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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의 걷기일기

귀뚜라미를 추도하며

by 걷고 2023. 9. 5.

아침에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신문을 집으려는데 신문 위에 곤충 한 마리가 훌쩍 뛰어올라 채 잡기도 전에 집안으로 들어온다. 집안에 곤충이나 벌레가 있는 것을 싫어하기에 잡으려 노력했지만, 느려터진 나의 행동에 비해 곤충은 무척 날쌔서 잡을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포기하고 신문을 보는데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산 아래 아파트에 살기에 밖에서 나는 소리인 줄 알고 무시했는데, 거실 내에서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가을의 전령사인 귀뚜라미 소리가 밖에서 들릴 때는 기분이 좋고 마음이 편안해지는데 집 안에서 들리니 마음이 영 편안하지 않다. 거실을 샅샅이 뒤진 후 드디어 발견하고는 가차 없이 내리쳐서 죽였다. 그 순간 너무 미안하다는 감정이 올라오면서 부디 다음 생을 잘 맞이하라는 알량한 기도를 해 주었다. 귀뚜라미를 위한 기도라기보다는 살생한 것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기도였다. 예전에는 아무리 미물인 벌레가 집안에 있어도 죽이지 않고 밖으로 몰아내거나 잡아서 보내주었다.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좋아하면서도 집 안에 있는 것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일까?      

 내린 결론은 이기심이다. 같은 소리임에도 외부에서 들리는 소리는 즐길 수 있지만, 집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견디기 힘들다. 남의 일에는 무신경하면서 자신 일에는 무척 예민하다. 남의 상처는 아무 감정 없이 보면서 자신의 손가락 끝에 난 작은 상처는 매우 힘들어한다. 어제 무더위로 인해 몸이 무척 무겁고 힘들었다. 두 명의 친구들과 카톡을 하면서 힘들다고 했더니 일 마친 후 맥주 한 잔 하자고 한다. 맥주 마실 힘도 없다고 하며 거절했다. 귀가 후 씻고 나서 휴식을 취하고 나니 몸이 조금 회복되어 친구들에게 전화를 했다. 두 친구는 맥주 마시고 있으니 나오라고 한다. 그냥 쉬고 싶다고 하며 거절했다. 잠시 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친구는 나를 위해 자리를 만들었는데, 정작 나는 빠지고 둘만 모이는 꼴이 되었다. 이기심으로 인해 나를 초대했던 그 친구들 마음이 상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그들을 불러냈다면, 그들은 무조건 나왔을 것이다. 그들은 친구를 먼저 생각하고 나는 나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상대방의 배려마저 무시하는 못된 이기심이다.     

 

 요즘 나의 부정적인 면을 자주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참 한심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한다. 인생의 가을을 맞이하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이 정도라니 한심할 뿐이다. 그간 친구들의 나쁜 모습을 보며 비난하고 욕했던 자신이 너무 부끄럽고 동시에 그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함부로 친구들을 향해 욕이나 비난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모습이 실제로 그들의 모습이 아니고 내 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나의 못난 모습이 그들의 얼굴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투사 현상이다.      

 

 자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조금은 위축이 되기도 하고 변화를 위한 시도를 하면서 동시에 불편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조금 지쳤다는 생각도 든다. 백수로 하는 일이라곤 걷고, 글 쓰고, 사람들 만나고, 가끔 면접관으로 활동하는 것 밖에 없는데도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 조금 더 뒤로 물러설 필요성을 느낀다. 함께 걷는 것보다 혼자 걷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사람들과의 만남을 조금 더 줄일 필요도 있다. 거칠어진 마음 밭을 조금 정갈하게 가꿀 필요도 있다. 너무 외부 활동 위주로 하면서 마음이 많이 들떠있고, 거칠어진 느낌이다.      

 

 어제 꿈을 꾸었다. “늘 가던 길로 귀가하는데 중간에 큰 물길이 생겼다. 물을 무서워하는 나는 감히 건널 생각을 하지 못하고 뒤로 돌아 다른 길로 들어섰다. 근데 그 길을 통해 집에 가기 위해서는 큰 바위를 굴리고 갈아서 지나가야만 한다. 누군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지인이 함께 있다.” 꿈을 해석해 보았다.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돌아가라는 의미다. 지금 하던 방식대로 살면 위험할 수 있으니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삶의 방식에 변화를 주라는 의미다. 지인은 누군지는 모르지만 마음공부를 도와주는 사람인 듯하다. 이기심이 가장 큰 문제다. 내 안의 이기심을 녹여내야 한다. 기존의 삶의 태도를 바꾸기 위해 고통을 감수해야만 한다. 겨울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 지금의 생활태도에 변화를 만들어야만 한다.     

 

 추석 이후에 잠시 걷기 동호회 활동을 멈출 생각을 하고 있다. 사람들과의 모임도 조금 더 줄일 생각을 하고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늘 뭔가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온 것 같다. 그만큼 마음 밭은 혼란스럽고 정신없고 거칠어졌다. 홀로 차분히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최근에 관심 갖고 있는 실존주의 심리치료에 관한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갈 생각이다. 어빈 얄롬을 만난 것은 매우 시기적절하다. 그간 잊고 있었던 상담심리에 관심을 다시 갖게 만들어 주었다. 정체성을 찾게 해 주었다. 요즘 읽고 있는 어빈 얄롬의 책 <치료의 선물>에 나온 내용이 어제 꿈을 해석해 준 것 같다.    

 

“저자는 개인의 선택과 책임이라는 인간 변화의 필수 조건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이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데는 책임이 따르게 되고 이에 수반되는 용기가 필요함을 말해준다. 변화는 일종의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각 개인이 지니고 있는 문제들은 일련의 개인적 ‘질서’ 속에서 파생된 것이고 새로운 ‘질서’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무질서’, 즉 혼란의 상태를 경험하게 됨을 뜻한다. 하나의 질서를 깨고 다른 질서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해하는 것, 자신을 수용하는 것, 그리고 자신을 개방하는 용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치료의 선물, 역자서문 내용 중)   

 

이기심을 일깨워준 귀뚜라미에게 감사를 표한다. 다음 생에는 좋은 몸 받고 태어나 행복하고 건강하길 마음 모아 발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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