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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티베트, 마음의 불씨

by 걷고 2023. 8. 21.

 매월 만나서 함께 걷고 막걸리 한 잔 나누며 지내는 친구들이 있다. 일부는 학연으로 일부는 서로의 추천과 소개로 모이게 된 친구들이다. 모두 마음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 하나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을 발견할 수 없는 친구들이다. 나이 들어 만난 친구들이어서 불편할 수도 있지만 살아온 세월과 세월을 통해 쌓아 온 경험들을 통해 어지간한 일에는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조심스러우면서도 편안하고, 가까우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아주 이상적인 모임이다. 간혹 불편함을 느낄 때도 있지만, 다음 달에 만나면 아무런 일도 없는 듯 저절로 사라진다. 부부 사이에도, 부모 자식 사이에도 불편함과 거리감을 느낄 때도 있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또는 가족이라는 소속감과 함께 살아온 세월 덕분에, 깊은 저면에 깔려있는 상호 신뢰 덕분에 불편함과 거리감은 어느새 사라진다. 이 친구 모임도 이와 같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가며 불편함으로 인해 남을 탓하기보다는, 그 불편함을 마음공부의 소재로 활용하는 지혜를 배우고 있는 멋진 친구들이다. 오히려 불편함과 갈등은 모임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아직도 생생한 감정과 감각, 사고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는 고마운 감정들이다.     

 

 한 친구가 티베트에 가고 싶다고 했다. 슬쩍 던진 얘기겠지만 그 친구 성격을 감안할 때 정말 가고 싶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다만 표현만 ‘가고 싶다’고 할 뿐이다. 그녀의 마음을 잘 알기에 자신의 건강과 가정상황들을 고려해 보기도 전에 함께 가겠다고 선뜻 나서는 용감하고 의리 있는 친구가 있다. 한 친구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놓은 불씨를 꺼냈고, 그 불씨가 다른 친구를 통해 우리들 마음에 전달되었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며 믿음을 갖고 있는 친구들에게 그 불씨는 더 활활 타오를 수 있는 생명의 불씨가 된다. 60대 초반과 중반에 있는 친구들은 어쩌면 마음속 불씨가 서서히 꺼져가는 것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또 한평생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때로는 억지로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일을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죽은 듯 조용히 지내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과 타인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때로는 가까운 지인들하고만 어울리며 삶의 테두리를 좁혀나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친구의 불씨는 이런 모든 삶의 틀을 태워버리고 좀 더 큰 자기로 태어날 수 있게 만들기도 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티베트라는 나라에 가고 싶다는 사실을. 영화도 예전에 두세 편 봤다. ‘티베트에서의 7년’과 ‘쿤둔’, 그리고 다른 영화도 봤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편의 영화 내용도 가물가물하다. TV 다큐멘터리 본 것도 기억이 난다. 오체투지를 하며 평생소원인 라싸 포탈라궁까지 가는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한 사람의 소원을 돕기 위해 가족들이 함께 움직이며 음식을 만들어 주고, 잘 곳을 만들어주고, 팔과 무릎 보호대를 만들어 교체해 주기도 한다. 오체투지를 하는 사람만이 수행자가 아니다. 그 원력을 원만 성취하게 만들어주는 가족들 역시 매우 훌륭한 수행자다.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한 후 티베트 전통 불교를 없애기 위해 가짜 달라이라마를 만들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달람 살라에 머물고 계신 달라이라마께서는 세계의 평화를 위해 애쓰고 계신다. 중국이 고문했던 티베트 승려는 감옥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사람들을 위해 기도를 했다고 한다. 달라이라마는 명상과 뇌 작용의 상호관계를 밝히기 위해 티베트의 고승을 미국 연구소로 초청해서 명상의 중요성과 효용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가끔 TV나 영화에서 본 경통, 만국기 같은 깃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찰 분위기를 보며 마음속에 저곳을 가고 싶다는 불씨를 품고 있었다.   

   

 불씨는 희망이다. 비록 지금 당장 활활 타오르지는 않지만 잿 속에 숨어있다 다시 필 날을 기다리고 있다. 바람이 불어오면 불씨는 타오르기 시작한다. 비록 잿 속에 숨어 빛을 발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다. 불씨는 세월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우리가 죽을 때까지 한 가지의 불씨는 지니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방황하거나 좌절하거나 삶의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비록 시절 인연을 만나지 못해 불이 피어오르지는 못하더라도 불씨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세월을 기다리면 된다. 우리는 안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중요한 것이 세월을 기다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세월은 우리를 바위처럼 만들어준다. 바위는 자신은 견디고, 그 견디는 힘과 모습으로 주변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바위 속에는 불씨가 언젠가는 필 시간을 기다리며 남아있다.      

 

 어제 한 친구의 소원은 그간 잿 속에 숨어있던 나의 불씨에 불을 지폈다. 심지어 불씨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아왔다. 하지만, 그 친구의 고마운 바람 덕분에 재는 날아가고 그 안에 오랫동안 숨어있었던 불씨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자신의 소원을 말하고 함께 갈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실은 가장 기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내 안에 숨어있던 불씨를 그 친구가 살려준 것이다. 그 친구가 시절인연을 만나 듯, 그 친구를 통해 내 안의 불씨가 시절인연을 만났다. 불씨가 피어오른 과정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 

 

 한 친구가 발원한다. 그 발언을 들은 친구가 자신의 상황을 고려하지도 않고 무조건 동참하기로 한다. 그리고 인연이 있는 여행사 대표를 만나 티베트 여행에 대해 상의를 한다. 친구와 여행사 대표는 좋은 인연을 유지하고 있었고, 덕분에 여행사 대표는 아주 좋은 조건으로 티베트 여행을 준비해 주신다고 한다. 이 인연이 바람이 되어 다른 친구들 마음속 불씨를 살려낸다. 그 친구가 티베트를 가고 싶다는 얘기는 가야 할 때가 되었다는 얘기다. 즉 시절인연이 왔다는 의미고, 그 결과는 과정을 매우 순탄하고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 한 친구의 발원이 우리의 불씨를 살려냈다. 내년 4월에서 5월 중에 다녀오기로 했다. 그날이 벌써 기다려진다. 설렘이 남아있다는 것이 바로 마음 속 불씨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 친구와 인연 있는 여행사는 문화탐방 전문 여행사 “컬쳐투어 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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