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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09] 더 빛날 필요가 있을까?

by 걷고 2021. 4. 25.

날짜와 거리: 20210423 – 20210424     33km  

코스: 상암동 공원 나들이 

평균 속도: 4.5km/h

누적거리: 3,76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걷기에 아주 좋은 날씨다. 녹음이 짙어진 길을 걸으면 생동감이 느껴진다. 요즘에는 철쭉이 한창때이다. 붉은 철쭉도 있고 하얀 철쭉도 있다. 다양한 새들의 노랫소리는 자연의 생동감을 더해준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통 잿빛인 자연은 어느새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우리를 반긴다. 비록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는 있지만, 자연의 활기찬 모습은 우리를 밖으로 불러낸다. 한강 공원, 월드컵 공원, 노을 공원에 많은 텐트가 쳐있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 코로나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고 활기차게 살아갈 수 있다. 백신을 많이 확보했다는 좋은 소식도 들린다. 위축되지 않고 자신과 이웃을 배려하며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지혜와 강인함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읽었던 책 내용 중 ‘더 빛날 필요가 있을까?’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불교 수행자가 스승님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수제자가 그 수행자를 맞이한 후 자기 집에 초대를 해서 소중하게 보관했던 귀한 보따리를 보여준다. 그 보따리에는 오래된 찌그러진 주전자가 귀하게 모셔져 있다. 수행자는 스승님의 유품인 그 주전자를 왜 그렇게 귀하고 보관하고 자신에게 보여주는지 의아해한다. 수제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전자를 보여주며 따뜻한 눈길로 수행자를 바라본다. 그때 수행자는 자신이 수행자로 열심히 공부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공부를 자랑하듯 얘기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때 수제자가 ‘당신은 더 이상 빛날 필요가 없다.’라는 말을 하며 미소 짓는다. 

 

주전자는 물을 담고 물은 나눠주는 물건이다. 굳이 멋있거나 화려하거나 좋은 재료로 만들 필요가 없다. 찌그러진 주전자는 역사를 얘기하고 있고, 사람들은 편안하게 그 물건을 사용할 수 있다. 다이아몬드나 금으로 만들어질 필요도 없고, 비싸고 족보 있는   주전자라고 자랑할 이유도 없다. 주전자로 태어난 이상, 주전자 역할만 할 수 있으면 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주전자에 상처가 나서 물을 담을 수 없게 되면 원래 자신의 자리인 고물상이나 공장으로 돌아가면 된다. 그렇게 된다고 주전자가 자신을 불쌍히 여기거나, 다른 사람들이 막 다룬다고 화를 내지도 않는다. 옆에 같은 처지에 있는 주전자를 보며 자신보다 더 쓸모가 없다고 우습게 보지도 않고, 자신보다 어리다고 무시하지도 않는다. 서로를 그냥 바라보며 따뜻한 미소를 보낸다.

 

명예욕은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한다. 재물욕이나 성욕보다 더 강하다고도 얘기한다. 명예욕은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드러내는 욕심이다. 남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갖고, 더 높은 지위를 갖고, 더 좋은 차를 갖고 더 넓고 비싼 집에서 살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늘 더 많은 것을 원하고 주변 사람들과 비교해서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다. 우월감도 열등감의 하나라고 한다. 이 둘은 모두 비교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주전자가 금으로 만들어진 주전자를 우습게 보고, 알루미늄 주전자가 금 주전자를 부러워한다. 자신의 역할을 잊어버리고 비교하며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느낀다. 평생 비교만 하다가 결국은 열등감만 갖고 죽음을 맞이한다. 

살면서 사회의 시선이나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시선들은 가끔은 긍정적인 동기를 유발하기도 한다. 동기를 실천하면서 삶의 주인이 되어간다. 주인이 된 후에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를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혼자 독불장군처럼 살라는 말은 아니다. 주변 사람들과 자연, 모든 생명체를 따뜻한 마음으로 대하며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되 비교하는 마음은 내려놓고,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지 않는 삶을 살면 좋겠다.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면 속 빈 강정이 될 수가 있다. A라는 사람이 원하는 기준과 B라는 사람이 원하는 기준이 다르다. 만나는 사람들의 기준과 시선에 맞춰 살면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진 속 빈 강정이 된다. 함께 어울리되 삶의 기준과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좋다. 가끔 타인과 자신의 기준이 다를 때에는 자신을 냉정하게 돌아보고 필요한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용기도 필요하다.

 

 살면서 사람들과 쓸데없는 시비에 휘말리거나 오해를 받는 경우도 있다. 굳이 그런 시비나 오해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성을 점점 못 느끼게 된다. 단지 이런 경우 잘못한 점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기만 하면 된다. 잘못된 경우에는 사과를 하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냥 두어도 상관없다. 말은 말을 만들어나간다. 오해를 풀기 위한 말이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말이 줄어든다. 쓸데없는 말을 하기보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좋다. 낡은 주전자가 질문한다. ‘너는 너의 역할과 소명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살아가는 거 외에 다른 일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낡고 찌그러진 주전자가 스승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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