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석 달간 동안거에 들어간다. 전국의 각 선원마다 방부를 들이고 결제 법회를 열고 결제에 들어간다. 일 년에 두 번 하안거와 동안거를 지내며 수좌들은 공부에 매진한다. 수좌들 외에 재가 신도들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결제를 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번 동안거부터 일상 속에서 집중해서 화두 공부도 하고 안거 하는 마음가짐으로 지내려 한다. 한 선배로부터 용화선원에서 온라인 선방을 운영한다는 말씀을 듣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확인해 보았다. 온라인으로 결제 법회도 하고 동안거 온라인 선방도 운영한다.
오늘이 결제일이라 온라인 결제 법회에 참석했다. 스님들 약 50여 명 정도, 일반 신도들 약 100여 명 이상이 참석하여 결제 법회를 진행한다. 참선 수행하는 도량답게 법회가 매우 단순하고 간결하다. 천수경 독송을 한 후 삼귀의와 법을 청한다. 송담 스님께서 예전에 결제 법회에서 말씀하셨던 녹음된 법문을 틀어놓고 법문을 듣는다. 법문 후 예불을 모시고 석가모니 정근을 한 후 축원과 반야심경 그리고 사홍서원으로 마무리를 한다. 정근도 7회 정도 매우 짧게 하고 예불도 삼보에 대한 예불만 모시며 일반적으로 하는 의식을 많이 생략하여 진행한다. 용화선원에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온라인으로라도 법회를 보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의식을 매우 중요시하는 편은 아니지만 의식의 필요성은 느낀다. 특히 오늘 같은 결제 법회에서는 의식을 통해 또 큰스님의 법문을 통해 안거 기간 동안 공부를 잘 지어갈 수 있는 마음도 다지고 대중의 원력을 통해 공부에 힘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송담 스님의 법문 역시 약 20분 정도로 매우 짧게 끝났다. 약 3년 전 결제 법회 법문을 녹음해서 틀어준 법문이다. 세상에 속아서 살지 말고, 쓸데없는 데 정신 팔고 살지 말고 화두 공부를 열심히 하라는 말씀이 주 내용이다. 선열 미식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선열(禪悅)이란 선정에 드는 기쁨을 의미한다. 입맛으로 미식을 즐기지 말고, 선열로 삶의 기쁨을 느껴보라는 말씀이다. ‘선정의 기쁨’이라는 단어는 다소 비불교적이라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한다. 선정은 기쁨이나 슬픔의 양변을 여읜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달리 말로 표현할 수 없기에 그런 표현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말은 참선 공부에 도움이 되면서도 말에 빠지는 순간 공부와는 점점 멀어진다. 송담 스님은 법문에서 ‘마음 길이 끊어져야 묘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마음 길‘을 끊기 위해서 화두를 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 마음 길‘은 생각의 길이기도 하고, 습관의 길이기도 하고, 자동적 사고이기도 하고, 일상 속 모습일 수도 있다. 모두 업을 짓는 언행이다. 화두는 업을 소멸하는 방편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살아온 익숙한 방식에서 탈피하여 덜 익숙한 상황을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화두 공부라는 생각도 든다. “마음공부는 익은 것 설익게 만들고, 설익은 것을 익게 만드는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안거 기간 동안 수행을 하며 또는 일상생활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과 태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접하고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 수행이고 마음공부다. 금생에 깨달음을 이루겠다는 서원을 세우며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공부에 임해야 한다. 쉽지 않은 공부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공부하며 서서히 깨달음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 공부를 가로막고 있는 나쁜 습관을 없애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습관이 바로 ‘마음 길’ 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삶을 살아오면서 쌓은 수많은 업장이 나를 이끌어 가고 있는데, 정작 주인은 업장이라는 도둑놈의 노예 노릇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업장이 나를 끌고 다니지 않게 주인으로 돌아오는 작업이 바로 화두공부이고 마음공부이다. 몸에 밴 나쁜 습관들을 없애는 작업이 바로 도둑놈의 손발을 잘라내는 작업이고, 도둑놈을 죽이는 작업이 바로 화두공부이다. 일상 속 나쁜 습관을 빨리 알아차리고 습관에 따르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고 화두 참선하며 주인을 찾는 꾸준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하다. 도둑놈과 주인은 실은 한 몸이다. 도둑놈이 날뛰면 주인은 설 자리가 없어지고, 주인이 나타나면 도둑놈은 저절로 사라진다. 마치 전등불이 켜지면 어둠이 사라지듯.
아침에 두 시간 참선 시간을 가졌다. 얼마 전부터 안거 입제를 위한 마음 준비를 해서 그런지 화두 드는데 두통을 느끼지 못하고 잘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수많은 망념들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지만, 가능하면 망념들의 놀이에 쫓아다니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며 화두에 집중했다. 공부 마치고 나오니 아내가 마늘 꼭지 따는 것을 도와달라고 한다. 칼로 마늘 끝에 있는 꼭지를 베어내며 화두를 들어본다. 조금 들리다 사라진다. 다시 들어본다. 다시 사라진다. 이 과정을 반복한다. 점심 식사 후 온라인 선방에 들어갔다. 스님께서 오늘 법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해주신다. 용화선원 조실 스님이신 전강 선사께서 예전에 법문 하신 육조단경 강의를 녹음한 법문을 들려주신다고 한다. 육조단경은 이번 안거 기간 동안 꾸준히 공부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경전이다. 전강 선사의 귀한 강의를 듣게 되니 마음이 설렌다. 누워서 법문을 듣다 잠시 잠에 빠졌다. 다시 들어봐야겠다. 온라인 선방의 좋은 점은 법문을 언제든 다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비록 법문 시간에 듣지 못하게 되더라도 언제든 편한 시간에 다시 들을 수 있으니 일상생활을 하는 재가 신자들에게는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오늘부터 시작된 2022년 동안거 기간 동안 공부를 해서 얼마나 변화가 생길지는 모른다. 하지만, 설사 아무런 변화가 없더라도 공부했던 힘은 남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공부의 힘이 다음 안거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공부의 힘을 이어가면 안거와는 무관하게 매일매일 공부를 이어갈 수도 있고, 일상 속 나쁜 습관을 제거하면서 삶이 차츰 안정적이 될 것이다. 꾸준히 쓰는 안거 일기도 자신을 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고, 공부의 진전을 살필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안거 마친 후 안거 일기를 다시 읽어보며 안거 기간 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확인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장의 기록은 의미가 없더라고 100장의 기록은 역사이고 의미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그 자료가 바탕이 되어 자신을 성찰하고 다음 안거를 위한 준비를 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매일 쓰지는 못하더라고 꾸준히 써 내려가며 공부의 기록을 남기고 싶다. 안거 일기를 쓰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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