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불자들은 사찰을 참배하며 부처님 탄신을 축하하며 동시에 부처가 되기 위해 정진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중요한 날입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불자가 아닙니다. 사찰 참배는 물론 부처님 탄신을 축하하는 자리에 참석도 하지 않고 길을 걷기 위해 아침 일찍 집을 나서고 있으니 말입니다. 언젠가부터 사찰을 가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을 친견하며 공부에 대한 질문을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불교와 멀어지는 것은 아닌가라는 약간의 우려가 있기도 합니다. 동시에 반드시 사찰에 참배하고 스님을 친견하고 법당에 주리 틀고 앉아 참선만 하는 것이 불자의 태도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스님들과 불교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합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불교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도달하게 됩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한문 그대로 풀이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럼 부처님은 무엇을 가르쳤을까요?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29세에 출가하시고 35세에 깨달음을 얻으신 후 80세 완전한 열반에 드셨습니다. 45년간 인도 전역을 다니시며 전법 활동을 하셨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45년간 가르치신 것입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괴로움(苦)의 원인(集)을 알아야 하고, 원인을 없애는 방법(滅)을 알아야 하고, 구체적인 길(道)을 알아야 합니다. 이 ‘고집멸도(苦集滅道)’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네 가지의 성스러운 가르침입니다.
몸을 갖고 태어났기에 늙음, 죽음, 병고가 생깁니다.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몸을 갖고 태어났기에 좋아함과 싫어함이 생깁니다. 괴로움의 원인인 집착입니다. 괴로움을 없애는 길이 팔정도입니다. 팔정도 중에 가장 중요한 덕목을 정견(正見)이라고 합니다. 올바르게 본다는 의미입니다. 주어진 모든 것을 올바르게 보면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상함을 볼 수 있다면 집착할 이유가 저절로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집착이 사라지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또한 올바르게 본다는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 판단, 사고, 평가가 들어가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우리 괴로움의 주원인은 주어진 상황이나 만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좋아하는 것은 더욱 취하려 하고, 싫어하는 것은 더욱 멀리하려 합니다. 자신의 주관에 따른 결정과 판단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존재의 무상함을 바로 보고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입니다.
길을 걸으며 수많은 사람들과 상황을 맞이합니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만나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만납니다. 걷기에 좋은 청명한 날씨를 만나 즐겁게 걷기도 합니다. 때로는 비가 오거나 강풍이 몰아치거나 매서운 추위 속을 걷기도 합니다. 몸이 불편할 때도 걷고, 몸 상태가 최적의 상태일 때도 걷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사람들과 상황에 대한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바라보며 걷습니다. 혼자 걸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을 함께 걸으면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 내용이 긍정적인 것이든 아니면 부정적인 것이든. 하지만 긍정적인 느낌과 사고도 부정적인 것들과 같이 매우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이미 거울처럼 맑은 본래 마음에 때가 묻은 판단에 불과합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수행과 같습니다. 아니 그 자체가 바로 수행입니다. 수행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지만, 마음을 닦아 본래 부처의 마음을 찾는 것이 수행이라면 걷기 자체가 바로 수행입니다. 게으른 마음을 달래서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서는 것이 출가의 시작입니다. 길동무들을 만나 걸으며 발생하는 수많은 생각과 느낌, 감정 등은 마음공부의 아주 중요한 살아있는 주제입니다. 자연 속을 걸으며 사계의 변화를 통해 무상을 깨닫게 되고, 날씨의 변덕에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걸으며 평정심을 배우게 됩니다. 또한 자연의 베푸는 수많은 배려와 선물에 감사함을 느끼며 이기심을 벗겨내는 자기 정화 작업을 합니다. 수행은 결국 자기 정화입니다. 마음의 때를 벗겨내어 본래 부처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수행이고, 그 결과가 깨달음입니다.
꾸준히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결정이기에 존중받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꾸준히 한다는 것은 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처님께서도 열반에 드시기 전에 ‘꾸준한 정진’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루 공부한 것이 수많은 보화를 쌓는 것보다 더 공덕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 걷는다는 것은 하루 공부한다는 의미이고, 하루 동안 자신을 정화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걷는다는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충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 충전한 힘으로 다시 한 주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길동무들과 얘기를 하며 힘든 일상을 잊기도 하고 자신의 고민을 덜어내거나 해결책을 찾기도 합니다. 마음에 맞지 않는 길동무들을 만날 때 길동무 탓을 하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며 마음을 닦습니다. 불편하거나 힘든 상황을 맞이할 때 상황에 대한 탓을 하기보다 불편한 마음을 들여다보며 자신을 정화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길을 걸으며 그간 만났던 길동무들과 마주쳤던 많은 상황을 생각하며 걷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불만과 험담한 것을 참회합니다. 상황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마음속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놓은 것을 참회합니다. 앞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꾸준히 정진하겠습니다. 길동무들은 모두 제게 부처님입니다. 그리고 길에서 마주친 모든 상황 역시 제게는 부처님입니다. 비록 사찰에 참배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부처님을 친견하며 함께 걷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부처님을 모시고 함께 걷는 즐거움이 이미 돌아가신 부처님을 경배하는 것보다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글을 쓰며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는 방법이 일반 불자들과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불자가 아닌 것이 아니고 오히려 더 예전보다 불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불자이든 불자가 아니든, 또는 사찰에 참배하든 아니든, 또는 종교가 같든 다르든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 살아갑니다. 저는 길을 걸으며 행복합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나는 모든 길동무 부처님들과 함께 걸으며 행복합니다. 자연이라는 부처님을 만나 행복합니다. 부처님 오신 날 길을 걸으며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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