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장맛비가 내렸으나 다행스럽게 오늘은 날씨가 맑다. 하지만 최근에 내린 비로 습기가 많은 날씨다. 국유림 임도는 물을 잔뜩 머금고 있고, 중간중간 물길이 만들어 낸 상처가 보인다. 폭염주의보가 있는 날 임도를 걷는다는 것을 예전에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떤 날씨든 상관없이 또 어떤 길이든 개의치 않고 걷는다.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생긴 변화다. 비록 더운 날씨긴 하지만 시원한 바람이 가끔 불어 더위를 식혀준다. 나무 그늘에만 들어가도 금방 시원해진다.
29코스는 난이도가 ‘상’이지만, 블로그에 나온 후기를 보면 ‘중상’ 정도로 나온다. 막상 걸어보니 매우 편안한 길이다. 고도가 380m 정도의 높은 곳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고도 510m 정도까지 올라간다. 그리고 편안한 하산길이 펼쳐진다. 길은 최근에 정비를 했는지 걷기에 아주 편안하고 잡풀도 많이 깎여있다. 임도의 목적은 임산물을 나르거나 삼림의 관리를 위해 만든 도로다. 최근에는 산불 진화를 위해 임도의 넓이를 좀 더 확장해서 만들기도 한다. 따라서 임도는 차량 출입이 가능하도록 정비가 되어 있다. 설사 산이 높다 하더라도 일반 등산로와는 다르게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올라가는 길이어서 걷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이 코스는 난이도 ‘중’ 정도의 길이다. 다만 날씨 때문에 조금 힘들다고 느낄 수 있는 길이다.
반면 30코스는 난이도가 ‘하’이지만 블로그에 나온 후기에 의하면 도로를 따라 걷는 지루한 길로 햇빛을 가릴 곳이 없어서 힘든 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걸어보니 그들의 설명과는 매우 다르다. 시작지점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걷기는 하지만 도로를 벗어나 걷기 편안한 하천을 따라 걷는 길이다. 오른쪽에는 큰 하천이 흐르고 나무들이 많아서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지루한 길이 아니고 오히려 아기자기하고 재미있는 길이다. 길을 걷기 전에 찾아본 자료는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심리적 부담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직접 체험해 보지 않는 한 길에 대한 어떤 편견이나 판단을 내리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남의 평가나 판단을 믿고 행동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세상사도 그렇다. 남이 무어라 하든 스스로 체험하며 자신만의 기준과 판단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우리는 오히려 30코스를 매우 즐겁게 걸었다. 물론 힘들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조금 힘이 들기도 했지만, 즐겁게 걸었다. 점심 식사를 송어횟집인 ‘양평 계정횟집’에서 먹었다. 기다려서 먹을 만큼 손님들이 많은 식당으로 제법 유명한 맛 집인 것 같다. 기사님께서 미리 도착해서 대기표를 받은 덕분에 조금 기다리다 들어갈 수 있었다. 송어회를 다양한 야채, 콩가루, 고추장, 다진 마늘에 비벼 먹는 송어회는 피곤한 몸을 회복시켜 주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 시원한 맥주와 함께 먹는 점심 식사는 심신을 충분히 회복시켜 주었다. 휴식과 음식은 먼 길을 오래 걷는 데 매우 중요하고 필수적인 요소다.
점심 식사 후 30코스를 걷는다. 이 코스는 7.6km의 평지로 두 시간 정도 걸으며 마칠 수 있는 길이다. 점심 식사를 한 후에 걸으니 마치 오늘 처음 걷는 것처럼 몸도 마음도 매우 가볍다. 한 시간 정도 하천변을 걸었다. 나무 그늘 속에 쉬기를 반복하며 4km 정도 걸은 후 쉴 곳을 찾고 있었다. 눈에 띈 곳이 바로 “계정 3리 마을회관‘인 ’ 무더위 쉼터‘다. 무턱대고 문을 열고 들어가 화투를 치고 계시는 노인 분들께 양해를 구하며 잠시 쉬었다 가도 되겠느냐고 여쭈었다. 흔쾌히 그러라 하시며 우리를 신경 쓰지도 않고 화투에 몰입하신다. 각자 배낭에 있는 과일과 음식을 풀어서 노인 분들에게 일부는 나눠드리고 우리도 함께 먹으며 시원한 회관에서 충분한 휴식 시간을 보냈다. 약 30분 정도 휴식 후 다시 걸으니 처음 길을 걷는 사람처럼 발걸음이 활기차다. 아마 이 길을 미리 걸었던 블로그 후기의 주인공들은 이런 재미를 느낄 여유도 없이 바쁘게 걸었을 것이다. 길을 즐기지도 못하고 마치 경주하듯 빨리 끝내야 된다는 마음으로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유롭게 휴식도 취하고 노인 분들과 음식을 나눠먹으며 즐거운 추억도 만들었다.
산티아고 걸었던 생각이 떠오른다. 삶에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된 길이었고, 충실하고 열심히 걸었고,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보낸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길이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아쉬움이 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길을 끝내야만 된다는 마음으로 걷기에 바빠 주변을 돌아보거나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여유롭거나 한가롭게 길을 즐기며 걷지 못하고 빨리 끝내려는 마음으로 걷기에 바빴다. 그 점이 매우 아쉽다. 앞으로 다시 갈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길을 걷든 조금 여유롭게 주변도 돌아보며 길을 즐기며 걷고 싶다.
오늘 길이 그렇다. 송어횟집에서 제법 비싼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하며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마을회관에 들려 시원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며 음식을 나눠먹는 추억도 만들었다. 혼자 걸었다면 아마 걷기 바빠서 식당이나 마을회관에 들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번 해 보니 이런 휴식의 시간을 통해 훨씬 더 걷기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지방의 맛난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도 걷기의 큰 즐거움이다. 마을회관의 노인 분들을 보며 우리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다. 우리도 언젠가는 오늘 만난 노인 분들처럼 노인정에 모여 무더위를 피하며 하루하루를 보낼 날도 있을 것이다.
경기 둘레길 걷는 것도 역시 걷기에 바빴다. 길을 걸으며 빨리 끝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걸었다. 그냥 걷기에 바빴다. 좋지 않은 습관이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길을 걷는, 그 안에서 여유를 찾고 휴식 시간도 갖고, 즐겁게 일을 하고 길을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한다. 아직도 여유가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주어진 책무에 충실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일에 몰입하거나 즐기는 여유가 별로 없는 답답한 사람이다. 오늘 길을 걸으며 이제는 조금 여유를 갖고 길을 걷거나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많이 썼던 말이지만 이제 말을 바꿔야 할 것 같다. ‘멀리 가려면 쉬었다 가라’. 쉰다는 것이 멈춘다는 것은 아니다. ‘쉼’은 앞으로 나가기 위한 잠시 ‘멈춤’이다. ‘멈춤’을 통해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힘과 여유로 과정을 즐기며 걷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경기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걷기’ 교 ‘걷기 마당’ 종파 ‘경기둘레길’ 소속 (0) | 2023.07.16 |
---|---|
포기하지 않는 마음 (0) | 2023.07.09 |
지옥과 천당 (0) | 2023.06.25 |
아는 게 병이다 (2) | 2023.06.18 |
대마도 트레킹 (0) | 2023.06.1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