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숲길 중 양평 구간을 걷는 날이다. 시작지점에 조금이라도 일찍 도착하기 위해 평소보다 약 20분 빠른 7시 40분에 출발했다. 팔당대교를 건너는 지점에서 차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정도로 길이 막혀있다. 약 1시간 정도 걸려 겨우 통과했다. 양평 방향으로 놀러 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 기사님은 다음에는 다른 코스로 이동해서 조금이라도 빨리 도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기사님 잘못이 아닌데 무척 신경 쓰이시고 괜한 자책감이 드시는 것 같다. 11시 조금 지나 겨우 시작점에 도착했다. 약 3시간 20분 동안 차 안에서 답답하고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지금까지는 아무리 막혀도 2시간 이내 시작점에 도착했는데, 3시간 넘게 걸리니 은근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차 안에서 기다리느라 지친 길동무들이 과연 무사히 오늘 길을 완주할 수 있을까? 하지만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참석자 모두 마치 걷기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지친 기색도 없이 빠른 속도로 걷고, 애초 예상 도착 시간인 5시경 완주할 수 있었다. 출발 시간은 한 시간 늦었는데, 도착 시간은 예정대로 끝났다. 그만큼 속도를 내어 걸었다는 얘기다. 이들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엇이 이들에게 걷기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을까? 함께 걷는 길동무의 격려와 응원, 중간중간 휴식 시간에 나눠먹는 간식, 함께 걸으며 나누는 즐거운 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길동무로서 느끼는 동지애가 아닐까?
피치님은 매번 다양한 사탕을 예쁜 포장지에 넣어 나눠준다. 그리고 다양한 과일을 깎고 먹기 좋게 썰어서 작은 포크까지 준비해 온 후 휴식 시간에 하나씩 나눠준다. 이번에는 키위, 복숭아, 파인애플을 정성스럽게 준비해 왔다. 엑소님은 매번 막걸리를 시원하게 보관해서 나눠주고 컵까지 준비해서 컵을 준비하지 못한 길동무들을 배려한다. 어니님은 홍삼 스틱, 요구르트, 프루츠 칵테일 등을 인원수에 맞게 준비해서 나눠준다. 주산님은 약 1.5리터 이상의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해서 목이 마르거나 지칠 때 나눠준다. 걷는 중간 잠시 쉬는 휴식 시간에 먹는 간식은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어 준다. 무거운 간식을 배낭에 매고 힘들게 들고 온 후 적절한 타이밍에 나눠주며 걷는 분위기를 활기차게 만들어 준다. 고마운 사람들이다. 오늘처럼 폭염 주의보가 있는 날에 무거운 간식을 들고 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이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지고 올라와 나눠주는 행위는 아름답다. 그리고 이들은 스스로 나눠주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아름다운 추억만 간직한다.
불교에서는 남에게 뭔가를 베푸는 행위를 보시(布施)라고 한다. 보시에는 세 가지가 없어야 한다. 나누는 마음, 받는 마음, 나누는 물건과 행위가 없어야 한다.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베풀었다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대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원망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다. 받는 마음을 오랜 기간 갖고 있으면 뭔가를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의 빚을 갖게 될 수 있다. 주고받은 물건이나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한 돌려주고 돌려받을 것이 반드시 생기게 된다. 따라서 보시행을 한 후에는 이 세 가지가 없어야 참다운 보시행이라고 할 수 있다. 길동무들의 보시행을 보며 참다운 보시를 배우게 된다. 자신의 것을 나눈다는 것은 많든 적든 쉬운 일은 아니다. 아침 일찍 나오기 위해 전날부터 준비했을 것이다. 무거운 짐을 어깨에 메고 걸으면서 지칠 수도 있는데 티를 내지 않고 묵묵히 견디며 나눠 주는 행복을 느끼는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이 준비해 온 간식을 먹으며 간식만 먹는 것이 아니다. 간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따뜻한 마음과 정성을 먹는 것이다. 이런 마음과 정성은 우리 마음속에 간직된 후 서서히 성장하여 나누는 마음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다. 아무리 진수성찬이라도 혼자만 먹으면 그 맛이 제대로 나지 않는다. 함께 먹는 친구들과 가족이 있기에 그 음식은 진가를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경주의 최부자 말씀이 기억난다. “돈은 똥과 같다. 똥은 나누면 거름이 되어 곡식으로 돌아오지만, 쌓아만 두면 온갖 악취와 아무 소용도 없는 쓰레기가 된다.” 나눈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알려주신 명쾌한 말씀이다. 나눈다는 마음 없이 나누는 마음과 행동은 저절로 당사자에게 돌아온다. 이는 자연의 섭리다. 선인선과(善因善果), 악인악과(惡因惡果)! 받은 사람은 나눔의 고마움과 중요성을 배우고, 시간이 지나며 직접 나눔을 행동한다. 나눔의 나비효과다. 작은 나눔과 베풀음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길동무들을 통해 나눔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고, 언젠가는 나눔을 직접 행동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지옥과 천당의 차이점을 설명한 재미있는 얘기가 있다. 식사 시간에 지옥에 가니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하지만 지옥에 머무는 사람들은 피골이 상접하고 온몸에 상처가 가득하다. 가만히 보니 숟가락 길이가 팔 보다 길다. 식사 시간이 되자 차려진 진수성찬을 자신만 먹으려고 음식을 떠서 자기 입에 집어넣으려니 서로 숟가락이 부딪쳐서 음식이 바닥에 떨어지기 일쑤다. 결국 식사 시간은 끝났고, 어누 누구도 식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다음에 천당에 가니 지옥과 똑같은 음식이 차려져 있다. 이들은 서로의 입에 긴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먹여 주며 행복 가득한 미소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있다. 지옥과 천당의 차이는 아무것도 없다. 다만 나누는 마음을 갖느냐, 아니면 혼자만 갖으려는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지옥과 천당이 나눠진다.
폭염 주의보가 있는 날 무더운 열기 속을 걷기 열정으로 길동무들과 함께 걸었다. 만약 이 길을 걷는 것이 타인에 의해 강제된 일이라면 아마 지옥세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하는 마음, 길동무들을 위해 간식을 짊어지고 나눠 먹는 마음이 있는 길동무들과 걸으니 이곳이 바로 천당세상이다. 도로 위를 달리는 차 한 대가 중간에 속도를 줄이며 운전자는 우리가 걷는 모습을 이상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우리가 천당세상 속을 걷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폭염이 가득한 세상을 걷기 열정과 나누는 아름다운 마음을 지니고 천당세상으로 만들어가고 그 속을 걷고 있다. 우리는 모두 천당 속에서 살고 있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경기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기하지 않는 마음 (0) | 2023.07.09 |
---|---|
멀리 가려면 쉬었다 가라 (0) | 2023.07.01 |
아는 게 병이다 (2) | 2023.06.18 |
대마도 트레킹 (0) | 2023.06.11 |
길동무와 길은 부처님이다 (0) | 2023.05.2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