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걷는가?
금요일 밤 10시에 합정역에서 모여 승합차를 타고 지난번 종료지점인 울산 해양 경찰서로 이동한다. 도착하니 토요일 새벽 2시 40분경. 늦은 밤 차 안에서 잠도 설쳐가며 굳이 왜 이 일을 하는지 나 조차도 스스로 이해되지 않는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새벽 2시 50분부터 헤드랜턴을 밝히며 어둠을 뚫고 걷는다.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이 힘든 일을 왜 할까? 무릎이 아파 병원 치료를 받으며 걷는다. 무릎이나 발이 아파 무릎 보호대를 하고 등산화를 새로운 브랜드로 바꿔가며 걷는다. 얼굴이 타고 자외선에 노출되는 것이 두려워 우산을 쓰거나 얼굴을 감싸며 걷는다. 졸음을 물리치며 걷거나 졸면서 걷기도 한다. 하품을 하며 걷는 사람도 있다. 군대도 아니고, 의무적으로 꼭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님에도 우리는 늦은 밤 이동해서 새벽부터 걷기 시작한다.
울산 해양 경찰서 앞에 도착한 후 각자 장비를 점검한다. 헤드랜턴도 켜보고, 등산 배낭도 점검하고, 신발 끈을 꽉 조이고, 복장도 걷기에 맞도록 다시 챙기고, 물도 확인한다. 가방에는 먹을 음식과 물, 그리고 필요한 각자 물품이 들어있다. 약을 챙기는 사람도 있다. 아프면 쉬면 될 텐데 고통을 무릅쓰고 나와서 걷는다. 그리고 다시 병원 치료를 받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이라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만나면 이산가족 상봉하듯 너무 반가워하며 서로를 살뜰하게 챙긴다. 그리고 웃으며 걷는다. 걷는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한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설사 그 말이 어떤 큰 의미가 있거나 아주 재미있는 말이 아님에도 아주 큰 소리로 웃는다. 리액션도 최정상급이다. 비정상적이다.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미친 사람들이다.
비정상적인 언행을 하는 사람들을 흔히 미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친 사람의 다른 의미도 있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해서 일상적인 다른 일에 관심조차 없이 그 일에 몰두하고 몰입한 사람을 흔히 ‘일에 또는 어떤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미친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고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자신의 미친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전염시켜서 다른 사람들도 미치게 만든다.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미친 사람들이다. 몰입은 뭔가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몰입을 하는 순간 또는 기간 동안 일상적인 세상의 모든 고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몰입은 지금 이 순간 하는 일에 전념해서 다른 모든 일들을 잊게 만들어준다. 즉 지금-여기 이 순간에 존재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가 괴로운 이유는 지난 과거 일로 인해 후회를 하거나 자신을 탓하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 묻혀서 지금을 잃어버리고, 과거의 일에 매몰되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하고,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를 바라보며 살아가기에 현재를 잃어버리게 만든다. 괴로운 이유 중 다른 하나는 바로 미래에 대한 쓸데없는 공상과 망상, 그리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헛된 꿈을 꾸며 살아가기에 현실에 집중할 수 없고. 이는 현실 감각을 잃게 만들어 현실 적응을 어렵게 만든다. 과거나 미래가 현실을 잠식하며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현실과 자신을 격리시킨다. 이는 반복되며 스스로를 힘든 고통 속으로 몰아간다.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의외로 쉽다. 지금-여기 하는 일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집중하기 싫으면 그냥 하는 일을 하면 된다. 다만 자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스스로 알아차리며 하는 것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 일상의 대부분을 의식하지도 못한 채 자동적으로 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동적으로 부엌으로 가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자신의 모습을 어느 날 문득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매일 하는 일상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는 자신에 실망을 해서 자기를 찾아 산티아고 다녀왔다고 한다. 