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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28] 길 속에 길이 있다

by 걷고 2021. 6. 3.

날짜와 거리: 20210602  14km

코스: 불광천 – 홍제천 – 홍제역

평균 속도: 5.4km

누적거리: 4,061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오후에 상담 한 사례 진행하고 지인을 만나 잠시 차 한잔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집에 돌아오니 오후 5시가 조금 넘었다. 몸이 많이 피곤하다. 하루에 한 가지 이상 약속을 하는 것이 무리다. 외출 하기 한 시간 전부터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한다. 예전에는 30분이면 충분한 시간이었다. 이런 과정도 가끔은 불편하고 힘들게 느껴지기도 한다. 노화현상이다. 늙어가는 것을 인식하고 수용하며 그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하며 살아가야 한다. 저녁 식사 후 30분 정도 수면을 취했다. 몸이 조금 개운해진 것 같다. 

 

 갑자기 여름 날씨가 된 것처럼 낮 기온이 높고 덥다. 수요 저녁 걷기에 나가기 위해 복장을 고민하다 요즘 입었던 바지 대신 칠부바지를 선택했다. 요즘 입었던 바지는 오늘 같은 날에는 더워서 입기가 불편하다. 배낭도 허리 가방으로 바꿔 들었다. 뭐든 가볍게 하고 싶었다. 몸이 피곤하니 마음도 따라 피곤해져서 가볍게 만들고 싶었다. 바지를 바꿔 입고, 등산 백도 허리 가방으로 바꾸니 몸이 한결 가볍다. 덩달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 같다. 몸이 워낙 피곤해서 걷기 나가기가 싫었지만, 매주 수요일 저녁은 길 안내를 하는 날이라, 어쩔 수 없이 나가야만 한다. 역할 수행을 위해 걷기 싫어하는 마음을 다독거려야 한다. 다행스럽게 참석자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표정이 밝아지고 웃으며 수다를 떨게 된다. 길 안내를 하면서 저절로 익혀진 페르소나이다.

 

 세 명의 참석자들과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에 바로 걷기 시작했다.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역할이 피곤함을 극복하게 만들어 준다. 싫어하는 마음에서 리더로서의 마음으로 변환된다. 이왕 걷기 위해 나온 것이니 즐겁고 활기차게 걷고 싶었다. 평상시보다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해서 거의 쉬지 않고 걸었다. 마음속에는 빨리 끝내고 집에 들어가서 쉬고 싶은 마음도 많이 있었고, 피곤한 마음에서 길동무들과 즐겁게 수다를 떠는 것도 조금 불편해서 앞으로 치고 나가며 속도를 높였다. 

 

 걷다 보니 몸이 조금씩 회복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옆에 같이 걷던 길동무 한 분이 자신의 얘기를 재미있게 하고, 나도 그 분위기에 맞춰주며 즐겁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사람들 사는 모습은 대동소이하다. 배우자 얘기, 부모님 얘기, 아이들 얘기, 직장 얘기, 살아오면서 힘들었던 얘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길동무를 보며 걷는 것이 단순한 신체 운동이 아님을 다시 한번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다. 걸으며 피곤한 몸을 회복하기도 하고, 동시에 힘든 마음속 얘기를 꺼내며 비워내기도 한다. 활발하게 움직이며 나는 땀은 지친 심신의 침전물을 녹여내고 배출시키는 역할을 한다. 홍제천의 시원한 바람은 땀을 식혀주면서 동시에 마음의 화를 식혀주기도 한다. 사람들이 걷는 이유는 단순히 신체 운동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저녁 걷기에 사람들이 나와서 걷게 된다. 하루 업무나 일과를 마치고 지친 심신에 활력을 되찾기 위해 나와서 걷는다. 내가 오늘 지친 몸을 이끌고 나와서 걸으며 회복되듯이.

 

 홍제천을 지나 대로변으로 나왔다. 저녁 9시경인데 대로변의 식당들이 벌써 문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가게에 손님은 별로 없다. 가끔 들리던 제법 큰 한식당은 아예 문을 닫았는지, 불 조차 켜있지 않았다. 늘 붐비던 대로에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식당과 가게들의 삭막한 불빛이 오히려 더욱 스산하게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최근에 만난 지인은 요즘 주문이 줄어서 일 거리가 없다고 한다. 이미 일 년을 버텼는데, 언제까지 버텨야 힘든 시기가 지나갈지 가늠할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고 했다. 서너 시 경에 사무실에서 나온다고 한다. 사무실에 있어 봐야 마음만 답답하다고 했다. 할 말이 없다. 나 역시 사업을 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기에 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시간 나는 대로 걸어요”가 내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말이다. 지친 몸을 걸으며 회복하듯이, 힘든 상황을 걸으며 회복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꾸준히 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중간에 포기하거나 아니면 무기력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설사 방향이 보이지 않아도 움직여야 한다. 어둠 속에서 또는 안갯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며 멈추지 않아야 한다. 넘어지고 떨어지고 다쳐도 다시 일어나서 전진해야만 한다. 우리의 힘이 모두 소진되면 보이지 않는 손이 우리에게 손을 내민다. 그때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알게 된다. 이런 과정이 자신의 교만을 없애고, 좀 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며, 자신을 단련시키기 위한 신의 선물이라는 것을. 답은 간단하다. 멈추지 않은 것이다. 이 얘기는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어둠 끝에는 밝음이 있다. 끝없는 어둠도 없고, 끝없는 밝음도 없다.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비록 지금 앞이 보이지 않고, 죽을 정도로 힘들더라도 밖에 나와서 걸어요.” 걸으면 길 속에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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