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525 – 20210528 40km
코스: 서울 둘레길 외
평균 속도: 4 km/h
누적거리: 4,052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비가 내리고 있다. 일기예보의 의하면 비가 제법 내리고 바람도 많이 분다고 한다. 오늘은 서울 둘레길 북한산 구간 중 일부를 걷기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걷는 날이다. 길 안내자로 비 소식이 있으니 걱정이 앞선다. 나 역시 안내자라는 책임감 때문에 걸으러 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걷기로 한 것이라면 벌써 포기하고 집에서 편안하게 TV와 씨름하며 보냈을 것이다. 약속이 주는 부담감도 있지만,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8시 반쯤 집에서 출발했다. 아침 출근길 전철 안에 혼자 등산복, 등산화, 배낭을 메고 있으니 외계인이 된 느낌이다. 오늘 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지낼 사람들 앞에 등산복장으로 서 있으려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얘기한다. “오늘 같은 날을 위해 당신들 나이에 치열하게 살아왔다.” 혼자 속으로 얘기하며 쑥스럽게 웃는다.
약속 장소에 나가니 참석자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비는 거의 그쳐 가고 있다. 수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빨래골로 이동해서 걷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 비는 그쳤다. 막 비가 그친 숲이 뿜어내는 향기는 짙고 강하다. 물기를 가득 품고 있는 나무와 풀, 그리고 땅은 그들의 향기와 함께 강한 생동감을 전해주고 있다. 저절로 얼굴에는 미소가, 몸에는 활기가, 마음에는 즐거움이 넘쳐흐른다. 길동무들도 모두 좋아라 한다. 길 안내자로서 참석자들이 좋아라 하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누가 오늘로 날을 잡았느냐고 연신 자화자찬을 한다. 길동무들은 맞장구를 쳐주며 흥을 돋는다. 출발 전의 갈등을 이겨낸 덕분에 이런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삶은 매 순간 선택으로 이루어진다. 어떤 선택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만약 오늘 같은 날 비 올 걱정에 집에만 머물렀다면 엄청난 후회를 했을 것이다. 오늘 선택은 잘 내린 결정이다.
어제 한 친구를 만났다. 사회에서 만난 후배인데 형제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인해 그 형제의 몫까지 살아야 된다는 강박으로 자신을 몰아붙이며 살아온 친구이다. 자신의 몫을 살기도 힘든 인생살이에 형제의 몫까지 살겠다고 발버둥 치며 힘들게 살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물론 덕분에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지위를 확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친구는 젊음과 열정, 그리고 노력으로 훌륭하게 해 내고 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는 지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 늘 자신보다는 가족과 아이들의 삶이 우선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낸 적이 없다. 휴가도 아이들과 또는 어머님을 모시고 다녀왔다. 아이들이 방이 더 필요하다고 해서 자신의 방은 내어주고 자신은 집 거실에서 지내고 있다. 회사에서는 집무실에서 근무하고, 집에서는 거실에서 회사 업무를 보며 지내고 있다. 쉴 수 있는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이 없다. 그 친구의 모친은 TV를 늦게까지 보니 당신이 거실에서 지내는 것이 좋다고 하는데 정작 그 후배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모친을 거실로 몰아낸다는 죄책감이 들어서이다. 침대를 사드리고 그렇게 하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조언대로 따를지 안 따를지는 모르겠지만, 조언을 따르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기를 바란다.
가족은 희망이자 짐이다. 가족 때문에 열심히 살기도 하면서 가족 때문에 힘들어하기도 한다. 이 갈등은 평생 지속된다. 가족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도 있다. 부모님을 잘 모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삶이 무너지면서까지 잘 모시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일까?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삶이 자신의 삶과 하나인양 살아가는 것이 과연 현명한 선택과 결정일까? 가족 외에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내려야만 한다. 심지어는 점심시간에 자장면을 먹을지 볶음밥을 먹을지 선택을 해야만 한다. 동료들이나 직장 상사가 결정한 음식을 시켜야 할지, 자신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해야 할지 갈등 속에서 결정을 해야만 한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그 선택의 최종 결정판이 지금 자신의 모습이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 또 그 선택으로 어떤 결과가 나오든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 질 수도 없고, 또 설사 상대방에 대한 비난과 핑계를 대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타인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다 한 것이기에 기억조차 못한 일들이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매 순간 내린 선택이 자신의 삶을 좌우한다면 굳이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물론 사회생활을 하면서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지만, 그 가면이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면은 언제든 썼다 벗었다 해야 한다. 주변에서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책임을 져 줄 수는 없다. 그들의 판단과 의견, 조언, 강요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자신 몫이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 걸을지 말지 결정을 자신이 하듯이.
비 오는 날 걷기 위해 집을 나온 선택이 너무 잘 내린 결정이라는 생각에 ‘선택과 책임’이라는 얘기를 하며 길게 글을 썼다. 삶의 목적은 결국 자신의 행복이다. 어떤 결정과 선택을 하는 것이 자신의 행복을 위한 좋은 결정인지를 기준으로 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오늘 걷기를 결정한 선택은 자신의 행복을 위한 아주 멋진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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