일상 속에서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얼마나 될까? 특히나 반복되고 익숙한 일을 할 때는 더욱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운전을 하며 핸드폰을 보기도 하고, 일을 하며 채팅을 하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며 딴생각을 하고, 걸으며 걷고 난 후 친구들 만날 생각을 하고, 수학 수업 시간에 영어 책을 펼쳐 영어 공부를 한다. 정말로 미친 사람들이다.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하는 사람이 정말 미친 사람 아닌가?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뭔가를 한다면 이는 정신 나간 사람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해파랑길을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할까? 집에 있는 식구 생각? 내일 만날 친구 생각? 지난 과거의 잘못된 언행에 대한 반성? 어제 배우자와 다툰 일? 내일 처리할 복잡한 업무? 모두 부질없는 일이다. 지금 걷는 이 순간에는 오직 걷는 자신만 존재한다. 함께 걷지만 걷는 주체는 바로 자신이다. 특히 어둠 속에 랜턴을 밝히며 걷는 일은 자신에게 집중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다. 자신이 비춘 불빛에 의지해 어둠 속을 뚫고 걷는 순간 집중할 수밖에 없다. 특히 몸이 덜 깬 상태에서 걷기에 넘어질 가능성도 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또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이 비춘 불빛에 의지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내딛는 행동은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엄숙하기도 하다. 침묵 속에서 집중하며 자신의 발밑을 살피며 걷는 행동이 바로 조고각하(照顧脚下)다. 사찰 선방 신발 벗어놓는 곳에 이 글이 주련으로 걸려있다. 조고각하는 ‘자신의 발아래를 살펴본다’는 의미로 자신을 등불 삼아 공부를 지어가라는 의미라고 한다.
선방 스님은 앉아서 조고각하를 하지만, 우리는 어둠 속을 걸으며 조고각하를 하고, 밝은 하늘 아래를 걸으며 조고각하를 한다. 조고각하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하고 있는 일을 알아차리면 그 일에 집중하게 된다. 우리가 걸으며 하는 일은 매우 단순하고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걷는 일이다. 걸으며 할 수 있는 일은 걷는 거 외에는 없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즉 걷는 일과 상관없는 생각이나 행동을 하고 있으면 빨리 알아차리고 다시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하면 된다. 산만한 행동과 생각을 알아차리며 마음을 챙기는 것이 바로 마음챙김이다. 걸으며 자신의 발 밑 감각을 느낄 수도 있다. 허벅지 근육의 긴장감을 느낄 수도 있다. 숨이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도 있고, 들숨과 날숨이 고요해지는 것을 느낄 수도 있다. 스틱 소리를 들을 수도 있고, 자연의 소리와 촉감을 느낄 수도 있다. 또는 자신이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도 있다. 몸과 자신의 마음, 즉 생각과 느낌이 한 곳에 머물러야 한다. 몸과 자신이 분리되면 안 된다. 즉 몸이 있는 곳에 마음을 두면 된다. 쉽지만 연습이 필요하다.
마음을 열고 걸으며 일어나는 모든 감각을 느끼거나 걷는 자신을 지켜보면 된다. 여기에는 생각이 붙을 수 없다. 오직 걷는 몸과 감각만이 존재한다. 생각이 존재하지도 않기에 과거나 미래에 머물지 않고 오직 지금-여기 즉 현재의 순간에 머물 수 있게 된다. 현재의 순간에 머문다기보다는 현재와 함께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는 과거나 미래가 없기에 우리는 한가롭고 편안해진다. 몸이 힘들 수도 있다. 그러면 몸이 힘들다고 알아차리면 된다. 알아차림을 통해 힘들다는 생각으로 인해 다른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차단할 수 있다. 그냥 몸이 힘들 뿐이다. 그 힘든 몸을 알아차리며 어떤 생각, 감정, 판단, 비난, 평가 등을 하지 않고 그냥 걸으면 된다. 몸이 힘든 것이지 자신이 힘든 것이 아니다. 몸과 자신의 비동일시 덕분에 우리는 편안해진다. 몸을 자신이라고 동일시하면 자신이 힘들어지지만, 몸과 자신의 비동일시 또는 몸의 객관화를 통해 자신이 힘들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냥 몸이 힘들 뿐이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걷기와 몸을 통한 마음챙김을 통해 모두 늘 행복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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