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603 9km
코스: 합정 – 한강 공원 – 월드컵 공원 – 불광천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4,070 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비가 차분히 내리고 있다. 우산 쓰고 빗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을 좋아한다.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속삭이듯 자연의 목소리를 전해준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서점에 부탁했던 책을 찾으러 가는 길이다. 합정역 7번 출구에서 절두산 성지 올라가는 계단 바로 못 미쳐 좌측 이층에 있는 서점으로 우연한 기회에 인연이 닿은 서점이다. 주인의 수수함을 담은 ‘수수 책방’이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를 맞고 있지만, 소모임을 하면서 어렵게 유지해 나가고 있다. 요즘은 그림 그리기와 독서 모임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음악을 듣기도 하고 주인이 내어오는 차를 마시기도 하며 잠시 쉬었다 가기도 하는 편안한 공간이다.
얼마 전 ‘소금길’이라는 책 얘기를 듣고 읽고 싶어서 주문해 놓고 겸사겸사 들린 것이다. 이 책은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은 영국인 부부가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1,000km애 달하는 ‘웨스트 코스트 패스’를 걸은 내용을 글로 정리한 책이다. 산티아고 다녀온 후에 어딘가 다시 떠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산티아고를 다시 갈까? 스웨덴의 쿵스레덴을 걸을까? 히말라야 트레킹을 갈까? 여러 생각들이 많았는데, 딱히 마음이 강하게 움직이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이 책 얘기를 듣고 이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의 ‘나는 걷는다’를 읽은 후 걷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산티아고 완주 후 프랑스에서 그를 만나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이번에는 ‘웨스트 코스트 패스’를 걸은 후 이 책의 저자 부부를 만나볼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와 소금길의 저자 레이너 윈은 공통점이 있다. 삶의 고통 속에 길을 걸으며 치유해 나가고, 삶의 방향을 찾았다는 점이다.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다. 두 사람은 걸으며 극복해 나갔다. 나 역시 힘든 시간을 걸으며 견뎌냈고, 지금은 불안 속에서도 안정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삶은,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다는 사실이 점점 더 확실하게 다가온다. 삶은 불확실함 속에서 스스로 확신을 만들어가며 자신만의 길을 가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도 없고, 피한다고 피해질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자신의 삶의 무게는 온전히 스스로 지고 살아가야 한다. 이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주어진 삶의 무게를 수용하게 되고, 수용하게 되면 불만, 불안,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 겸허하게 주어진 삶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불안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다. 바다는 늘 일렁거리고, 배는 늘 흔들린다. 우리의 삶이 이런 모습이다. 뱃사공으로 늘 불안 속에 살아가느냐, 아니면 일렁거림을 인정하고 수용하며 즐기느냐의 차이만이 남아있다. 설사 잠시 육지에 정착한다고 해도 다시 바다로 나가야 한다.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삶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늘 움직이고 흔들리고 요동치는 삶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다.
지금 ‘자발적 고독’(올리비에 르모 지음)을 읽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만났다. ‘고립’과 ‘고독’은 큰 차이가 있다. 고립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사람과 상황에 억눌려 스스로 자신 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것이다. 희망도 없고, 사회적 교류도 없으며, 세상이 무서워 밖에 나가지고 못하고 오직 자신이 만든 높고 두꺼운 성 안에서만 살아가는 것이다. 반면 고독은 자아실현을 위해 스스로 결정하는 삶의 방식으로 기존의 자신과 거리를 두는 일이다. ‘거짓 자기’를 벗어버리고 ‘참 자기’를 만나는 일이다. ‘고립’은 자신과 사회의 단절을 뜻하지만, ‘고독’은 사람과 사회와의 연결을 위한 ‘쉼’이다. 마치 전쟁터에서 다친 군인이 치료를 위해 잠시 병원에 머물다가 완치 후에 다시 전쟁터로 나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자아를 발견하기 위해서 고독은 반드시 필요하다. 한편 살아가는 법을 배우려면 타인을 관찰해야만 한다. ….. 수도원의 존재는 인간의 조건을 반영하는 거울이다. 수도사는 내면의 고독을 추구하는 일과 집단으로 살아야 하는 필요성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 진정한 행복은 함께 나눌 때만 느껴진다. …. 은신처를 자랑스러워한다면 이는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따금 고독에 투신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본문 중에서)
수행하는 이유는 ‘기존의 자기’를 버리고 ‘새로운 나’로 태어나 주변과 나누기 위함이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한 수행은 수행이 아니고 단지 이기적인 행동에 불과하다.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일정 기간 은둔하며 고독 속에서 보내는 과정도 필요하다. 하지만, 한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반드시 다시 사회로 나와 체득한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참된 수행은 나눔에 있다. 수행 후 주변 사람들의 고통이 안 보이고 들리지 않는다면, 그 수행은 잘못된 수행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우리는 부모와 형제, 친구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성장한다. 동물들도 부모의 행동과 가르침 덕분에 생존해 나갈 수 있다. 타인은 자신의 거울이라고 한다. 남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모든 것은 실은 자신 모습의 투영이다. 보기 싫은 모습을 지닌 타인을 미워하지 말고, 미움을 느끼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타인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기 위한 수행터가 삶의 현장이다. 물론 가끔 수행처에서 일정 기간 머물며 집중 수행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마치 부상자가 병원에서 치료하듯. 그 후에는 다시 삶이라는 전쟁터에 나가서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 전쟁터에서 백 명의 적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참다운 승리라는 것은 삶 속 수행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워주고 있다.
'걷고의 걷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고의 걷기 일기 0231] 코로나 19 예방 접종 (0) | 2021.06.07 |
---|---|
[걷고의 걷기 일기 0230] 덕(德)인가? 업(業)인가? (0) | 2021.06.06 |
[걷고의 걷기 일기 0228] 길 속에 길이 있다 (0) | 2021.06.03 |
[걷고의 걷기 일기 0227] 꿈과 그림자 (0) | 2021.06.02 |
[걷고의 걷기 일기 0226] 신시모 삼도(三島) (1) | 2021.05.3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