꾸준히 공부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공부할 분야여서 그런지 내용이 머리에 잘 들어온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듯이, 그간 공부했던 내용들과 임상 경험, 그리고 불교 공부와 명상을 수행했던 내용들이 모두 상담이라는 분야로 집결되는 느낌이 들어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함께 공부하기로 한 상담 전문가 선생님들은 나 보다 상담 경험이 풍부하고 오랜 기간 공부를 한 분들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지방에 계신 아는 스님께서 불교 상담 책을 사진 찍어 보내주시며 필요하면 보내주시겠다고 한다. 당신 서재에 있는 책인데 앞으로 굳이 필요할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난번 글에서 불교 상담에 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해서 불교 상담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쓴 글을 보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도움을 주시기 위해 보내주시겠다는 것 같아 무척 고맙고 마음 써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주변 사람들이 동안거를 잘 보내라고 격려와 도움을 주신다. 사적인 모임도 흔쾌히 안거 해제 후 만나자고 연락 주시는 분들도 계시고, 공부 잘해서 원하는 바를 성취하라는 격려의 말씀을 해 주시는 분들도 계신다. 모두 고마운 인연들이다.
동안거 입제를 하기로 마음먹은 며칠 후 꿈을 꾸었다. 치아가 모두 의치로 되어있는데, 하나하나씩 빠지며 입안에서 불편하게 덜거덕 거린다. 모두 뱉어버리니 시원한 느낌이 든다. 그 꿈이 무엇을 암시하는지 며칠간 살펴보았다. ‘거짓 나’를 벗어버리는 꿈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동안거 입제를 통해서 무아를 체득하라는 암시라는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어리석은 일인지를 깨닫는 것이 불교 공부이다. 불교에서 무아란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의미이고, 모든 존재는 연기로 인해 발생한 하나의 현상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였다 사라지는 무상은 무아의 다른 표현이다. ‘거짓 나’로부터 해방되어 ‘참 나’를 찾는 공부가 불교다. 그런 면에서 의치를 뱉어버린 것은 ‘거짓 나’를 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안거에 들어간 이유도 같은 이유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해서 하루빨리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참 나’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이 역시 욕심일 수도 있지만, 공부에 대한 욕심은 깨달음을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할 뿐이다. 성철스님께서는 공부하는 사람은 이기적이어야만 한다고 하셨다. 이 사람, 저 일 모두 챙기며 공부를 해 나갈 수 없다는 말씀이다.
최근에 ‘성철 스님 화두 참선법’을 읽었다. ‘수좌 5계’를 강조하신다. 잠을 적게 잘 것, 말하지 말 것, 문자를 보지 말 것, 과식하지 말고 간식하지 말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돌아다니지 말 것이 ‘수좌 5계’이다. 모두 실천하기 어려운 일이다. 선방에 앉아서 안거를 지낸다면 할 수도 있겠지만, 일상 속에서 지키기는 쉽지 않다. 말씀하신 뜻을 잘 이해하고 그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지내면 된다. 잠은 6시간 정도 자는 편이다. 쓸데없는 말을 줄이면 되고, 책을 많이 읽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된다. 안거 기간 동안에는 육조단경과 성철스님 백일법문집 두 권만 가까이 두고 읽을 생각이다. 과식은 별로 하지 않으나 간식을 좋아하는 편인데 이번 기회에 나쁜 습관 한 가지 버린다는 생각으로 지키는 것도 좋은 생각이다. 쓸데없는 모임을 만들거나 참석하지 않고, 일상을 단순화하면 된다.
송담 스님의 법문을 매일 듣거나 용화선원 온라인 선방이 운영되고 있으니 그 선방에 들어가 매일 법문을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선방에서 법문 하시는 스님들은 잘 모르는 분들이기에 차라리 송담 스님 법문을 찾아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온라인 선방에 동참해서 들어 본 후에 결정하면 된다. 마음속으로 모시는 스승이 송담 스님이다. 약 6년 전에 송담 스님을 친견할 기회가 있었다. 스님을 막상 뵙고 나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스님께서 오직 화두만 들고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씀하셨던 기억만 남아있다. 약 40년 전에 송광사 단기 출가 후 용화선원에 가서 송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실망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리석고 창피한 생각이었다. 그 한 생각 잘못 일으킨 것 때문에 무려 40년의 허송세월을 보냈다. 지금 그 법문을 들어보면 구구절절이 맞는 말씀인데 왜 그랬는지 스스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공부할 시절 인연이 닿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제 공부할 시절 인연이 찾아왔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면 된다.
얼마 전부터 매일 화두를 조금씩 들어본다. 좌복에 앉아서도 들어보고 걸으면서도 들어본다. 일상생활 속에서도 화두를 놓친 것을 알고 들어보기도 한다. 처음에는 상기가 되어 두통이 있었는데, 이제는 매우 약한 두통을 가끔 느끼거나 아예 느끼지 못한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화두를 들고 다닌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다. 화두를 드는 방법은 성철스님의 말씀대로 하고 있다. 화두 드는 방법을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고우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순수하게 화두를 들어라’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되기 시작했고, 조금씩 그 말씀대로 따라 하고 있다. 이제 동안거를 위한 준비는 마쳤다. 주변도 차분히 정리되었고 이미 안거는 시작되었다. 안거 기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참 나를 만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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