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용화선원을 통해서 전강 선사와 송담 스님의 법문을 녹음한 SD 메모리 카드를 구입했다. 약 1,000 편의 법문이 들어있다. 동안거 기간이지만 움직일 일들이 제법 많아 매일 온라인 선방에 들어가는 것이 수월치 않아 법문을 이동 중에도 들을 수 있는 방편을 만든 것이다. 개인 상담도 진행하고 있고, 상담 전공 스터디 그룹에 참석하여 공부하고 있다. 채용 면접 의뢰가 들어오면 지자체 사무실로 이동을 해야 하고, 손주들 돌보기 위해 이동할 일도 제법 있다. 매주 토요일에는 경기 둘레길을 진행하고 있다. 지인들과 개인적인 만남을 하지 않을 뿐이지 일상생활은 거의 그대로 유지하며 지내고 있다. 이동할 일들도 많고 이동 시간도 많아서 녹음 법문을 듣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구입했다.
고우 스님의 말씀대로 ‘성철스님 백일법문 상권’을 읽었다. 어떤 부분은 잘 이해가 되기도 하고, 이해가 쉽게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스님께서는 상권을 자주 읽어보는 것이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말씀하셨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고, 자주 반복해서 읽고 싶어서 전자책을 구매했다. 전자책은 전철이나 어느 장소에서도 쉽게 읽을 수 있고, 별도의 가방이 필요하지도 않다. 밝기를 조정할 수도 있어서 조명과 상관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도 있다. 이 책을 반복적으로 읽으며 성철스님께서 말씀하신 중도, 연기, 무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고우 스님께서 책에서 강조하신 말씀대로 따라 하고 있다. 잘 모르는 부분은 먼저 공부하신 선사들의 말씀을 듣고 따라 하면 된다.
세월이 많은 것을 변하게 한다. 약 30여 년 전에 용화선원에서 송담 스님 법문을 듣기 위해 먼 거리를 한 여름에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선원에는 스님들이 법당의 반을 채우고 앉아있었고, 나머지 반은 재가 불자들이 앉아서 법문을 듣고 있었다. 한 여름 냉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법당에서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소음을 들으며 법문을 듣는 일 자체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 스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이동을 하거나 수많은 인파에 밀려다니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다. 편안하게 언제 어디에서든 스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다. 별도의 기계나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휴대전화만 들고 다니면 들울 수 있다. 편안함과 편리함만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바뀐 세상에 맞게 공부해 나가면 된다.
책 읽는 일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부터 전자책을 구매해서 읽고 있다. 종이책을 선호하는 편이고, 전자책에 익숙하지 않아 약간의 거부와 저항감을 갖고 있었다. 최근에 전자책 발간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구매해서 읽고 있는데, 읽다 보니 익숙해져서 편안하다. 늘 가방에는 책 한 권 넣고 다닌다. 책, 필통, 선글라스, 휴대전화, 메모지, 명함지갑, 카드 지갑 등이 가방에 들어있다. 외출할 때마다 물건을 챙기는 것도 일이다. 전자책을 구매하고 나서는 책을 넣을 필요가 없어지고 따라서 짐도 줄게 되어 가끔은 가방 없이 이동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심지어는 전철을 기다리고 있으면서도 손쉽게 책을 읽을 수 있다. 종이책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니 편안함과 편리함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안거는 잘하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본다. 아직 화두가 잘 들리지는 않는다. 다만 고우 스님께서 말씀하신 순수하게 화두를 들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 의미를 알게 되면서 화두를 들면서 발생할 수 있는 상기병은 저절로 사라졌다. 힘을 주어 화두를 들 필요가 없이 순수하게 화두를 드니 편안하다. 다만 화두가 오래 들리지 않고,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제 막 시작했으니 욕심을 내려놓고 꾸준히 하면 된다. 길을 많이 걷는 편이어서 걸을 때 화두를 들어본다. 예전보다 조금 더 자주 드는 편이다. 일상 속에서도 화두를 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밥 먹을 때, 화장실에 갈 때, 운전할 때,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때, 어떤 생각이 일어날 때 등 화두를 들고 있지 않다고 알아차릴 때마다 바로 화두를 든다.
금주를 하고 있다. 어제 경기 둘레길을 걸은 후 뒤풀이 장소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말 수도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심심하거나 지루하지는 않지만, 소음과 냄새, 많은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진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나 역시 그들 중 한 명이었다. 집에 돌아와 씻은 후 후기를 쓸 수 있으니 시간 낭비를 줄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아침에 기상해서도 전날 술 마실 때와는 전혀 다른 심신의 상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술 마신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차이를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안거 기간 동안 금주 한 가지만 잘 지켜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화내지 않고 하루하루 잘 지내고 있다. 예전 같으면 화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마음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어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가게 된다. 이 또한 큰 변화이다. 안거 기간 동안 화두가 이어지는 용맹정진도 중요하지만, 일상 속 변화를 느끼며 강화시키는 일도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화두가 익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매일 꾸준히 수행하면 된다. 금주가 수행을 도울 것이고, 단순한 일상이 수행을 도울 것이고, 안정된 마음이 수행을 도울 것이다. 수행과 일상이 분리된다면 이는 결코 수행이 아니다. 수행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인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일상과 분리되는 언행을 한다면 이는 잘못된 수행을 지어가고 있는 것이다. 성철스님께서도 책에서 조용한 곳만 찾아서 공부하려 한다면 고적병에 걸릴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물론 수행을 위해 일정 기간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선원에서 용맹 정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는 수행을 위한 방편이지 일상을 벗어나서 수행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수행의 결과는 일상 속에서 드러나게 되어있다. 만나는 사람과 상황을 통해 다시금 수행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
동안거 입제 후 6일이 지나고 있다. 차분하게 준비하고 꾸준히 수행하고 있다. 공부에 필요한 내용들도 모여졌다. 이제 매일 스님 녹음 법문을 듣고, 성철스님 백일 법문도 읽고, 육조 단경도 읽으며 마음공부를 해 나가고, 화두 참선을 꾸준히 수행하면 된다. 성철 스님께서는 결국 화두 참선만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하고 최고의 방법이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불교의 존재 이유이다. 수행을 잘 지어서 나와 주변 사람들이 모두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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