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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211] 좌절을 통한 통찰

by 걷고 2021. 4. 29.

날짜와 거리: 20210428     11km  

코스: 안산 자락길 한 바퀴

평균 속도: 4.5km/h

누적거리: 3,805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최근에 소방 심리지원단에 지원했다. 소방관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통을 해소하고 경감시키기 위한 기관이다. 서류 전형에 통과되어 화상 면접을 마쳤다. 며칠 후에 상담학회 공지를 보니 채용 공고가 다시 올라왔다. 면접에서 떨어진 것이다. 서울심리지원센터가 서울에 네 군데 있다. 그중 한 곳에서 3년간 상담을 진행했는데, 금년에는 서류 전형에서 탈락했다. 다른 센터에서 채용 공고가 올라와서 지원했는데, 역시 서류 전형 통과를 하지 못했다. 탈락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떻든 센터가 원하는 사람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지난 몇 년간 약 1,500장 이상의 이력서를 제출했고, 10여 곳에서 면접을 봤다. 아직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는 것은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수많은 탈락을 겪으면서도 탈락에 익숙해지지는 않는다. 탈락에 익숙해진다면 이 또한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오늘도 상담 학회에 올라온 공지를 확인하고 한 곳에 이력서를 제출했다.

 

 소방 심리지원단은 근무하고 싶은 곳이다. 소방관들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상담을 공부했던 이유도 상담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벌겠다거나 편안한 노후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그 일 자체로 보상받고 보람을 느끼며 인생 후반기를 살고 싶었다. 소방 심리지원단에서 상담한 내용을 책으로 발간해서 소방관들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를 도모하고 상담을 꺼리는 소방관들에게 상담을 권유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런 기대감으로 인해 탈락의 고배가 더 쓰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은 좌절이지만, 반복된 좌절 덕분에 좌절을 대하는 마음에 변화가 생겼다. 좌절을 통해서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이에 비해 상담 경력이 짧은 나를 센터에서 선호할 이유가 없다. 스스로도 아직 상담 공부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매일 조금씩 공부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나이는 많이 들었지만, 시절 인연이 안 온 것이다. 그것은 좀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상담가로서 무르익지 않았고,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이다. 대학원 졸업 후 자격증 취득한 지 6년 차를 맞이하고 있다. 아직 새내기다. 선배들은 10년은 참고 지내야 상담가로 활동할 수 있다고 한다. 수개월 전 면접을 본 후에 다시는 면접을 보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상담을 포기할까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10년’이라는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간 공부했던 것도 아깝지만, 하고 싶은 일이고, 상담심리사라는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센터에 고용되든 아니면 봉사활동을 하든 상담심리사로서의 소명은 꾸준히 이어갈 것이다. 

이번 좌절은 몸과 마음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불편한 마음이 신체화 증상으로 나타나 몸에 열감이 느껴졌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올라오는 자신을 바라볼 수 있었다. 미리 볼 수 있었기에 표출하지 않고 감정과 생각, 그때 느껴지는 감각에 집중할 수 있었다. 몸의 감각과 마음, 생각, 감정의 변화에 대응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느껴보며 글쓰기와 독서에 집중했다. 저녁 걷기 모임에 나가서 몸을 활기차게 움직이고 길동무들과 수다를 떨었다. 좌절에 대한 안타까움은 글 쓰는 지금도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럼에도 좌절로 무너지지 않고 좌절을 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된 것이다. 좌절을 마음 한 구석에 그대로 두고, 할 일을 하는 것이다. 좌절과 일은 상호 충돌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며 좌절의 상처는 삶의 근육으로 변한다. 이런 근육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평생 삶의 밑거름이 된다. 

 

앞으로도 지원할 만한 곳이 나오면 꾸준히 지원할 것이다. 동시에 상담사로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상담 공부는 마음수행과 연결되어있다. 요즘은 불교와 상담을 연계한 불교상담 공부를 주로 하고 있다. 종교나 상담 모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이다. 불교를 상담과 접목하여 내담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을 진행하면 된다. 다른 상담사와 차별화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불교상담이다. 또한 혼자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심신치유 프로그램을 준비해서 나만의 방법으로 심신이 지친 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만들어 나갈 것이다. 독서-명상-상담 프로그램, 걷기-명상-상담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있다.

 

다음 주부터 노원 50 플러스 센터에서 ‘책을 통해 배우는 인생 2막’이라는 주제로 매주 월요일 두 시간씩 6주간 진행한다. 이 일이 하나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상담 외에도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요즘 ‘프로이트의 의자 (정도연 지음)’을 읽고 있다. 정신분석학자가 우리 마음속 불편함을 아주 쉽게 설명한 책이다. 그 책 내용 중 좋은 문구가 있다. “이룰 수 없는 완벽함에 메이지 말고 지금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실천하라. ……   절망에 빠진 사람은 힘이 없어 보이지만, 절망이 지니고 있는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다....   좌절감이 크다면 걸림돌이  것이 아니라 내가 원했던 마음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세요.  무의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이 문구가 지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대변해주고 있다. 책도 시절 인연이 있나 보다. 

 

예전에 한 후배가 “시험에 포기는 있어도 불합격은 없다.”라는 말로 상담 자격시험 실패 후 지친 내게 용기를 준 적이 있다. 그 말이 많은 힘이 되었다. 그 후배에게 답을 하고 싶다. 좌절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 좌절은 과정이고, 실패는 결과이다. 과정이 끝나지 않으면 결과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좌절 중이고, 과정에 있으며, 죽을 때까지 과정 속에 있을 것이다. 아침에 기상하느냐 좀 더 자느냐 역시 좌절의 과정이다.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좌절을 느낀다. 하나의 선택은 다른 것의 좌절이다. 인생은 매 순간 선택의 과정이다. 인생은 여정이라는 말은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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