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동안거일기

월명암과 동안거 준비

by 걷고 2022. 10. 28.

요즘 동안거 준비를 하고 있다. 별다른 일은 아니다. 그냥 안거를 하기 위한 마음 준비와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다. 마음 준비는 주변 상황을 단순화하여 불필요한 불편을 초래하지 않도록 자신을 단속하는 일이다. 스스로 말, 행동, 마음 씀씀이를 조심하는 일이다. 이 세 가지로 인해 대부분 갈등이 발생한다. 주위 사람들과의 갈등도 있고, 자신 내부의 갈등도 있다. 불교의 오계,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망어, 불음주는 소극적인 의미에서는 계율을 지키는 것이지만, 좀 더 확대해 생각하면 마음 공부를 위한 좋은 방편이다. 물이 맑아야 얼굴을 비출 수 있듯이 계율을 잘 지켜야 마음이 안정되고 지혜가 발현된다. 세숫대야가 계율이고, 고요한 물이 선정이고,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이 지혜이다. 따라서 계율은 모든 수행의 가장 기본이 되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동안거를 준비하며 가까운 지인들에게 안거 기간 동안 연락이 없어도 이해를 부탁한다고 말씀드려 놓았다. 안거 기간 동안 상담 공부를 하기로 하고 상담 스터디 그룹도 전문가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오늘 함께 공부할 책이 도착했다. 나보다 공부를 많이 한 상담 선생님들과의 공부도 기대된다. 화두 참선을 하기로 결정을 하고 나니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된다. 최근에 읽었던 고우 스님 법문집 ‘태백산 선지식의 영원한 행복’이라는 책과 시절 인연이 닿았다. 그 책에서 화두 공부를 하기 위해 성철스님 백일 법문집을 읽어보라고 하셔서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집 서가에 있는 ‘성철스님 화두 참선법’과 ‘성철 스님 법어집 육조단경’도 꺼내 놓았다. 동안거 기간 동안 읽고 또 읽을 책이다. 지금 막 완독을 한 책 ‘붓다의 치명적 농담’이라는 책도 화두 공부와 불교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돕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금강경을 불교학자와 동양철학자인 저자의 입장에서 알기 쉽게 설명해 놓은 아주 유용한 책이다. 안거를 하기로 마음먹으니 주변 상황들이 저절로 안거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조성된다. 고마운 일이다.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화두를 가볍게 들고 있다. 첫날에는 너무 힘을 주어 들어서 그런지 상기되어 두통이 심했는데, 그다음부터는 가볍게 화두를 들으니 편안하다. 걷거나 가만히 있을 때에도 화두를 들어본다. 가끔 화두를 들고 있는지 점검을 하기도 한다. 대부분 놓치고 있었다. 다시 화두를 들어본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들고 있을 수 있다. 일상 속 화두를 드는 연습도 하고 있다. 상기로 인한 두통은 고통이 심하다. 상기병에 한번 걸리면 안거를 망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매우 조심하고 있다. 너무 힘주지 말고 가볍게 들고, 화두가 들리지 않을 때 다시 반복해서 자주 드는 것이 중요하다. 스스로 화두를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하기 위해 깨어있는 것도 중요하다.    

  

일상 속에서 마음을 잘 살피는 노력도 안거 기간 중 해야만 하는 중요한 일이다. 감정에 휩쓸려 공부를 망칠 수 있다. 올라오는 감정을 빨리 알아차리고 그 자리에 화두를 올려놓아야 한다. 감정이 오래가지 않고 자신을 흔들지 않게 하기 위해 늘 깨어있어야 하고 화두를 들고 있어야 한다, 성성적적의 상태는 깨어있으면서 동시에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방편이 바로 화두이다. 또한 선사들의 가르침에 대한 믿음을 갖고 정진해야 한다. 참선 수행 정진을 위한 화두 삼요(三要)가 있다. 대신심, 대분심 그리고 대의심이다. 선사들의 말씀에 대한 믿음으로 화두를 통해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이 대신심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불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는 분심이다. 본래 부처인데 중생처럼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분한 마음이 대분심이다. 화두를 들며 화두에 대한 의심이 끊어지지 않고 의단으로 뭉쳐져야 한다. 이것이 대의심이다. 화두 삼요를 안거 기간 동안 마음속에 새기며 하루하루 정진해 나가야 한다.      

