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다. 무슨 일이든 긴 세월 동안 경험하면 익숙해지고, 일단 익숙해지면 편안하게 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잘 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이 들어가면서 사람과 상황을 마주치는 일에 따른 불편함이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상황들을 마주치며 살아왔으면 웬만한 일들에 대해서는 편안하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잘 되지 않는다. 사람들에 대해서는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고 상황에 대해서는 짜증이 올라오기도 한다. 젊을 때처럼 직접적인 표현을 할 용기와 에너지가 떨어져서 속으로 삭이다 보니 내부에는 불만이 쌓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노화의 심리적 증상 중 하나로 경직성을 얘기한다. 경직성이란 자신만의 고집과 편견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대한다는 의미다. 살아오면서 굳어진 심리적 패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패턴은 가정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쌓아놓은 성(城)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 방어적인 방편이다. 하지만, 은퇴 후에는 그간 만들어 온 정체성을 버릴 필요가 있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이다. 자신의 정체성을 버린다는 것은 ‘작은 자신’을 버리고 좀 더 ‘큰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니지만 자신이 편안해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이것은 ‘나의 것’이고 나의 생각’이라고 자신의 것을 고집하는 한 결코 편안해질 수 없다. ‘나’라는 개념은 ‘너’라는 상대적 개념을 만들어내며, 이는 서로 보완적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불편한 적대적 관계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나’와 ‘너’의 이분법적 사고는 시비를 불러일으킨다. ‘내 판단’은 맞고, ‘너의 판단’은 틀리다 또는 ‘나의 것’은 소중하고 ‘너의 것’은 하찮다는 생각은 갈등을 야기하고, 이런 갈등은 삶의 불편을 초래한다.
경기 둘레길 22, 23 코스는 매우 다이내믹하고 다양한 길로 이루어져 있다. 상천역에서 시작하는 이 길은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한다. 조금 후에 산길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 녹음이 짙은 봄의 숲은 생기가 가득하다. 호명호수까지 이어진 오르막길은 매우 완만한 경사로로 걷기 좋은 길이다. 호명호수에 물이 적어 약간 실망하기도 했지만, 호수 옆 벤치에 앉아 커피와 간식을 먹고 마시는 즐거움은 실망감을 잊기에 충분하다. 물이 빠진 호숫가에 큰 거북이 조각상이 보인다. 거북이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호명호수를 반 바퀴 정도 도는 숲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완만하게 이어지는 매우 환성적인 길이다. 그 이후부터 호명산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은 제법 힘들기도 하지만, 중간중간 전망대와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은 힘든 고통을 희열로 승화시켜 준다. 호명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내리막길은 오르막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고 힘들다. 만약 이 길을 반대로 걸어왔다면 매우 힘들었을 수도 있다. 하산해서 청평역까지, 그리고 이어진 23코스는 걷기에 매우 편안한 평지다. 큰 고비를 넘긴 사람들만이 평지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고통은 즐거움과 하나다. 고통의 이면은 즐거움이고, 그 반대의 경우도 그대로 성립된다. 이어진 길은 도로도 있고, 아름다운 숲길도 있고, 데크길도 있다. 다양한 길이 뒤섞인 이 코스를 많은 사람들이 경기 둘레길 중 최고의 코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왜 이 길이 가장 아름답고 최고의 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을까? 나 스스로도 이 길이 경기 둘레길 중 가장 멋진 길이라고 생각한다. 길을 걸으며 곰곰이 생각해 봤다. 길의 ‘다양성’ 때문이다. 다양한 길이 뒤섞인 길은 한 가지 특징을 지닌 길보다 당연히 기억에 오래 남을 것이다. 이런 다양한 길들이 뒤섞여 경기 둘레길을 만들고, 우리는 그 길 위에서 길동무들의 다양성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방법을 배운다. 숲은 다양함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숲 속에 똑같은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고 다양한 수종과 꽃, 돌, 물. 새, 바위들이 뒤섞여 함께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한 가지 나무나 꽃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이들은 서로를 품고 함께 살아간다. 이 나무가 저 바위를 싫어하거나, 저 새가 이 꽃을 시기하지 않는다. 자연의 존재들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살아간다.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을뿐더러 다른 존재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거나 자신과 다르다고 험담하지도 않는다.
길을 걸으며 길 위에서 ‘말 없는 가르침’을 배운다. 말로 표현되는 순간, 이미 그 말은 의미를 잃어버린다. 말이라는 것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 놓은 하나의 방편일 뿐, 말 자체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다. 말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길의 다양성이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에 대한 답을 가르쳐준다. 다양성의 반대는 경직성이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경직성을 풀어서 수용의 폭을 넓히는 다양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자신이 오랜 기간 살아온 방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만약 불편하고 힘들고 익숙하지 않다고 기존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남는 것은 고립에 따른 외로움 밖에 없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 결국 자신을 자신만의 감옥에 가두게 되는 꼴이다. 자신의 삶만 불행해질 뿐이다. 행복하기 위해서 자신의 성을 부수어야만 한다. 부수는 과정은 힘들지만, 일단 부수면 보다 넓은 세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진정으로 깊은 사랑은 소리 높여 표현하지도 않고 애정 표현과 연결되는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절제는 곧 품격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보려고 노력하는 일은 다른 시기에도 필요하지만 노년기에는 매우 중요하다. 노년기에는 불안 때문에 사고의 폭이 좁아지고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게 되는 탓에..... (중략) 나이 드는 사람들은 감정 조절에 신경을 써야 한다. 솔직하다는 것은 귀중한 덕목이지만 솔직함은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 짜증, 불만을 모조리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감정을 구체적인 말로 표현하면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요구가 된다. (중략) 가까운 관계 속의 이타성이란 사람들을 조종하지 않고, 사람들을 수단으로 이용하지도 않고, 그 사람들의 행복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필요한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것이다.” (<지혜롭게 나이 든다는 것> 마사 누스바움, 솔 레브모어 지음, 본문 중)
나이 들어감에 대한 생각을 하며 관련된 책을 읽고 있다. 아는 내용도 있지만, 활자화된 글을 보며 아는 내용을 확인하기도 하고, 때로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정리되기도 한다. 표현의 절제는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기 위해 매우 필요한 부분이다. 이기적인 생각보다 이타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다. 나의 입장에서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도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는 좋은 방법이다. 길 위에서 길을 통해 또 길동무들을 통해 지혜롭게 나이 들어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걷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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