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챙 (mindfulness) 마음놓음(mindlessness)
며칠 후면 해파랑길을 걷는다. 마치 해파랑길을 걷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같다. 길에 대한 갈증이나 욕심보다는 함께 걷는 길동무들과의 만남이 기다려지기 때문이다. 그만큼 길 벗은 중요하다. 마음공부를 할 때도 도반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다. 도반은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고 때로는 경쟁하며 정진과 가행 정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다. 때로는 공부하며 발생하는 장애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하며 장애를 극복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공부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에게 조언해 줄 수는 없어도 같은 고민을 했기에 각자 고민 해결을 위한 방편을 얘기하며 생각하지 못한 방편을 찾을 수도 있다. 도반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마찬가지로 길 벗 또한 든든한 버팀목이다. 혼자 걸으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함께 걷기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때로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인해 힘들 수도 있지만, 든든한 도반과 길 벗이 있다는 사실이 주는 안정감 덕분에 이런 감정을 극복하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수행과 걷는 일은 같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과정을 중요시한다. 충실한 과정의 결과물 또는 부산물이 깨달음이 되고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할 때 비행기, 고속철도, 버스 등 다양한 운송수단이 있고, 걷기라는 매우 단순한 이동 방법도 있다. 하지만 비록 같은 목적지에 도착한다고 해도 이동 방법에 따라 느끼는 경험은 다르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고성에 이르는 750km에 달하는 길이다. 승용차를 이용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길이다. 우리는 매월 2회 무박 2일 걷거나 때로는 며칠간 지속적으로 걸으며 약 1년 반에 걸쳐 걷는다.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듯, 목적지에 도착하며 느끼는 경험과 생각, 인식, 감정 역시 매우 다를 것이다.
과정에 충실하게 걷는 것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생각을 여는 심리학 마음챙김> 책을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아직 서문 밖에 읽지 못했는데 재미있는 단어, 마음챙김 (mindfulness)과 마음놓음 (mindlessness)이 나온다. 마음챙김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자각하고 그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반면 마음놓음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망각한 채 습관적으로 또는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있는 일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마음놓음’이라는 번역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차라리 ‘정신없음’ 또는 ‘혼이 나감’, ‘정신 못 차림’이라는 단어가 더 맞이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무튼 어떤 단어를 쓰든 마음챙김의 상태와는 전혀 다른 마음을 챙기지 못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번 주 금요일 밤에 출발해서 해파랑길 2회 차를 걷는다. 과연 어떻게 걷는 것이 좋을까? 가끔은 굳이 무엇을 하며 걸어야 하는가라고 자문하기도 한다. 그냥 많이 걷다 보면 또 오랜 시간 걸으면 생각과 감정은 저절로 사라지고 오직 ‘걷는 것’만 존재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도 있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고 '길'과 ‘걷는 존재’가 하나가 된다. 모든 생각, 감정, 의식, 느낌이 사라지고 오직 ‘걷는 존재’만 남는다. 이 순간 길과 나와 걷는 행위는 하나가 된다. 오랜 시간 많이 걸으면 저절로 느끼고 깨닫게 된다. 따라서 굳이 어떤 방식으로 걷는 것이 좋고, 어떻게 걸어야만 한다고 얘기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음놓음’ 또는 ‘정신없음’ 상태로 걷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길 위에서 걸으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과거를 후회한다고 다시 돌이킬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꿈을 꾼다고 미래를 빨리 당겨올 수도 없다. 이런 생각은 망상에 불과하다. 회사나 집안일을 생각한다고 어떤 상황이나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할 수도 없다. 몸이 해파랑길에 있는데 어떻게 회사나 집안일을 해결할 수 있을까? “걱정을 해서 걱정이 사라진다면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외국 속담이 떠오른다. 걱정은 걱정을 부를 뿐 어떤 해결책도 만들어주지 못한다. 생각을 정리한다고 생각을 한들 생각은 정리되지 않는다. 순간적으로 정리된 듯 하지만 이는 손에 난 상처에 연고를 바르는 일시적인 해결책에 불과하다. 상처가 난 이유 즉 근원적인 자신의 언행과 습관을 다스리지 않는 한 상처는 끊임없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럼 걸으며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오직 걷는 것뿐이다. 그것도 ‘마음놓음’ 상태로 걷는 것이 아니고 자각 한 상태인 ‘마음챙김’을 하며 걷는 것 밖에 없다. 이 방법을 통해 생각과 감정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자신의 모습과 직면하며 변화를 꾀할 수 있다.
어떻게 ‘마음챙김’하며 걸을 수 있을까? 과연 ‘마음챙김’은 무엇일까? 심리학과 교수이자 마음챙김의 고수인 김정호 교수는 '미시적 마음챙김'과 '거시적 마음챙김'이라는 두 가지 마음챙김을 얘기한다. '거시적 마음챙김'은 ‘행위’와 ‘자신 Self’을 분리하는 것이다. 행위하는 몸은 그냥 몸일 뿐 ‘자신 Self’이 아니다. 몸은 나의 일부분이기는 하지만 나의 전체는 아니다. 즉 몸과 자신의 동일시에서 벗어나서 걸으면 된다. 즉 하는 행위의 주체인 몸을 관찰하는 주시자가 되는 것이 거시적 마음챙김이다. 몸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면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다. 동일시에서 벗어나면 몸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이는 매우 중요한 변화를 만들어줄 수 있다. 오감을 느낄 수 있는 감각기관이 있다.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몸의 접촉을 느끼는 오감이다. 이 오감 중 한 가지를 선택해서 느끼며 마음챙김하는 것이 바로 미시적 마음챙김이다. 걷기 전에 이번에는 청각에 또는 시각이나 다른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하며 걷겠다는 마음을 확립한다. 마음 확립을 하며 걷는 것과 하지 않고 걷는 것은 확연한 차이가 있다. 감각에 집중하면 생각은 떨어져 나간다. 감각을 놓치면 수많은 생각이 그 틈을 이용해서 쳐들어온다. 굳이 생각과 감정을 밀어내기 위해 또는 없애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다. 그냥 다시 감각에 집중하면 된다. 이 끊임없는 반복이 우리를 '지금-여기'로 데려다준다. 한 번에 한 가지 집중 대상에 마음을 챙기는 것이 좋다. 마음챙김이 잘 되지 않는다고 자주 바꾸면 집중하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파랑길을 걸으며 30분 이상 한 두 번 정도의 침묵 걷기 시간을 갖게 된다. 이 시간에 집중적으로 자신의 집중 대상에 마음챙기며 걷는다면 마음 놓고 걷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마음 건강을 챙길 수 있고, 나아가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빨리 걷거나 많이 걷는 것 등 걷기의 양보다 걷기의 질을 지향하는 것이 우리 걷기 학교의 핵심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함께 걷는 길 벗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는 것. 무박 2일 약 20km를 걷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챙김하며 여유롭게 걸을 계획이지만, 그럼에도 더위 속에 때로는 추위나 악천후에서 걸을 수도 있다. 힘들수록 서로에 대한 배려가 절실하게 필요하다. 길 벗의 따뜻한 배려와 상호 존중의 태도는 걷는 내내 마음챙김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이번에 해파랑길을 걸으며 우리 서로에게 약속을 해보자. 마음 놓고 걷지 말고 마음 챙기며 걷자.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하거나 주시자가 되어 걸어보자.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걷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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