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음악이 듣고 싶어졌다. 음악에는 문외한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자주 음악이 듣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이 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을 수 있다. 이런 질문에 딱히 답 할 수도 없는 자신이 답답할 뿐이다. 그런데 음악을 듣고 싶은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진다. 언젠가 한 친구가 음악을 들으며 차 한 잔 마시면 행복하다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 부러웠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참 멋진 인생이다. 나는 언제 행복을 느끼는가? 아내와 TV 보며 TV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때 행복을 느낀다. 손주들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인사하러 들어올 때 안아주며 행복을 느낀다. 걸으며 자유를 느끼고 글 쓰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행복을 느낀다. 내게도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제법 많이 있다. 고맙다. 그런데도 마음 한 구석에는 건조함과 차가움이 느껴진다. 꽤 건조한 사람이고 까다롭고 차가운 사람이다. 음악이 건조함을 윤택함으로, 차가움을 따뜻함으로 변화시켜 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반드시 어떤 목적을 갖고 음악을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음악이 듣고 싶다. 음악을 들으며 마음속 건조함이 윤택함으로, 차가움이 따뜻함으로 자연스럽게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건조함과 따뜻함이 녹으면 저절로 유정, 무정과 하나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도 갖고 있다.
며칠 전 불교계의 유일한 니르바나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강단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서 음악을 듣고 싶은데 어떻게 듣는 것이 좋은지, 무엇부터 듣는 것이 좋은지 물어보았다. 그러면서 사람 목소리가 들어간 음악은 아직 듣고 싶지 않다는 말씀도 드렸다. 강단장은 단순한 음악부터 듣는 것이 좋다면 음악 두 곡을 보내주셨다. 한 곡은 지금 이 글을 쓰며 듣고 있는 ‘Arvo Pärt- Spiegel im Spiegel, for Cello & Piano’이다. 음악에 대한 문외한이기에 딱히 음악이 어떻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호흡이 긴 음악이라는 느낌이 든다. 들으면 저절로 깊은 명상에 들어갈 수 있는 음악이다.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 다른 음악은 임윤찬의 피아노 연주곡인 ‘Yunchan Lim - New Year's Benefit Recital at Myeongdong Cathedral in Seoul, Korea.’ 연주자의 표정과 건반과 하나가 되는 연주를 보며 저절로 연주에 빠져든다. 피아니스트가 곡을 연주한다기보다는 피아노와 곡과 연주자가 하나가 된 느낌이 든다. 아마 그도 자신이 연주한다는 생각 없이 손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지 않을까?
강단장은 음악과 선정의 관계에 관한 자신의 의견도 보내 주었다. “음악이 나의 마음 작용에 영향을 미칠 때 ‘인’이고 그 영향이 내 삶에 변화를 줄 때 ‘과’가 되겠지요. 나의 업이 반복되거나 잘못된 습관을 보지 못하고 고집 피우거나 집착하는 걸 한 순간이라도 음악을 통해 멈추고 볼 수 있다면, 음악도 충분히 선정으로 들어가게 도와주는 도구가 될 수 있겠지요. 그래서 음악은 방편입니다. 선정으로 들어가는 길라잡이 같은.” 평생 음악과 함께 살아온 강단장에게 음악은 참선이고, 선정에 들어가는 일주문이다. 강단장이 만들고 운영했던 오케스트라의 명칭이 ‘니르바나’인 이유가 있었다. 열반을 의미하는 니르바나는 강단장이 이루고 싶은 발원이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통해 열반에 들기를 기원하는 발원이었다. 강단장이 머물고 있는 인제에 ‘인제 천리길’이 있다는 카톡을 보내주며 한번 다녀가라고 한다. 날씨가 풀리면 인제에 가서 음악도 듣고, 음악 얘기도 듣고, 인제 천리길도 걷고 싶다.
