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버나드 쇼)
이 글을 읽으면 인간의 우매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사물의 실체나 상황에 대한 이해,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을까?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해도 그 사실이 반드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밝혀진 부분까지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 대해서 마치 전문가처럼 얘기를 한다. 정치, 경제, 종교, 사회 현상 등 전반적인 분야에 대해서 자신의 말이 옳고 정답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유 때문에 가끔 모임에 가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리고 그 모임이 끝나면 불편한 마음을 안고 돌아온다. 앞으로 그런 모임에는 나가지 않겠다고 마음을 다지기도 하지만, 불편함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철수하는 것이 좋은 방법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며 다시 용기 내어 나간다. 그리고 불편함의 원인을 나 자신 속에서 찾으려 시도를 한다. 불편함의 원인을 자신 속에서 찾으려는 일이 반복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피곤함을 느낀다.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 술을 마시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까다로운 사람이다, 글의 내용이 너무 식상하다”는 등의 불편한 얘기를 들었다. 불편했지만 굳이 대꾸하지도 않고 그냥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아직도 조금은 침전물로 남아있다. 먼저 나를 오픈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요즘 사람들 만나면 편하지 않고 무슨 얘기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먼저 얘기를 하는 편이다. 가까운 친구들을 만나면 특히 이런 고민을 자주 얘기한다. 나름 고민을 털어놓고 친구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대부분 나의 고민에는 별 관심은 없고 자신들 얘기하기에 바쁘다. 이런 고민을 얘기하고 나눌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가끔 실망하면서 모임에서 철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철수보다는 불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을 마음공부의 대상으로 삼으려 억지로 노력하고 있다. 불편함을 안고 일상생활 하는데 별 무리가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요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람들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대부분 부정적인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한 선배가 돈에 대해 무척 예민하게 구는 것이 싫었는데, 그런 모습이 나에게도 있다. 주변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이를 당연시하는 선배의 모습이 싫었는데, 나 역시 그런 모습을 많이 갖고 있다. 선배의 보기 싫은 모습이 거의 대부분 내 안에 있는 나의 모습이다. 투사(投射)다. 투사는 개인의 성향인 태도나 특성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그 원인을 돌리는 심리적 현상을 의미한다. 투사를 마음공부의 대상으로 삼아 조금씩 자신의 틀을 부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끔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거나 화가 나기도 한다. 화의 강도는 그다지 센 편은 아니다. 불편하기는 하지만, 상대방의 말이 모두 맞는다고 인정하지 않는 부분도 있고, 말에 대한 비중을 크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친구들을 만나며 ‘상호 존중’이라는 관계를 중시하는 편이다. 이제는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상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다. 그러니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나고 살아도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런 모습이 오래 지속되다 보면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아갈 수도 있고, 그런 태도로 인해 자신만의 성에 갇혀 살아갈 수 있다. 좋은 태도는 아니라는 생각에 힘들고 불편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 노력하고 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꼭 만남을 피해야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불편함을 마음공부의 대상으로 삼자고 자신과 약속을 하면서도 잘 안된다.
“무지보다 위험한 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이 말이 위로가 된다. 사람들은 어느 일부분만 보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 얘기한다. 혼자만 알고 있으면 되는데, 그 얄팍하고 퍼즐 조각의 극히 일부분에도 못 미치는 불완전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세상에 알리려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정보량이 부족한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따라갈 수도 있다. 혼자 자신의 세계에 빠지면 아무 문제없는데, 다른 사람들까지 끌고 들어가는 것이 문제다. 장님이 사람들을 이끌고 절벽으로 가는 꼴이다. 요즘 정치인과 수많은 매체의 정보를 보면서 무엇이 진실인지 알기 어렵다. 심지어 그들조차 진실을 모르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입 다물고 사는 것이 쓸데없이 떠드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을 수 있다.
말하기 불편한 이유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우선 잘 모르기에 할 말이 없다. 특별히 아는 분야가 없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일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정치, 경제, 사회현상, 종교 등 어느 한 분야라도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 자랑할 만한 일도 물론 아니다. 관심사가 달라서 아는 것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불편하고, 딱히 할 말도 없고, 쓸데없는 말을 듣고 있기도 힘들다. 그러니 자꾸 모임에 나가지 않으려 한다. 당분간 조용히 자신과 대화하며 지내는 것도 좋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변해야 한다. 사람들이나 상황에 대한 나의 판단이나 평가 내리는 것을 멈출 필요가 있다. 아주 미미한 정보와 지식으로 누군가에 대한 평가나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입 다물고 지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판단과 평가를 내리더라도 입 밖에 내지 말고, 오히려 그 머릿속 얘기를 비워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명할 수 있다.
사람들의 얘기로 마음 상해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그냥 듣고 잊으면 되는데 마음에 담아둔다는 것은 뭔가 걸리는 것이 있다는 반증이다. 마음속 걸리는 것이 바로 공부거리다. 번뇌가 있어야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 걸리는 지점이 부숴야 할 아상의 벽이다. 자신이라고 알고 있는 허상을 빨리 깨닫는 것이 불편함에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나에 대해 누군가가 어떤 평가나 판단을 내리더라도 그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그로 인한 불편함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바로 그 지점을 마음공부 자리로 만들면 된다. 씨름하지 않으면 저절로 사라진다. 붙잡지 않으면 흘러간다. 일상 속 명상법이다. 그리고 이것이 명상이다. 명상을 통해 수예품의 뒷면을 볼 수 있다.
“인생은 마치 수예품과 같다. 인생의 절반에는 앞면을 보게 되고 나머지 절반에는 뒷면을 보게 되는 수예품에 비유할 수 있다. 뒷면은 썩 아름답지는 않으나 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어 수예품이 이루어지는지를 볼 수 있어 교육이 된다.”(어빈 얄롬 지음/쇼펜하우어, 집단심리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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