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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길벗은 스승이다

by 걷고 2024. 7. 28.
길벗은 따뜻하고 정감이 가는 단어입니다. 길 자체는 생각만 해도 그립습니다. 다양한 계절과 다양한 날씨에 다양한 길을 만나는 일은 매우 큰 축복입니다. 길을 걸으며 위로받고, 길을 걸으며 가르침을 받고, 길을 걸으며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이 자신의 거울이 되어 자신을 비추어줍니다. 마찬가지로 벗을 만나 위로받고, 가르침을 받으며, 벗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 멋진 두 단어, 즉 길과 벗이 합친 길벗이라는 단어 자체를 듣는 것 또는 부르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여유로워지고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집니다.

새벽 3시경 주전패밀리 캠핑장에 도착해서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풉니다. 거친 파도가 도로를 덮치듯 달려듭니다. 바람은 많은 습기를 머금고 있고,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는 마음을 뒤흔듭니다. 새벽인데도 무더위는 여전합니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를 명상의 대상으로 삼아 침묵 속에 걷습니다. 우리 외에 해안가에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로등이 길을 밝혀주고, 파도소리가 현장감을 느끼게 해 주고, 구름 속 수줍게 자신을 드러내는 달의 모습은 처연하며 아름답습니다. 해안가에는 많은 텐트가 설치되어 있고, 사람들은 각자의 모습으로 잠을 자거나 야식을 즐깁니다. 어린아이 두 명이 어른 두 명과 함께 새벽에 컵라면을 먹는 모습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날이 밝아지며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옵니다. 새벽의 무덥고 습한 바람은 잠시뿐이고, 걷는 동안 시원하고 달콤한 바람을 맞고 느끼며 걷습니다. 바다 위에 층을 만들어 피어오르는 해무의 모습은 말 그대로 신기루입니다. 해무 덕분에 시원한 바람을 맞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주전 패밀리 캠핑장에서 해파랑길 10코스 종점인 나아해변까지 8시간에 걸쳐 약 27km를 길벗과 함께 걸었습니다. 이 길을 이렇게 습하고 더운 날씨에 혼자 걸었다면 꽤 고된 노동이 될 수 있었지만, 길벗 덕분에 유쾌하고 즐거운 걸음이 되었습니다.

하나의 행동 속에 그 사람의 모든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바닷물 한 방울에 바다가 담겨 있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오류일 가능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이 보는 시각이 비슷하다는 것은 평범한 눈으로 보는 평범한 판단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임을 증명해 줍니다. 한 분은 유부초밥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오셨습니다. 초밥을 찍어먹을 고추냉이 간장까지 준비해 오시고, 간장을 담을 포일로 만든 종지까지 준비해 오셨습니다. 일단 무언가를 하면 최선을 다하시는 분입니다. 티를 내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아끼며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이 길벗은 여유로운 마음과 활짝 웃는 미소, 그리고 주변을 밝게 만들어 주는 해피 바이러스입니다. 모든 모임에는 공식적인 리더가 있고, 비공식적인 리더가 있습니다. 아마 비공식적인 리더라 한다면 바로 이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를 통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처음 참석한 길벗은 환경을 탓하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힘을 지닌 멋진 사람입니다. 반바지 차림에 오셔서 뜨거운 지열과 햇빛을 가리기 위해 수건으로 다리를 감싸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거룩한 침묵 속에서 걷습니다. 다양한 간식을 상황에 맞게 내어주며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분입니다. 누가 어떤 말을 해도 거침없이 받으며 그 말에 걸리지 않는 세상사에 초월한 모습을 지닌 멋진 길벗입니다. 주변 환경과 사람을 모두 아우르는 지혜와 그럼에도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는 길벗입니다. 그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과 화합이라는 이질적인 상황을 하나로 만들어나가는 지혜를 배웁니다.

