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길을 포함하여 세 번만 더 걸으면 경기 둘레길이 끝나게 된다. 긴 여정이지만, 많은 분들의 참석과 응원 덕분에 이 길을 즐겁게 걸었고, 무탈하게 걸을 수 있었다. 출발 지점에 모여 간단히 스트레칭을 한 후 인사를 하려는데 갑자기 목이 막히며 말을 이어가기가 어색해진다. 오늘 길 마치고 나면 두 번 남았다는 말을 하는데 하기 싫은 건지, 아니면 힘든 건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말을 대충 얼버무리며 바로 걷기 시작한다.
개천가를 따라 걷다가 도로를 걷는 이 길은 차량 통행이 많은 길로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후미를 지켜주는 어니님과 다른 분들은 차가 올 때마다 큰 소리로 ‘차!’라고 외치며 주의를 준다. 일렬종대로 걸으면 대화를 하기가 힘들고, 횡대로 걸으며 차량 때문에 걸을 수 없다. 종대와 횡대를 번갈아 유지하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오랜만에 나온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니 더욱 할 말도 많고, 그만큼 웃는 일도 많다. 경기 둘레길이 곧 끝난다는 아쉬움 때문인지 한동안 나오지 않았던 사람들 얼굴도 보이고. 그들을 보니 이 길을 걸을 때의 예전 추억이 떠오른다. 추운 날씨에 서로를 감싸며 걸었고, 더운 날씨에 시원한 물을 사주고 얼을 과자를 나눠 먹으며 걷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며 참석자들이 바뀌기도 했고, 다시 시간이 지나니 예전의 얼굴들이 다시 나와 함께 걷는다. 사람도, 길도, 마음도, 자연도, 시간에 따라 변한다. 변하는 것을 억지로 변하지 않게 바꾸려는 시도는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변화를 인정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살아가면 마음이 많이 편해진다.
에단호크님이 식당을 검색해서 점심 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다. 식당 전화번호가 나오지 않는데, 검색하던 중 그 식당 영수증을 발견해서 거기에 적힌 전화번호를 확인 후 예약을 했다고 한다. 닭갈비집인데 주인 인상도 좋고, 인심도 좋고, 맛도 좋은 식당이다. 식당 간판도 없어서 사전 정보 없이는 찾기가 힘든 식당이다. 그 정성과 열의가 너무 고맙다. 예전 개그 프로그램 코너에 나온 대사 중 ‘안 되는 게 어딨 니?’라는 말이 갑자기 떠오른다. 안 되는 것은 없다. 다만 하지 않거나 포기할 뿐이다. 경기 둘레길을 완주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중간에 힘들어서 또는 어떤 다른 이유로 계속해서 걷지 못했다면 오늘 이 길을 걸을 수 없었을 것이고, 경기 둘레길을 완주하지 못했을 것이다. 길을 함께 걷는 길동무들의 노력과 길에 대한 사랑, 길동무에 대한 동지 의식 등이 섞여 지금까지 걸을 수 있었고, 마무리를 할 날이 곧 올 것이다.
무더운 날씨긴 하지만 해가 뜨지 않아 걷기 좋은 날이다.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더위를 식혀준다. 점심 식사 후에 드디어 임도에 들어선다. 경기 둘레길 구간 중 경기 숲길이 걷기에는 가장 좋은 길이다. 차량이 출입할 수 있도록 넓은 길이 닦여져 있고, 숲이 많아 햇빛을 가려주고, 고도가 높아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기도 한다. 산을 오르는 것도 등산하듯 가파르게 오르는 것이 아니고, 완만한 임도길을 굽이굽이 돌아 오르게 되기에 힘이 덜 든다. 급경사를 오르지 않고 위험한 구간 없이 완만한 경사로를 걷기에 비교적 힘이 덜 든다. 구간 중 일부 구간은 조금 힘든 길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걷기에 가장 편안하고 적합한 길이다.
길을 걸으며 길에 대한 정이 들고 함께 걷는 길동무와도 정이 든다. 무생물도 마음을 담아 사랑하게 되면 생물이 된다. 어떤 사람은 돌멩이를 마치 애완동물 대하듯 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에게 돌멩이는 그냥 돌이 아니고 생명이 있는 생물이다. 돌과 교감한다는 것이 잘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오히려 우리가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길도 틀림없이 생명이 없는 무생물이다. 하지만 길을 걷다 보면 길에 대한 정이 들고, 길도 우리를 반긴다. 길 자체는 무정물이지만 그 무정물 위에 수많은 생명체들이 살아가고 있다. 길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행동도 하지 않고, 그냥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 둔다. 가장 자연스러운 보호방식이다. 우리도 길 위에서는 하나의 생명체에 불과하다. 우리도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걷는 것에 대해 길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며 우리를 보호한다. 길이 우리를 반기는 방식이다. ‘내버려 둔다’라는 표현보다는 ‘받아들인다’, 또는 ‘포용한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자연의 포용 방식을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길을 걸으며 가끔 한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우리를 받아주고 포용해주고 있는 길이 고맙다.
오랜 기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온 성인들이 동호회라는 모임에서 만나 함께 걸으며 많은 추억을 쌓아간다. 길을 걸으며 서로 다름을 확인하며 불편해하거나 또는 불편함을 극복하고 자신의 틀을 깨는 사람도 있다. 함께 꾸준히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두 번 나오다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사람도 있다. 각자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 또는 함께 걷는 길동무들과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지 않거나, 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일 수도 있다. 꾸준히 걷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늘 좋은 일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가끔은 불편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좋은 상황이든 불편한 상황이든, 길동무와의 관계든, 아니면 길의 상황이나 날씨의 상황이든, 주어진 조건은 늘 변하고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는 우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일이 대부분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쓸데없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대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조절하며 주어진 상황을 잘 해결해 나가는 지혜를 발휘하며 편안하게 살 수도 있다. 외부 요인은 통제 불가능하지만, 내부 요인은 통제 가능하다. 내부 요인은 자신의 마음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쌓아 온 마음을 바꾸는 것 역시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통제 불가능한 다른 사람이나, 날씨, 자연의 환경 등을 바꾸는 것보다는 훨씬 더 실행하기 쉬운 일이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그러면 세상을 바라보는 너의 시각을 바꾸어라. 그러면 이미 세상은 바뀌어져 있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매일 맞이하는 하루도, 자주 만나는 친구도, 자주 걷는 길도 자신의 기분에 따라 즐겁고 좋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하루, 친구, 길은 그냥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다만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일 뿐이다. 따라서 불편한 상황의 발생 요인을 외부로 돌리는 것보다는 자신의 내부를 바라보는 좋은 계기로 삼는다면 자신의 틀을 깨는 데 아주 좋은 기회가 된다. 자신의 틀을 깬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편해진다는 것이고, 자신이 편해지면 만나는 주위 사람들이나 상황들을 편안하게 대하게 된다. 나와 너 그리고 주변 상황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것’이다. 꾸준하고 반복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
'경기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기 둘레길은 집단상담의 장(場)이다 (0) | 2023.07.17 |
---|---|
‘걷기’ 교 ‘걷기 마당’ 종파 ‘경기둘레길’ 소속 (0) | 2023.07.16 |
멀리 가려면 쉬었다 가라 (0) | 2023.07.01 |
지옥과 천당 (0) | 2023.06.25 |
아는 게 병이다 (2) | 2023.06.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