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606 -20210607 10km
코스: 불광천 – 문화비축기지 – 난지천 공원 – 월드컵 공원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4,104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어제는 홀가분하게 걷고 싶어서 휴대전화와 지갑도 들지 않고 물 한 병 들고 집을 나섰다. 휴대전화는 편리한 도구이고 특히 걸으며 걷는 거리를 측정할 수 있고, 사진을 찍을 수 있어서 늘 들고 다니는데, 가끔은 이조차 짐처럼 부담스러운 날도 있다. 대부분 배낭을 메고 다니기 때문에 배낭 어깨 끈에 포켓을 달고 포켓 안에 휴대전화와 지갑을 넣어 다닌다. 손에는 아무것도 들고 다니지 않아서 편안하다. 하지만 오늘처럼 가벼운 차림으로 나갈 때는 휴대전화는 여간 성가신 물건이 아니다. 달랑 물 한 병 들고 나서니 몸도 마음도 가볍다.
오늘 백신 접종을 맞았다. 은근히 신경이 쓰여서 일주일 전부터는 금주했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자제했다. 걷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 외에 다른 일정을 만들지도 않았다. 나이 들어가면서 쓸데없는 걱정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도라도 조심하며 몸 관리를 해야 자신과 아내, 가족, 주변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 아프면 혼자 힘든 것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모두 함께 걱정하고 부담을 안아야 한다. 매일 꾸준히 걸으며 건강관리도 신경 썼다. 백신 후 부작용이나 신체적인 부담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해서 조금이나마 자체 면역력을 키우고 싶었다.
오전 10시 예약이지만 9시 30분경 병원에 도착했다. 문진표 작성 후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처음 온 병원인데 의사와 간호사들이 무척 친절하다는 느낌이 든다. 10시 정각이 되자 호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의사와 사전 면담시간이다. 건강 상태는 어떤지? 최근에 대장검사를 받은 적은 있는지? 어떤 약을 먹는지도 물었다. 건강 상태는 양호하고, 약 5년 전쯤 대장 검사를 받았고, 고혈압 약을 먹는다고 했다. 대장검사받은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굳이 시간 끌 필요가 없을 것 같아, 그냥 가만히 있었다. 면담 마치고 밖에서 대기하니 간호사가 호명해서 주사실로 들어갔다. 어느 쪽 팔에 주사를 맞겠냐고 물어봐서 왼쪽이라고 했다. 왼손잡이라서 백신으로 인한 부작용이 조금이라도 적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그렇게 대답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오른팔을 많이 사용하기에 왼팔에 맞겠다고 할 것 같다. 주사를 맞은 후 약 30분 정도 대기실 소파에 앉아 쉬며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부작용 반응을 지켜봤다.
뭐 할까? 지루한 시간 30분을 어떻게 보낼까? 휴대전화를 꺼내 “코로나 19 예방접종 증명서” 어플을 찾아보고 설치했다. 본인 인증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실수를 한 후에 겨우 성공할 수 있었다. 예방 접종 예약하는 것도 온라인 신청이 잘 되지 않아 전화로 신청했었다. 온라인 세상에서 적응하며 맞춰 살아나가기 위해서라도 실패하더라도 꾸준히 도전과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안 되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하지만, 그 이전에 가능하면 홀로 시도하고 있다. 예전에는 글을 모르면 문맹이라고 하지만, 요즘은 온라인 세상과 단절되는 '온라인 문맹'이라는 말이 나올 수도 있다. 글을 쓰고 SNS에 올리는 이유 중 하나도 온라인 문맹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 비록 나이 들어가지만 SNS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위해서 하고 있다.
증명서 발급 후 스크린 숏을 해서 갤러리에 보관했다. 맨 처음 한 작업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이었다. 요즘은 사진을 찍으면 우선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일부터 한다. 예방 접종했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도 중요할 것 같다. 예방 접종은 나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타인에게 감염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줄어드는 효과가 크다. 나와 주변 사람들을 위해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백신 접종 첫날 가장 이른 시간에 예약을 했고, 막 접종을 끝냈다. 30분 정도 기다리다 별 이상이 없어서 간호사에게 얘기한 후 2차 접종은 언제 맞느냐고 물어보았다. 1차 접종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2차 접종하는 날짜가 결정된다. 11주 후인 8월 23일에 2차 접종을 맞는다.
아내에게 제일 먼저 전화했다. 마치 무슨 큰 일을 마친 사람처럼 전화로 잘 맞았다고 했고, 아내는 수고했다고 말했다. 예방 접종 맞는 일이 무슨 큰 일을 하는 일처럼 되어버린 세상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 주변 사람들에게 접종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걷기 동호회에 접종 증명서와 글을 올렸다. 5인 이상 모임 금지로 인해 네 명이 모여 걷고 있다. 2차 접종까지 마치면 내가 길 안내를 하는 날에는 5명이 모여 걸을 수 있고, 누군가가 접종을 마쳤다면 그 인원만큼 다른 사람들 참석이 가능하다. 함께 어울려 떠들고 웃고 걸었던 일상이 그립다. 그 후에 가족 단톡방과 친구들과의 단톡방에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지금 카톡을 열어보니 가족 외에 네 개의 친구 모임 단톡방에 올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선후배 모임과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 모임 등이다. 접종 소식을 알리면서 이 친구들이 앞으로 평생 함께 살아갈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열명 남짓한 친구들에 불과하지만, 너무나 소중한 친구들이다.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들과 좋은 인연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친구들 만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하다. 예방 접종 사실을 알리면서 친구들이 다시 한번 걸러진 느낌이 들었다. 아이 결혼하면서, 부모님 장례 치르면서, 그리고 예방 접종을 알리면서 평생 살아갈 친구들이 저절로 결정된다. 연락을 받은 친구들은 대부분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건강 잘 챙기라고 했다. 고맙다. 아직 접종하지 않은 친구들도 빨리 접종해서 코로나로부터 해방되길 기원한다. 코로나 접종은 자신과 타인을 위해 하는 것이다. 또한 접종 후 소식을 알리며 내게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저절로 알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방 접종 맞은 지 6시간이 경과되고 있지만, 다행스럽게 왼팔에 약간의 뻐근함만 있을 뿐이다. 지금 막 ‘소금길’이라는 책을 다 읽었다. 갑자기 노숙인 신세가 된 영국인 부부, 그중 남편은 몸이 점점 더 경직되는 질병을 갖고 있다. 이 둘은 할 일이 없고, 살 집도 없어서 1,000km에 달하는 영국 SWCP (South West Coast Path) 를 텐트에서 지내며 걷기로 결정한다. 걸으며 절망이 희망으로 변하고, 불안이 평온으로 변하고, 분노가 사랑으로 변한다. 자연과 하나가 되며 삶의 지혜를 터득하며 살아가고 있다. 예방 접종을 맞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하루 종일 편안하게 책을 읽으며 마음속 평온을 느끼고 있다. 나도 그들처럼 백수 생활에 익숙해가고 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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