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418 – 20210422 45km
코스: 마포역 – 한강공원 – 월드컵공원 – 불광천 외
평균 속도: 5km/h
누적거리: 3,73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최근에 ‘트라우마 사용설명서’ (마크 엡스타인 저)를 읽었다. 오랜 기간 불교 수행을 한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다. 정서 체험을 이용하여 마음을 계발하는 것이 불교 심리학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얘기한다. 정서 체험은 지금-여기에서 체험하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 체험을 체험 자체로 느끼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체험과 기억으로 해석하고, 또는 미래에 예상되는 체험으로 상상하기 시작하며 삶의 고통이 시작된다. 또한 삶 속에 불안은 늘 존재하는데, 불안이 사라지길 희망하며 그런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으로 인해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불안이 항상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 불안이 없어지길 바라기보다는 불안에 대처하는 방식의 변화를 통해서 기존과는 다른 판단과 행동을 취할 수 있게 된다.
체험하는 상황을 자각의 대상으로 삼아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 고통을 따라가거나 고통과 관련된 과거의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고통은 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다. 같은 상황을 사람마다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법이 다르다.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과거의 경험과 기억 또는 미래의 상상으로 해석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상황은 원래 중립적인데, 해석의 방법에 따라 탐착 하게 되거나 혐오하게 된다. ‘비가 온다’는 상황은 그냥 비가 오는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에 따라 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동일한 사람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도 한다. 결국 고통과 즐거움은 ‘비’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고, 비를 해석하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환상이다.
상황을 중립적 입장에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통해서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순수한 주의집중이다. 좋다거나 싫다는 판단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의식을 집중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순수한 주의집중이다. 순수한 주의집중을 통해서 변화의 공간이 생기게 되고, 따라서 기존의 패턴화 된 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과거의 익숙한 방식에서 새로운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설거지를 할 때는 모든 의식을 설거지에 집중하는 ‘설거지 명상’을 틱낫한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난다. 설거지를 하면서 빨리 끝내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귀찮다거나 더럽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오로지 설거지 자체에 모든 의식을 집중해서 하는 명상이다. 명상은 이 이상 더 잘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여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의식적으로 집중해서 경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탐착과 혐오가 있을 자리가 없다.
순수한 주의집중을 키우는 방법 중 하나가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조용히 앉아서 들숨과 날숨에 집중하는 것이다. 한 호흡의 순간에도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한 생각이 떠올라 그 생각이 꼬리를 물고 다른 생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호흡에 집중하는 연습을 통해서 우리는 지금-여기에 온전히 머물 수 있게 된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설거지 명상처럼 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걸을 때에는 걷는 일에 집중하고, 음식 먹을 때에는 먹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지금-여기에서 경험하는 것을 과거나 미래의 경험이나 상상을 배제하고 순수한 경험을 하는 것이다.
삶은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괴롭다고 한다. 만약 모든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아무 걱정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없는 걱정을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아무 걱정 없다는 것이 걱정이 될 수도 있다. 오랜 시간 서 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있으면 눕고 싶다. 눕기만 하면 무척 행복할 것 같은데,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일어나서 걷고 싶어 지기도 한다. 몸을 가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노화, 질병,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괴로움이 시작된다. 같은 상황에서도 누군가는 웃고 지내고, 누군가는 울거나 화를 내며 지낸다. 또한 동일한 사람이 같은 상황에서도 다르게 반응하고 있다. 반응 방식의 선택과 결정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고통은 사물의 존재 방식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반응하는 방식에 달려있다….. 깨달음이란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식의 변화이다.” (본문 중에서)
강물의 방향을 바꾸는 일이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가 없듯이,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반응 방식을 만들어나가는데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익숙한 방식을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바꾸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도 아닐 수 있다. 매 순간의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변화를 만들어 나가야 가능한 일이다. 불교에서 번뇌가 바로 깨달음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다. 번뇌가 바로 지금 발생하는 체험이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해서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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