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425 – 20210427 27km
코스: 상암동 공원 나들이
평균 속도: 3.8km/h
누적거리: 3,794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요즘은 주 2회 정도 손녀 픽업을 하러 강남에 간다.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아내와 함께 손녀를 픽업해서 데려다주고, 한두 시간 정도 같이 놀다가 돌아온다. 아내는 가기 전에 이런저런 음식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딸아이 집에 가서도 준비해 온 음식과 재료를 손질하느라 바쁘다. 그 사이 나는 손녀와 같이 놀고, 딸아이는 둘째 아이를 돌보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아내와 드라이브를 하며 손녀 얘기를 하는 시간이 즐겁고 좋다. 손녀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 동작 하나도 우리에게는 즐거운 추억이다. 가끔 딸아이가 손주들의 노는 동영상을 보내온다. 우리는 그 동영상을 보며 또 한 번 미소 짓는다. 이런 사소한 추억과 즐거움이 삶의 행복이다. 손녀와 영상 통화를 하게 되면 우리 목소리 톤은 저절로 높아지고,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른다. 우리가 손녀를 돌보는 것이 아니고, 손녀 덕분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간다. 가족끼리는 이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
어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간 암 투병으로 고생했던 걷기 동호회 회원이 삶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의 아내가 보내온 메시지다. 불과 작년만 해도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하며 건강 회복을 위해 열심히 걷고 있다고 했다. 늘 밝은 표정을 짓고, 걷기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선물도 나눠주는 좋은 친구였다. 요즘 연락이 없어서 궁금하던 차였는데, 그런 소식을 접하고 나니 마음이 허전하다. 부모님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지인들 부모님의 문상을 많이 다녀오긴 했지만, 같은 또래나 혹은 나보다 어린 사람의 죽음은 처음 접하는 것 같다. 가까운 지인의 문상을 다녀오면 마음이 울적해진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바로 옆에 있었던 사람인데 이제는 다시 볼 수가 없다. 핸드폰에 저장된 전화번호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그간 나눴던 sns 대화는 어떻게 할까? 당분간 그냥 두기로 했다. 비록 자주 만나지는 못했지만, 만날 때마다 웃음을 잃지 않았던 친구를 매정하게 끊어낼 수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부모님과의 통화를 녹음해둔다고 한다. 부모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리울 때 그 목소리를 들으며 추억을 되새기고 감사함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한다. 특히 부부, 부모와 자식, 아주 가까운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생각을 하면 먹먹함이 올라오기도 한다. 상상만으로도 그렇게 되는데, 실제 겪으면 어떻게 될까? 특히나 배우자의 죽음은 오랜 기간 가슴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허전함을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을 것이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가능하면 상처를 주지 않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며 살아가고 싶다. 죽는 순간 미안하다는 말보다는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사람들을 만나든 후회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떳떳하고 즐겁게 살고 싶고, 그 결과로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죽음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맞이하는 것이다. 죽음을 행복하게 맞이하기 위해서 삶을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시간은 순간의 연결이고, 삶은 이런 연결선상에 놓여있다. 지금 이 순간 행복하지 않으면 다음 순간 행복할 가능성이 낮다. 죽는 순간 편안해야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죽기 바로 직전이 편안해야 한다. 또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화해와 용서를 하며 삶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 매듭을 풀지 못한다면, 그 매듭은 다음 생으로 연결될 것이다. 우리의 몸은 죽지만, 우리의 업은 그대로 남아 다음 생으로 연결된다. 죽을 때 들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은 오직 업(業)뿐이라고 한다. 업은 태어남과 죽음 사이에 행한 모든 말, 행동, 그리고 마음가짐으로 이루어져 있다.
살아온 날 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짧아지고 있다. 시간의 중요성을 실감한다. 반드시 무엇을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오늘 하루 많이 웃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싶다. 나의 행복은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행복과 직결된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주위를 살필 수 있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 충만해서 차고 넘쳐서 열려야 사랑과 행복을 나눌 수 있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열리면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고정된 틀은 저절로 부서지며 변화를 기꺼이 수용하게 된다. 변화는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변화를 통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되고, 자신과 타인의 간극을 줄일 수 있게 되며, 우리라는 삶의 터전을 넓혀나갈 수 있게 된다.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통해 자신의 틀을 넓혀나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틀이 커지면 커질수록 자신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게 된다. 그 안에 이미 많은 사람과 존재들이 함께 머물기 때문이다.
길동무의 죽음을 맞이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길동무의 명복을 기원한다. 그간 한 평생 지내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아팠던 몸을 훌훌 털어버리고 삶의 부담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대의 트레이드 마크인 미소를 머금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지내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간의 귀한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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