 

그간 몇 번 혼자서 안거를 시도했지만, 제대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사찰에서 진행하는 참선 프로그램에 동참해서 공부를 한다고 앉아서 잡념과 망념에 시달리기만 한 적도 많았다. 그나마 사찰 안에 조용히 머물며 법당에 앉아 있으니 외부 인연이 닿지 않아 신업과 구업을 쌓지 않은 것이 다행일 뿐이다. 좌복에만 앉으면 무슨 생각이 그렇게 많이 올라오는지 끊임없이 생각들이 올라왔다 변하고 사라지고 다시 다른 생각들이 올라온다. 평상시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들락날락거리지만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니 수많은 생각들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보게 되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생각들을 따라가거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면 공부에 좋은 일은 아니다. 생각을 따라가지 말고 떠오르는 생각을 빨리 알아차리고 화두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 다행스럽게 좌복에 앉아 조는 일은 별로 없다. 오랜 기간 매일 아침에 한 시간 정도 호흡 명상을 수행했던 것이 도움이 된 것 같다. 앉는 연습도 제법 했고, 호흡 명상을 하며 집중할 수 있는 힘도 조금은 키웠다. 이제 화두를 들고 의심만 하면 된다. 헛공부라고 생각했던 지난 세월의 모든 과정과 노력이 결코 헛짓을 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공부 인연이 있기는 있나 보다.      

 

만들어진 한 가지 좋은 습관이 있다. 일단 시작하면 꽤 오랜 기간 꾸준히 하는 습관이다. 글을 쓰는 것도, 걷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공부를 하는 것도 꾸준히 하고 있다. 아내가 예전에 제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점이 시작하곤 금방 포기하고, 또 다른 일을 시작하는 나쁜 습관이었다. 요즘은 그런 얘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꾸준히 할 힘이 생겼다는 것을 느끼고 있고, 이런 느낌이  더 꾸준히 할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을 만들어준다. 고치고 싶은 나쁜 습관도 있다. 술과 관련된 것들이다. 술을 과음하면 회복이 늦고, 몸이 피곤해서 하루 이틀 정도 루틴화 된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고 TV 채널을 여기저기 돌리며 시간을 죽이는 나쁜 습관이 있다. 어떨 때에는 하루 종일 TV와 씨름을 하기도 한다. 또한 술을 마시면 마음이 거칠어지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마음속에 거친 생각들이 많이 올라온다. 술이 원인이다. 그래서 이번 동안거 기간 동안 금주를 결정했고, ‘TV 시청 안 하기’ 규칙도 만들었다. 또한 화를 가끔 낸다. 그 화로 인해 몸이 아프고 일상생활로 회복되는데 시간이 걸린다. 안거 기간 동안 화를 내지 말자는 규칙도 만들었다. 만약 마음속에서 화가 올라오더라도 최소한 표현하지 말고 걷거나 화두를 들고 화를 잠재우는 연습도 할 생각이다. 나쁜 습관 하나라도 제거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안거의 중요한 소득일 것이다.      

 

11월 8일이 동안거 입제인데 입제 전 일요일에 홀로 근처 사찰에 가서 예불을 모시고 입제를 할 계획이다. 11월 9일에 월명암에 간다. 신라 진덕 여왕 때 고승인 부설 스님께서 수행을 위해 길을 나서다 하룻밤 머문 집의 딸을 살리기 위해 결혼을 한 후 온 가족이 수행을 철저하게 하면서 부인, 두 아들과 딸 모두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스님이 부설 거사가 되어 지은 암자가 월명암이다. 월명은 부설 거사의 딸의 이름이다. 이 암자에는 사성선원(四聖禪院)이 있다. 사성은 부설 거사와 부인, 그리고 두 아들과 딸을 의미하는 것 같다. 약 10여 년 전에는 월명암 주지스님인 천곡 스님께서 선원을 증축해서 수좌들이 모여 안거를 지냈던 선원이다. 요즘에도 안거를 지내는지는 잘 모르겠다. 선원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선원에서 공부하는 인연이 귀하고 중하다는 의미다. 월명암에 가서 사성선원 문고리 한번 잡아보고 싶다. 부설 거사가 부인 묘적을 위해 지은 묘적암도 월명암에 있다. 10여 년 전에 자주 월명암에 머물면서 그 묘적암에서 지냈던 기억도 있다. 묘적암도 한번 둘러보고 싶다. 부설 거사와 그의 가족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설전의 얘기를 떠올리며 월명암에 올라 수행의 마음을 다지고 싶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