지금 읽고 있는 책 ‘깨달음 그리고 지혜(레스터 레븐슨 저)’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깨달음에 들어갈 수 있는 방편을 알려주고 있다. 저자의 방법은 매우 쉬운 방법이지만 막상 실천하기는 쉽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무척 쉬운 방법이다. 'Let Go'를 일상에서 꾸준히 실천하는 방법이다. 이는 올라오는 모든 것을 흘려보내는 방법이다. 올라오기 위해서는 고요함이 필요하다. 마음이 고요해지만 수많은 생각, 감정, 느낌, 감각이 올라온다. 이것들에 끌려 다니지 말고 바라보고 흘려보내면 된다. 명상의 요체다. 끌려 다니지 않으려면 알아차려야 하고, 알아차리려면 마음이 고요해져야 한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심층의식이 올라온다. 아뢰야식에 갇혀있던 의식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 떠오르는 의식, 즉 생각, 감정, 정서, 감각, 느낌 등을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진다. 자신의 의식을 자신과 분리하면 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의식을 따라가며 다시 다른 업을 쌓아가는 경우가 많다. 따라가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지고 다른 의식이 다시 떠오른다. 사라지는 것은 아뢰야식이 그만큼 비워지는 것이고, 다른 의식이 떠오르는 것은 아뢰야식이라는 창고에 머물고 있는 다른 의식이 떠오르는 것이다. 즉 심층의식이 표층의식으로 올라오는 것이다. 이 역시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사라진다. 심층의식이 떠오르면 표층의식이 되고, 표층의식은 바라만 보면 저절로 사라진다. 거울은 형상이 없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허상일 뿐인데, 우리는 그 허상을 보며 싫다고 밀어내거나 좋다고 잡으려 한다. 괴로움의 시작이다. 그냥 가만히 두면 다른 형상이 떠오르고 다시 사라진다. 잡지만 않으면 된다. 괴로움의 사라짐이다.
우리는 외부 자극을 받을 때 그 자극이 도화선이 되어 과거의 유관한 감정과 사고를 불러내어 도화선에 화약을 붙이며 살고 있다. 자극은 잘 사용하면 선정에 이르는 방편이 되지만, 잘못 사용하면 자신을 태우는 위험한 것이 된다. 어떤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일어나는 감정과 감각을 빨리 알아차리고 ‘let go’ 하면 된다. 이 순간이 업의 주머니인 아뢰야식을 비워내고 가볍게 만드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그 자극으로 인한 느낌이 좋든 나쁘든 머물면 안 된다. 그냥 ‘let go’ 하면 된다. 그런 면에서 강단장의 조언, “습관을 보지 못하고 고집 피우거나 집착하는 걸 한 순간이라도 음악을 통해 멈추고 볼 수 있다면”은 바로 'let go'와 일치하는 말이다. 멈추고 바라보면 저절로 사라진다. 그러면 바로 다음 순간 다른 상, 즉 다른 심층의식이 올라온다. 이 역시 같은 방법으로 하면 된다. 자극은 또는 불편한 감정이나 좋은 감정은 스승이다. 번뇌가 깨달음이라는 말은 맞는 말이다. 자극이 있어야 자극을 통해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세상 모든 것이 스승이 된다. 음악도 스승이고 감정과 생각도 스승이다. 그런 면에서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은 스승을 찾고 싶다는 생각과 같은 의미다. 삼라만상이 스승이다.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스승이고, 나를 즐겁게 해 주는 사람도 스승이다. 다만 이들이 스승인 줄 모르는 것, 즉 무지(無知)가 문제다. 무지는 어리석음이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면 탐내는 마음과 화내는 마음을 저절로 사라진다. 있지도 않은 것이기에 허상에 불과할 뿐이다.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가장 쉽고 어려운 방법이 바로 'Let Go!'다. 쉽고 어렵다는 분별심도 ‘Let Go!' 하면 된다.
나는 귀가 뚫린 사람이다. 그래서 소리는 듣는다. 다만 소리만을 듣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뚫린 귀가 열린다면 소리는 소리로만 들리지 않을 것이다. 웃음을 들으며 그 안의 슬픔을 느낄 수 있을 것이고, 울음을 들으며 그 안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귓병으로 인해 들리지 않는 참다운 소리를 음악이라는 선생을 통해 치료하고 싶다. 그리고 열린 귀로 세상 소리를 있는 그대로 듣고 싶다. 내가 음악을 듣고 싶은 이유다. 이유를 알고 싶어서 쓴 글은 아닌데 쓰다 보니 이유가 분명해졌다. 물론 이유에 묶일 필요도 없다. 그냥 음악을 듣고 귀를 열어보자. 아니다. 음악을 듣다 보면 저절로 귀가 열릴 날이 올 것이다. 다행스럽게 강단장이라는 좋은 스승을 만났다. 귀한 인연에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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