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5월 13일에 시작한 경기 둘레길은 지금까지 총 43회에 걸쳐서 59개 코스를 걸었고, 이번 주 토요일 마지막 코스인 26코스를 걸으면 총 860km에 달하는 긴 여정이 마무리된다. 짧게는 15km 정도, 많이 걸을 때에는 30km 이상을 매주 5시간에서 8시간에 걸쳐 한 코스 또는 두 코스를 걸었다. 사계에 거쳐 걸었고, 날씨와 상관없이 걸었다. 추운 날, 더운 날,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 불어 좋은 날에도 걸었다. 코스도 다양하다. 임도를 걷는 숲길, 갯벌을 보며 걷는 갯길, 강을 따라 걷는 물길, 평화를 기원하며 철책을 따라 걷는 평화누리길을 걸었다. 걷는 동안 계절이 바뀌었고, 참석자 중 일부는 다른 사람들로 대체되기도 했다. 길을 걸으며 우리 또한 변했다. 1년 이상 진행한 길이기에 우리도 1년 3개월이라는 세월 속에 그만큼 늙어갔고, 건강은 좋아졌고, 심리적 근육도 강해졌다. 어떤 상황 속에서 걸을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고, 어떤 말과 분위기에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걸을 수 있는 근력도 생겼다.
몇 주 전부터 경기 둘레길을 다녀온 후에 등산용품이 보관된 작은 방에 짐을 풀어놓고 정리를 하지 않고 있다. 이 길을 완주한 후에 정리하면 된다는 이상한 습관이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매주 방 정리를 했고, 등산 용품을 정비하고 정리했었는데, 최근에는 이 마저 귀찮아 정리도 하지 않고 그대로 쌓아둔다. 경기 둘레길이 끝나야 그 이후에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짐 정리도 걷는 행위가 아니기에 내게는 다른 할 일로 느껴지나 보다. 다만 금요일 저녁에 토요 걷기를 위해 배낭을 꾸리며 필요한 물품을 채우거나 교체하는 일만 한다. 그 외의 다른 물건이나 용품들은 건드리기조차 싫고 귀찮다. 거의 매주 1년 이상 걷다 보니 경기둘레길이 언젠가부터 삶의 중심이 되어 버렸다. 경기 둘레길을 걷기 위해 사람 만나는 일정도 조정한다. 수요일 이후에는 가능하면 사람들 만나는 일을 하지 않거나 약속을 변경하며 토요일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길 안내자로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이유도 있다. 1년 이상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가 삶의 변화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이번 경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길을 걸으며 걷는 이유를 생각하며 걷는다. 최근에 찾은 답은 ‘자유를 되찾기 위해’ 서다. 누가 나를 옭아매거나 직장에 소속된 사람도 아니고, 어떤 일을 강제로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더 이상 돈 버는 일을 하지 않아도 죽을 때까지 남의 도움 없이 살아갈 형편은 된다. 먹는 것, 쓰는 것, 입는 것 줄이면 기본적인 생활은 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상황인데도 ‘자유’를 찾고 싶고, ‘자유’가 그립다. 나를 자유롭게 만들지 못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옭아매고 있고, 나를 힘들게 만들고, 나를 괴롭게 만들까? 주변의 시선이나 주변 사람들의 평가, 타인들과의 비교, 사람들에게 좋게 보이고 싶은 마음, 채워지지 않은 욕심,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마음, 남을 통제하고 싶은 마음,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심, 유혹에 빠지고 싶은 욕심, 내 생각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난, 타인들에 대한 평가와 험담, 이 외에도 너무 많은 것들이 나를 옭아매고 있다. 이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
경기 둘레길을 걷는 것, 즉 장기간 거의 동일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걷고 말하는 행위, 은 집단상담과 같은 효과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최근에 하게 되었다. 상담에는 개인상담과 집단상담이 있다. 상담사와 개인이 만나 단 둘이서 진행하는 개인상담은 일반적으로 많이 알고 있는 상담이다. 반면 아직 집단상담에 대한 인식은 조금 부족한 것 같다. 집단상담은 8~10명의 집단원을 상담자가 이끌고 가며 8주간 매주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진행하는 상담 방법이다. ‘이끌고’ 간다는 표현보다는 집단 분위기를 촉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집단 리더의 역할이다. 어떤 주제를 정하고 진행하기보다는 일상 속 얘기를 자유롭게 얘기하고, 얘기를 듣고 다른 참가자는 떠오른 감정이나 생각을 얘기하며 집단 내 역동을 만들어 낸다. 이 역동을 통해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이 일어난다. 흔히 하는 얘기로 ‘집에서 새는 바가지, 들에 가도 샌다.’라는 말처럼 집단 내 하는 언행이 바로 그 사람이 일상생활 속에서 하는 언행이다. 집단상담은 집단 내 역동을 통해서 통찰을 만들어내고, 이 통찰을 통해 집단 내에서 변화하고,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일상 속에서 훈습하는 과정을 통해 변화와 성장을 한다.
경기 둘레길의 특징 중 하나는 오랜 기간 거의 매주 네다섯 시간씩 대부분 동일한 사람들을 만나 함께 걸으며 많은 얘기를 주고받는다. 사람을 알 수 있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힘든 상황을 함께 겪어 보는 것, 그리고 모든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사람의 모습을 제대로 보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사회적 가면을 쓰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든 상황을 맞이하면 그 사람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 모습이 그 사람의 참모습이다. 모든 권한을 부여하면 그 권한이 평상시에 감추어둔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평상시에는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사람들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들 중에 모든 결정권을 갖게 되면 갑자기 돌변하는 사람들이 있다. 혹시나 길 안내자인 리더로서 내게도 이런 모습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소름이 돋는다. 경기 둘레길은 귀한 경험을 제공해 준 매우 활기찬 집단상담의 장(場)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길동무들이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자신의 민낯을 보고, 타인의 모습이 자신의 거울이 되는 경험을 했기를 바란다.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한 행동이나 어떤 역할이 주어졌을 때 했던 행동을 반추하며 자기 성찰의 기회로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걷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상담심리사로서 하고 싶은 일이 바로 걷기와 상담을 접목한 심신 힐링 프로그램이다. 돌이켜보니 이미 경기 둘레길을 걸으며 살아있는 심신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고, 이 기회를 통해서 나 자신의 민낯도 볼 수 있었다. 걷고 싶은 길을 걸었고,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통찰이 일어났고, 앞으로 일상 속 훈습할 수 있는 공부거리를 얻게 되었다. 이런 귀한 경험이 시간이 흘러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다. 언젠가는 지금 나를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날이 올 것이다. 경기 둘레길은 이번 주 토요일에 끝이 난다.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에단호크 님께서 2차 경기 둘레길을 9월부터 진행한다. 경기 둘레길이 길동무들에게 심신의 건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집단상담의 장(場)으로 함께 걷고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고 스승이 되는 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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