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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199] 가족

by 걷고 2021. 4. 3.

날짜와 거리: 20210402 6km
코스: 불광천
평균 속도: 4km
누적거리: 3,582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아침에 아내와 함께 사전 투표를 다녀왔다. 이번 투표는 빨리 하고 싶었다. 투표장에 가보니 투표하러 온 유권자보다 투표장 관리를 하는 인원이 더 많아 보였다. 입구에 안내하는 사람, 체온 측정과 비닐장갑 나눠주는 사람, 신원 확인하고 투표용지를 발부하는 사람, 참관인 등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투표를 마치고 나오면서 얼마나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하지 않아도 될 선거를 치르면서 낭비되고 있는지 생각하니 화가 나기도 한다. 두 사람의 개인적인 실수로 인해 정부에서 약 1,000억 원의 비용을 낭비하고 있다. 그 돈은 모두 우리가 낸 세금이다. 인구 100명당 코로나 백신 접종 횟수 및 인원을 보니 각각 1.83회와 1.8명으로 세계 111위라고 한다. 선거 비용을 백신 구입 비용으로 확보했으면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선거 다녀온 후 ‘걷고의 걷기 일기'를 쓰고, 그 글을 녹음해서 SNS와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나니 점심시간이다. 아내와 함께 점심을 먹고 TV 채널을 돌리다가 영화 한 편을 운 좋게 보게 되었다. 영화 제목은 ‘The Power of One, (1992)’으로 한 소년을 통해 인종차별의 극복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은 원망과 폭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포용과 사랑으로 이루어진다는 대사도 인상적이다. 사람들을 위치, 인종, 나이, 성별, 국적 등 여러 가지로 분리하는 것은 불평등한 일이다. 사람의 피는 모두 같은 색이다. 불평등에 항거하는 것이 아니고, 불평등한 세상을 공정하고 평등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동조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거룩하게 보인다. 요즘도 인종 차별이 논란이 되고 있다. 흑과 백, 혐오와 사랑, 나와 너, 이것과 저것 등의 이분법적 사고로는 해결될 수 없는 일이다. 양극단에서 벗어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아내는 친구들 만나기 위해 외출했다. 고교 동창들 모임으로 졸업 후 지금까지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오랜 기간 만난 친구들이라 서로 잘 이해하고 포용하며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예전에는 가끔 모였는데, 이제 모두 현업에서 은퇴를 해서 최근에는 자주 모임을 갖는다. 아내에게 이런 모임이 있다는 것이 좋은 일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자주 만나고 친하게 지내는 선후배들은 있지만 또래 친구가 없다. 물론 이제는 선후배들이 친한 친구들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같은 또래의 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가끔은 안타깝다. 지금 새삼스럽게 친구를 사귀는 것도 우습다. 지금 좋은 인연을 맺고 있는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면 된다. 또한 걷기 동호회에서 만난 길동무들도 있으니 어울리며 살아가는데 불편함은 없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같은 또래 친구가 없어서 허전함을 느낄 때도 있다.

영화를 본 후에 책을 한 시간 정도 읽었다. 요즘 보고 있는 책은 ‘마음 챙김 명상에 기초한 인지치료’라는 책이다. 인지치료 전문가들이 MBSR (Mindfulness Based Stress Reduction program) 워크숍에 참여해서 우울증 환자 치료를 위해 만든 심리치료 방법으로 MBCT(Mindfulness Based Cognitive Therapy)라고 하는 치료 기법의 안내 서적이다. 불교 공부를 꾸준히 해왔고, 대학원 전공도 불교 상담학이지만, 아직 불교를 상담 장면에서 활용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다. 앞으로 이 분야 관련 서적을 공부하며 나름대로 자신만의 상담 기법과 원칙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서재에 보니 그간 읽었던 책들도 있고, 불교와 심리상담을 접목시킨 책들도 여러 권 있다. 이 책들을 바탕으로 불교상담을 꾸준히 공부하고 상담 장면에 활용하고 싶다. 불교의 유식과 무아, 무상, 괴로움은 상담에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좋은 재료들이다.

책을 읽은 후 불광천에 나가서 걸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증산로에 활짝 핀 벚꽃을 구경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사진을 찍는 사람, 애완견과 산책하는 사람, 뛰는 사람, 자전거와 전동 킥보드를 타는 사람으로 정신이 없다. 원래 걸으려 했던 거리를 조금 줄여서 일찍 걷기를 마쳤다. 아내가 친구들과 저녁 식사까지 하고 온다고 해서 집 주변의 식당에 들려서 순댓국을 한 그릇 먹으려 했는데, 식당에도 사람들이 제법 많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식탁 위에 햇반과 참치캔이 있다.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꺼내고 마시다가 보관해둔 와인을 꺼내서 멋진 저녁상을 준비했다.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다. 홀로 와인 한잔 따라 마시며 저녁 식사를 하니 마음은 충만하고 기분은 흐뭇하다. 저녁 식사 후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시청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으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위기 협상 전문가, 국가대표 체스 선수인 초등학생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었다. 우리가 모르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있다. 전문가들이 전문가로 불리는 이유를 알게 되면서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저절로 올라온다.

밤 10시쯤 아내가 귀가 중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왔다. 겁이 많은 아내는 늦은 밤에 홀로 다니는 것을 무서워한다.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니, 아내가 자신이 짊어졌던 배낭을 내게 건넨다. 짐을 편하게 건넬 수 있는 아내를 보며 부부와 가족의 의미를 다시금 상기해 본다. 가족이란 서로의 짐을 아무 거리낌 없이 건네주고 받을 수 있는 관계이다. 짐을 나눠 들으면 가벼워지고, 대신 들어주면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그 충전된 에너지는 다른 가족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가족은 또 우리는 이렇게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어제 하루 일상을 글로 적으니 꽤 잘 보낸 것 같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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