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517 – 20210519 44km
코스: 상암동 공원, 매봉산, 봉산 외
평균 속도: 3.5km
누적거리: 3,983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부처님 오신 날이다. 절에 가지도 않고, 특별한 느낌도 없이 맞이하고 있다. 한때는 집에서 혼자 예불을 모시고 기도를 하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예를 올리곤 했었다. 많이 게을러졌다. 오늘은 걷기 동호회 길 안내를 하는 날이다. 최근에 설치된 매봉산 데크길을 걸었다. 예전의 산길 같은 느낌이 없어져서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편안한 길을 조성해 많은 분들이 걸을 수 있도록 배려한 점이 마음에 든다. 매봉산 자락길에서 내려와 봉산에 올랐다. 봉산은 나무 그늘이 가득해서 외부의 더위와 상관없이 시원하게 걸을 수 있었다. 봉산에 얼만 전에 별도로 조성된 산책길은 인적이 드물어 걷기에 좋고, 마치 원시림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숲이 많이 우거져있다.
요즘 나쓰메 소세키의 ‘행인’이라는 소설을 읽고 있다. 최근에 소설책을 많이 보려고 한다. 늘 심리학, 명상, 상담 관련 서적이나 관심 있는 작가의 수필 등을 읽었다. 독서하는 데 편식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굳이 어떤 목적을 갖고 독서를 하지 않아도 되니 편안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읽게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었다. 소설 읽는데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은 소설 읽는 재미를 잘 느끼지는 못한다. 한 가지, 한 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녹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은 소설 속에서 잘 묘사되어 있다. 소설가는 그런 사소하지만 미세하고 중요한 심리적 변화나 갈등을 글로 자세하게 표현해서 독자가 소설 속에 빠져 들게 된다. 지금 책상 위에는 ‘한 권으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이 놓여있다. 오늘부터 읽을 책이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외부 활동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도서관에 자주 들려 책을 빌려 오기도 한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가기보다, 약 한 시간 정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마포 중앙도서관에 가서 책도 읽고, 빌리고, 글도 쓰며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다. 도서관 일층에는 식당이 있어서 싼 가격에 점심도 먹을 수 있고, 커피숍도 있어서 차 한잔 마실 수도 있다. 하루 종일 집에 있는 것보다는 걸어서 왕복하면 하루 운동도 되고, 보고 싶은 책도 골라서 바로 읽을 수도 있고, 하루를 편안하게 보낼 수도 있다.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요즘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다. 주제는 ‘가족’으로 가수 씨엘의 아버지인 이기진 교수와 요즘 문화계의 아이돌이라는 박준 시인과 그의 아버지가 게스트로 나왔다. 물리학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책을 직접 글과 그림으로 만들어 읽어 주기도 했고, 고교생이던 딸이 중퇴를 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응원한다고 격려의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딸과 아버지는 친구처럼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가고 있다. 박준 시인의 아버지는 트럭 기사로 30년 이상 근무하면서 아들을 조수석에 태워서 다니기도 했고, 일요일에는 무조건 쉬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고궁 나들이를 하며 처마에 앉아 비 구경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부자지간이 아니고 마치 친구처럼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가고 있다. 시인의 감수성과 시의 원재료를 아버지로부터 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두 가족을 보면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고 서로 동등한 수평 관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믿고 아끼는 관계가 가족이다. 부모가 자식을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거나 대역으로 생각하지 않고, 한 명의 자연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간다. 부모가 자식을 돌보는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고, 또 자식이 부모를 봉양해야만 하는 관계가 아닌 서로가 서로를 아끼고 함께 살아가는 관계이다. 유교적 관점에서 교육받고 경험해왔던 우리나라 가족관에 많은 변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변화는 바람직하다.
과연 나는 어떤 아빠일까? 우리 가족은 어떤 가족일까? 약 10년 전 딸아이가 덴마크에 교환학생으로 일 년간 머문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심리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있었는데, ‘나는 어떤 부모인가?’라는 답을 아이에게 듣고 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딸과 화상 통화를 하면서 물어봤다. 딸이 대뜸 “버럭 아빠!”라고 한치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딸아이에게 버럭 화를 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았는데, 억울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기억과 딸의 기억은 분명히 다르다. 중요한 것은 딸이 그렇게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내에게도 물어봤다. 아내는 ‘관대한 사람’이라고 했다. 과연 나는 딸에게는 화만 내고 아내에게는 관대할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딸은 버럭 화를 내지 않는 아빠가 되길 바라고, 아내는 관대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 사항을 얘기했을 수도 있다. 가족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화를 자주 내는 속 좁은 사람이다. 요즘은 많이 편해졌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이 고해(苦해)이고 화택(火宅)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바로 삼독(三毒)때문이다. 탐욕, 어리석음, 분노, 이 세 가지가 삶의 독이다. 화의 원인은 탐욕에서 나오고, 탐욕의 원인은 어리석음에서 나온다. 무상과 무아를 바로 볼 수 있는 정견을 갖추지 못한 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다. 이 어리석음으로 인해 세상이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고, 이 마음이 바로 탐욕이다. 내 뜻대로 세상이나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을 때 그 결과로 분노가 표출된다. 삼독은 세 가지이지만 실은 한 몸이다. 만약 진정으로 화를 내지 않을 수 있다면 삼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진심으로 발원한다. 잘 되지는 않겠지만, 매일매일 이 발원을 마음에 새기면 조금이나마 나아질 것이다. 부디 그런 날이 오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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