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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걷고의 걷기 일기 0191] 함성이 사라진 경기장

by 걷고 2021. 3. 18.

날짜와 거리: 20210317   11km  

코스: 월드컵경기장 – 문화비축기지 – 난지천 공원 – 메타세콰이어길 – 문화비축기지 (7.4km)

평균 속도: 4.4km

누적거리: 3,448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매주 수요일 저녁은 걷기 동호회 길 안내를 하는 날이다. 안내자 포함해서 4명으로 인원 제한을 두고 마스크를 쓰고 걷고 있다. 언제쯤 인원 제한이 풀리고 마스크를 벗고 걸을 수 있을까? 참석자 댓 글을 먼저 달아야만 참석이 가능하기에 주 2회로 개인별 참석 제한도 두고 있고, 참석 댓 글을 달아놓고 불참 시에는 열흘간 참석할 수 없는 조항도 신설해서 운영하고 있다. 운영진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하고, 회원들의 걷고자 하는 갈망이 느껴진다. 상황의 변화에 맞춰 제한 조항이 만들어지는 것도 안타깝고, 참석하고자 하는 분들이 참석 못하는 것 또한 안타깝기도 하다. 빨리 코로나가 진정되어 이런 제한 조건들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모임 장소인 월드컵경기장역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월드컵 경기장에 환한 조명이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온라인 매표를 통해 티켓을 구입한 관중들이 축구 경기를 보기 위해 입장하고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활기찬 목소리로 거리두기와 물 외의 음식 취식 금지, 화장실에서 손 자주 씻기를 반복해서 크게 설명하고 있다. 아마 사전에 녹음해 놓은 것을 틀어놓은 것 같다. 삼삼오오 관중들이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이고, 야간 조명이 유난히 밝게 빛나는 월드컵경기장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웅성웅성거리는 관중들의 소리와 아나운서의 소음이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문화비축기지에 들어서니 차분한 야경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경기장의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문화비축기지가 예전에는 석유 비축기지였다는 사실을 회원들에게 안내하며 으쓱해하기도 했다. 신호등을 건너 난지천 공원에 진입했다. 주변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기는 하지만, 흙 길을 밟으며 조용히 걸을 수 있는 이 공원길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길이다. 공원 중간쯤에 야간 조명이 켜진 축구장에서 활기차게 축구를 즐기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밝은 에너지와 활기가 전해져 저절로 발걸음이 경쾌해지고 빨라진다. 난지천 공원에서 노을공원과 하늘공원 중간 길을 지나 메타세콰이어 숲길에 들어섰다. 화장실도 들리고 입구에 설치된 벤치에서 한 분이 준비해 온 커피와 과자를 먹으며 잠시 휴식 시간을 보냈다. 어둠 속에서 길동무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재미도 저녁 걷기의 큰 즐거움이다. 

 

메타세콰이어길은 강변북로의 자동차 소음만 제외한다면 더없이 좋은 길이다. 나무 숲 사이를 걸을 수 있는 소로(小路)를 걸으며 자연에 안긴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소로 옆에는 큰길이 있어서 걷는 한가로움과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메타세콰이아 길에서 이어지는 희망의 숲길 분위기는 메타세콰이어길과 같은데 자동차 소음이 적고 숲이 더 많이 조성되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이 길을 걸을 때에는 바닥에 올라온 나무뿌리를 조심해야만 한다. 예전에 이 길을 밤에 걷다가 앞으로 곤두박질친 경험이 있어서, 이 길에 진입하면 먼저 손을 주머니에서 빼고, 바닥을 유심히 살피며 걷는다. 

희망의 숲길을 지나 다시 문화 비축기지로 들어섰다. 기지 한쪽에 조명이 밝게 빛나는 전시물이 설치되어 있다. 큰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림의 제목은 ‘용의 노래’로 그림에 대해 문외한이 내게도 그 그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용의 노래를 들으며 힘을 내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들리는 것 같다. 다시 월드컵 경기장역으로 돌아오는데 경기장에서 경기가 있는지 없는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아마 비말 방지를 위해 함성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골을 넣었는지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경기장에 활기가 넘친다. 확인해 보지는 않았지만, 어떤 분은 미리 녹음한 함성 소리를 틀어놓은 것 같다고 했다. 내심 실망하기도 했다. 경기장의 함성이 그립다. 관중들이 물밀듯이 경기장에 들어가고 나오는 모습도 그립고, 시끌벅적한 장터 분위기의 경기장도 그립다. 

 

함성 없는 경기장은 선수와 관중들 모두에게 활기와 흥분의 분위기를 앗아간다. 경기를 뛰는 선수들도 그다지 신나지 않을 것이고, 관중들 역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서 관전만 하는 재미가 그다지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경기는 지속되고, 관중들은 경기장을 찾는다. 이런 변화된 사회에 변화된 방식으로 적응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적응하며 살아가면서도, 예전의 추억과 감흥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그리고 조금 뒤처져 살더라도 예전의 방식을 가끔은 고수하며 살아보자. 추억이 우리에게 삶의 재미와 의지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함성 없는 경기장은 김 빠진 사이다처럼 맛이 없고 김 빠질 뿐이다. 그럼에도 어제 밝게 조명을 비추는 경기장을 보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기운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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