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지점에 도착한 오전 9시 반경, 벌써 날씨가 무덥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한 후 걷는다. 무더운 날씨는 발걸음을 무겁게 만든다. 여름이 온 것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숲길에 들어서니 살 만하다. 추위에 떨며 걸을 때에는 더위가 그립고, 더위 속을 걸을 때는 추위가 그립다. 임도 오르막길을 걸으며 길동무들은 벌써 뒤풀이 얘기를 한다. 시원한 맥주가 그립단다. 더위는 지치게도 만들지만 시원한 맥주라는 ‘희망’도 만들어낸다. ‘맥주’라는 희망을 안고 더위를 이겨내며 걷는다. 정상인 오뚜기봉에서 점심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떤다. 수다와 음식은 지친 심신을 달래주는데 아주 좋은 활력소다. 식사를 하며 대마도 트레킹 계획을 처음으로 꺼낸다.
경기 둘레길 마친 후 11월까지 또는 내년 구정까지 걷기 활동을 쉴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지친 것도 있지만, 너무 걷기에 빠져 지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몸도 마음도 많이 들떠 있는 것 같다. 또한 걷기 동호회인 ‘걷기 마당’에서 활동한 지 11년이 지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활동하기 위해 잠시 거리 두기를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서이다. 10월 초에 명상 센터에 들어가 10일간 집중수행에 참여한 후 들뜬 심신을 가라앉히고 싶었다. 이어서 동안거 결제를 하고 해제 후 활동을 재개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해제 시점인 내년 음력 1월 15일 이후부터 코리아 둘레길을 걷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계획이 주산님 때문에(덕분에) 어긋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주산님이 대마도 트레킹 코스와 일정에 관한 조사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며 걷기 마당에서 진행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을 하셨다. 한 달간 꼼꼼하게 조사와 연구를 한 후 일정과 비용을 정리해서 보내 주셨고 자세히 읽어본 후 의견을 전해 드렸다. 우리가 렌터카를 직접 운전하는 것, 초행길인 점, 그리고 해외 트레킹인 점을 감안할 때 안전 조치가 필요할 것 같았다. 주산님이 준비하신 일정과 코스를 여행사에 보내서 견적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번거로운 부탁을 드렸다. 일반적으로 여행사가 상품을 구성한 후 고객을 모집하는데, 이런 경우는 아마 여행사 입장에서도 처음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여행사에서 주산님 제안을 받아들였고, 주산님이 계획했던 경비보다 싸게 견적이 나왔다. 무엇보다 우리가 직접 진행할 경우 주산님과 참석자들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은데 비해, 여행사에 의뢰할 경우 우리는 걷기에만 집중해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주산님의 고민, 열정, 노력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좀 더 조사한 후 최종 공지를 7월 초에 올려서 9월 2일부터 3일, 1박 2일간 진행할 계획이다.
대마도 트레킹 자체보다는 주산님의 마음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잠시 쉬고 싶은 마음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7월 말 경기 둘레길 완주를 한 후 한 달 정도 쉬는 시간을 갖고 9월 초에 대마도 트레킹을 하고, 코리아 둘레길을 진행하게끔 자연스럽게 길이 이어진다. 명상센터는 다녀올 것이고, 안거의 방법과 원칙은 추후 정리하면 될 것 같다. 이번 일을 보며 삶은 내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유명 만화작가의 얘기를 듣게 되었다. 만화가 영화화까지 된 유명작가이지만 그분의 모습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삶은 내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강물이 흘러가듯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며 사는 것.” 이 말씀을 들으며 삶을 나의 의지대로 살려고 쓸데없이 애만 쓴 어리석은 자신을 많이 반성했다. 삶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주어진 삶을 사는 것이다. 나이 먹고 나니 작가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생겨서 그나마 다행이다.
걷기 마친 후 뒤풀이 장소에서 얘기를 이어갔다. 이번 경기 둘레길 마친 후 엔단호크님께서 이어서 경기 둘레길 2차 프로젝트를 진행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말씀하셨다. 여러 길동무들이 이미 길에서 만나는 다른 길동무들에게 엔단호크님의 경기둘레길을 홍보하고 있다. 걷는 분위기를 만들고 즐겁게 걷기 위해 노력하는 길동무들에게 감사 말씀을 드린다. 에단호크님은 걷기 마당에서 리딩으로 활동을 한 경험이 있고,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길을 헤맬 때 정확하게 길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며 함께 걷고 있다. 긍정적인 사고와 밝은 에너지를 지니고 길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길 찾는 능력도 탁월한 분이다. 특히 대인관계를 아주 편안하게 유지하는 원만한 성격을 지닌 멋진 친구다. 그가 9월부터 진행하는 경기 둘레길이 벌써 기대된다. 우스갯소리로 나는 ‘지는 해’이고 에단호크님은 ‘뜨는 해’라는 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아름답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에단호크님께서 이어서 경기 둘레길을 진행하겠다고 하시니 기쁘기 그지없다. 에단호크님 이후에도 경기 둘레길 3차, 4차 프로젝트를 이어서 진행할 사람들이 나오길 기대한다. 계속 이어서 진행하게 되면 ‘걷기 마당’에 하나의 새로운 ‘걷기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
후기를 정리해서 책을 발간할 계획이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경기 둘레길 완주를 축하하는 자리를 책 출간 기념과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 한 사람의 생각보다 여러 명의 의견이 훨씬 더 지혜롭고 옳다. 경기 숲길을 마친 후 늘 하듯이 간단한 기념 파티를 하며 일단 경기 둘레길을 마무리할 생각이다. 그리고 책이 발간되는 시점에 최종적인 경기둘레길 해단식을 겸한 책 발간 기념회를 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1년 3개월 동안 진행한 장기 프로젝트다. 나름 의미 있는 마무리를 하고 싶다. 좋은 의견을 말씀해 주신 당근조아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얼마 전부터 그간 써 온 후기를 정리하며 책 발간을 위한 원고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 둘레길이 끝나는 시점인 7월 말부터는 원고 마무리와 출간 기획안 작성, 그리고 출판사 투고 등을 하며 책 발간에 전념할 생각이다. 연말까지 책 발간 목표로 부지런히 움직이려고 한다. 발간 후 자리를 만들어 그간 경기둘레길에 단 한 번이라도 참석한 길동무들에게 책 선물을 하고 싶다. 우리의 추억이 담긴 우리만의 책이다. 장기간 함께 걸으며 발생한 상황, 좋은 일과 불편한 일, 웃고 울었던 사연들을 책에 담고 싶다.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경기 둘레길을 걷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쓰고 싶다.
대마도 트레킹이 개인적인 계획을 바꾸어놓았지만, 이 또한 나의 길이고 나의 삶이다. 자연스러운 변화와 환경을 겸허하게 수용하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다. 좋은 기회를 만들어 주신 주산님, 좋은 의견을 주신 당근조아님, 경기 둘레길을 이어서 진행하실 에단호크님께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제 힘든 길을 함께 즐겁게 걸었던 모든 길동무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혼자 걸었다면 포기할 수 있는 길을 함께 걸었기에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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