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12] 신독(愼獨)

by 걷고 2021. 5. 3.

날짜와 거리: 20210429 - 20210502  26km  

코스: 서울 둘레길 창포원에서 북한산 우이역 구간 외

평균 속도: 3.8km/h

누적거리: 3,831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요즘 날씨가 변덕스럽다. 설악산에는 눈이 오고 서울에는 비가 왔다. 외국에는 주먹만 한 우박이 떨어지고 비행기가 움직일 정도로 강풍이 불었다. 인도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의 급증으로 온 나라가 화장터로 변했다고 한다. 이스라엘에서는 코로나 극복 후 종교 행사에서 군중들이 몰려나오면서 압사를 당하기도 했다. 한국은 암호화폐 열풍이 한창이다. 젊은이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돈 벌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기업 공개 시 공모주를 매수하려는 사람들로 증권사 앞은 장사진을 치고 있다. 혼란의 시대이다. 기후 변화로 인한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의 변화, 코로나 극복을 위한 안간힘, 돈을 벌기 위한 투쟁과 투기, 모두 살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마음 편히 지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마음 편하게 살고 있으니 다행스럽고, 한편으로는 고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들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길을 안내하는 것이다. 걷기 동호회 모임도 인원 제한으로 안내자 포함해서 네 명만이 모여서 걸을 수 있다. 회원들은 참석하기 위해 먼저 댓 글을 달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모습도 안쓰럽다. 코로나 이전에는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댓 글을 달고 참석하기만 하면 된다. 이런 일상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빨리 예전 일상으로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예전에는 길 안내 전 답사를 갈 때 혼자 가는 편이었는데, 요즘은 공지를 올려 가고 싶은 사람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내 건강도 챙기고,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걷기에 대한 갈증을 풀어낼 수 있다. 매주 수요일 저녁 걷기와 월 2회 주말 걷기를 진행하는데, 주말 걷기 진행 전 사전 답사 시에도 회원들과 함께 하려고 한다. 비록 작은 일이지만 할 수 있는 일이고,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일이다. 

 

어제는 서울 둘레길 코스 중 창포원에서 우이동까지 걸었다. 총 거리 157km에 달하는 둘레길을 15회로 나눠서 코스를 짰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회원들과 함께 걷는 것 포함해서 지금까지 세 번 걸었다. 5월부터 다시 동호회에 공지를 올려서 회원들과 함께 걸을 계획이고, 그 첫걸음을 5월 8일에 내딛는다. 공식 걷기 전 답사를 다녀오기에, 연말쯤 되면 두 번 걷는 셈이 된다. 한 번은 시계 방향으로, 다시 한번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서울 둘레길을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걸을 계획이다. 월 2회 걸으면 한 번 완주하는데 약 6-7 개월 정도 걸린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도 있고, 산 주변을 돌기에 운동도 적절하게 되는 이 길은 걸을 때마다 새롭다. 같은 구간을 다른 계절에 걷고, 다른 날씨에 걷고, 매번 다른 사람들과 걸으니 같은 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주말에는 서울 둘레길을, 평일에는 집 주변 공원을 걷는다. 가끔은 친구들과 교외로 나가 걷기도 한다. 심신의 건강을 다지는데 걷기만큼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다. 

도봉옛길 입구에 사찰이 있는데, 진입로에 연등을 밝혀 놓았다. 아무리 어수선한 시국이라도 연등을 달면서 마음속 간절한 기도를 했을 것이다. 연등을 보며 지금 고통받고 있는 모든 분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길 기원했다. 부처님의 가피로 코로나가 물러가길 기원했다. 녹음이 짙은 산길을 걸으니 생동감을 느낄 수 있어서 몸과 마음에 활기가 가득해진다. 많은 사람들이 도봉산 역에서 출발했지만, 산속에 진입하면서 각자 가는 길이 다른지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그다지 붐비지 않는다.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잠깐 마스크를 내리고 큰 숨을 들이쉬고 마시기도 한다. 산속 공기가 자연의 향기와 함께 가슴속에 가득 들어오면 매우 강한 활기를 마시는 것 같다. 일상적인 호흡이 더 이상 일상적이지 않은 세상이 되어버렸다. 일상으로의 복귀가 그립다. 하지만, 그리움 속에만 파묻혀 주어진 세상과 담쌓고 살아가도 문제다. 변화를 맞이하는 적응도 필요하고, 일상으로 회복하고자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오늘부터 노원 50 플러스 센터에서 대면 강의를 하기로 되어있지만, 참가자 수가 적어서 한 주 연기되었다. 다음 주에도 강의가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사람들이 대면 수업을 꺼려하는 것일 수도 있고, 강의 주제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덕분에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런 편안함을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예전에는 늘 무언가를 기획하고 실행하고 얻고자 몸과 마음이 바빴는데, 요즘은 아무 일도 없는 편안함이 오히려 고맙고 반갑다. 진행할 상담도 없으니 하루 종일 해야 할 어떤 일도 없다. 다행스럽게 그런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글 쓰고, 책 읽고, 명상하고, 걷고, 손녀 픽업하고, 아내와 TV 보면서 이런저런 얘기하고, 이런 일상이 그저 고마울 뿐이다. 할 일이 없는 상황에서 불안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어떤 순서나 규칙도 정하지 않은 채 마음 내키는 대로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고, 큰 변화이다.

 

가끔은 불편함이나 불안감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이내 사라진다. 그런 감정과 싸우지 않으니 저절로 사라진다.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게 된 것이다. 일상은 즐기되 매 순간 쓸데없는 일로 낭비하거나 하루를 무의미하게 보내는 일은 삼가할 일이다. " ‘신독(愼獨)’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대학>과 <중용>에 실려 있는 말로서, 혼자 있을 때에도 조심한다는 의미다.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의 인격의 완성을 위해 공부하는 중요한 수행방법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법정 스님이 떠올랐다. 한 여름에 낮잠에 빠지거나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나뭇가지를 날카롭게 칼로 다듬고 계셨다고 한다.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보여주는, 또 ‘신독’의 의미를 직접 몸으로 실천하신 참 수행자의 모습이다. ‘신독’, 이 단어 하나가 삶의 기준이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