자신의 틀을 깨는 통쾌한 길벗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변을 챙기느라 자신을 챙기지 못한 자신을 발견한 후 자신을 사랑하는 시도를 하는 길벗이 있습니다. 익숙한 것을 설익게 만드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입니다. 반복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자신을 챙기는 일이 혹시나 이기적이지 않을까 싶어 고민도 함께 하며 자신을 사랑하고 표현하고 자기를 만나는 작업을 쉬지 않고 하고 있는 멋진 길벗입니다. 저 역시 이런 고민을 많이 하며 살아왔고 지금도 그 고민의 늪에서 헤매고 있습니다. 이 길벗에게 한껏 자신을 아끼는 작업을 이어가라고 응원하는 이유는 이 분이 아무리 자신만을 위한 언행을 한다고 해도 그 이면에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존중하는 마음을 기본적으로 지녔기에 결코 이기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이 말은 제게도 건네고 싶은 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알이 병아리가 되기 위해 껍질을 깨고 나오는 고통은 감수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깨고 나오면 더 큰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하나의 세상을 깨고 나온 자유로움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수처작주의 삶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미리 그려봅니다. 무척 통쾌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 길벗을 통해 저의 모습을 보며 아직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저 자신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어쩌면 용기가 부족하거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있거나, 아니면 어느 정도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를 통해 얻은 용기가 저의 모습에 균열을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늘 자신을 낮추고 주변 사람을 아끼며 환경을 위해 사소한 과일 열매조차 버리지 않는 멋진 길벗도 있습니다. 오랜 기간 사업을 해오며 이룬 모든 것이 운 덕분이라고 하는 겸손함까지 겸비한 길벗입니다.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이 세상에 운은 존재하지 않지만, 기회는 늘 옵니다. 하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회가 올 때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기회는 그냥 사라질 뿐입니다. 평상시에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해 온 덕분에 주변에서 상황에 맞는 손길을 내밀 때 그 손을 잡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은 운이 좋다고 말합니다. 반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주어진 기회를 날려버리며 운이 나쁘거나 운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늘이 내린 손길을 준비된 사람은 잡고, 준비가 안 된 사람은 그 손길조차 알아볼 수도 없기에 잡을 수 없을 뿐입니다. 노후를 위한 준비를 차분히 하며 그간 자신이 만들어 놓은 모든 것을 서서히 해체 작업하고 있는 길벗을 보며 그의 멋진 노후를 진심으로 응원하게 됩니다. 만든 것을 해체 작업하며 더 큰 자신과 더 넓고 높은 세상을 만나는 작업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무언가를 꾸준히 추구하고 때로는 좌절하는 저 자신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그를 통해 제게 주어진 운명을 또는 운을 만나기 위해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아가는 자세를 배웁니다. 제가 오늘도 걷고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이 덥고 습한 날씨에 사진을 찍고 뛰어와서 길벗과 합류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쉽게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늘 웃음과 활기를 주는 멋진 길벗이 있습니다. 그의 에너지 크기는 절대 줄어들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자신이 죽어가는 순간까지도 활기로 채워나갈 수 있는 멋진 길벗입니다. 주변을 두루 살피며 필요한 것을 준비해서 선물하고, 아름다운 영상을 위해 뛰어다니며 사진을 찍고, 다시 동영상으로 편집해서 공유하는 개미처럼 꾸준히 몸을 움직이고 있는 무척 부지런한 길벗입니다. 평상시 꾸준히 공부해 온 마음공부의 깊이는 저절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너와 너의 구별이 사라진 이 길벗은 늘 평안합니다. 그의 여유로운 마음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나눔, 그리고 활발한 웃음과 통쾌한 말씀은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줍니다. 사람의 깊이를 측정하기 위해서는 자신 스스로 깊어져야만 알 수 있습니다. 고수는 하수를 알아보지만, 하수는 고수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저는 그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습니다. 제가 하수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그의 깊이를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걷습니다.

길도 스승이고 벗도 스승입니다. 그러니 길벗은 큰 스승입니다. 길이 스승이 되기 위해서는 길을 나서야 합니다. 집 안에서 스승을 기다리는 것은 큰 결례가 됩니다. 길은 말 없는 스승입니다. 어떤 가르침도 주지 않고 다만 자신 즉, 길을 내줄 뿐입니다. 그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스스로 배우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길 위에 서는 것은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고, 길에서 배우는 것 역시 자신의 노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자연의 가르침, 자신의 내면의 부처를 만나기 위해서 길을 나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길벗을 만나는 위해서는 길을 나서야 하고, 길 위에서 자신을 버려야 그 안에 길벗이 들어오고 가르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것으로 가득 차고 자신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에게 길벗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자신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길벗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고,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비로소 길벗의 가르침이 저절로 펼쳐집니다. 길벗은 큰 스승입니다. 스승님들께 삼배를 올립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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