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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인생 3막

나를 찾아 떠나는 인생 3막

by 걷고 2024. 2. 1.

일반적으로 인생을 1막과 2막으로 나눈다. 하지만 나는 인생을 3막으로 나누고 싶다. 인생 1막은 태어난 후 부모님과 형제, 자매의 보호 아래 성장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기까지의 기간이다. 1막은 가정과 사회로부터 보호받으며 성장하는 시기다. 인생 2막은 성인으로 성장한 후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독립하는 시기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드는 시기다. 이 기간 동안 자신만의 가정을 이루고 지키고, 사회인으로 역할을 하며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시기다. 2막은 독립하고 책무를 수행하는 기간이다. 은퇴나 퇴직 후 가정과 사회의 역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는 시기가 인생 3막이다. 2막에 부여된 가정적,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조금 더 자유롭고 여유롭게 자신만의 삶을 찾고, 인생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인생 2막을 위해 만들고 쌓아놓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수고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지금 나는 인생 3막을 살고 있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많이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삶이 방식과 가치가 다르기에 어떤 인생 3막을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처한 가정적, 사회적, 경제적, 신체적, 심리적 상황이 다르기에 자신의 상황에 맞는 인생 3막을 선택하고 살아가야 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 3막을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일 수도 있다. 하루하루 연명하기가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고, 설령 경제적으로 여유롭다 하더라도 사회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변하지 않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는 사실이다. 피해 갈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잘못된 점은 참회하고, 좋은 점을 유지하며 아무런 미련과 회한 없이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 

 

금년에 쓰고 싶은 글의 주제가 ‘나를 찾아 떠나는 인생 3막’이다. 60대 후반인 지금의 나는 삶의 어느 지점에 와 있을까? 남아 있는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을까? 가정적, 사회적 역할을 어느 정도 마친 나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그냥 죽음만을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리고 태어난 삶이니 왜 태어났는지, 또 나는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다. 지금 나의 삶은 전반적으로 편안하다. 특별한 고민도 없고, 지병도 없고, 힘든 상황도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나의 삶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이 보는 나의 삶에 대한 관점은 그들의 시각일 뿐이다. 내가 바라보는 나의 삶에 대한 관점이 중요하다. 특별히 좋은 일도 없지만, 특별히 나쁜 일도 없다. 아마 이것이 특별히 좋은 일이 아닐까? 평범하지만 편안한 삶. 남에게 의지할 필요도 없고, 남의 도움 없이도 나와 아내와 우리 가족이 즐겁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그 자체가 이미 충분히 행복하고 편안한 삶일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죽을 때까지 남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청할 일 없는 것 자체도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외동딸도 결혼해서 잘 살고 있으니 아이 걱정 할 필요도 없다.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고, 손자들과 좋은 추억을 쌓고 살아갈 수 있는 지금의 환경도 매우 고맙다. 부모님과 장인어른은 돌아가셨고, 장모님만 계신다. 아직도 지역 노인회 회장 역할을 하시며 바쁜 일상을 살고 계시니 매우 고마울 따름이다. 형과 누이들도 각자 잘 살고 있으니 이 또한 고마운 일이다. 가족 중 단 한 명이라도 매우 힘들게 살고 있다면 이 또한 나와 우리의 고통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매우 편안하고 행복한 편이다. 

 

앞으로 남은 삶을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 인생 3막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 바로 자신의 침 모습을 찾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왜 태어났을까? 나는 누구이고 무엇일까? 이 두 가지를 찾으며 하루하루를 편안하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 3막의 목표이자 과업이다. 인생 3막을 시작한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나가고 있다. 사업을 정리한 후 다양한 일을 하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힘든 시간도 있었고, 보람과 성취감을 느꼈던 시간도 있었다. 매우 평범한 소일거리에 불과하지만 그 소일거리를 하며 나름 충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걷고, 글 쓰고, 상담하고, 책 읽고,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매우 평범한 일상이다. 그리고 이런 일상이 행복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지금 이 시점에 한번 나의 삶을 돌아보고 싶다. 지난 10여 년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무엇을 하며 살아왔는지, 어떤 어려움과 즐거움이 있었는지 확인하고 싶다. 다행스럽게 그간의 생활을 블로그에 글로 정리해서 올려놓았다. 이 글을 읽어보며 인생 3막을 준비하는 과정을 돌아보고 싶다. 그리고 그 글을 정리해서 한 권의 책으로 발간해서 간직하고 싶고 또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싶다. 금년에 쓸 글의 주제다. 

 

주변에 퇴직이나 은퇴 후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모르며 방황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만의 취미나 특기를 살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도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할 일도 없고, 집안에 있기도 불편해서 힘든 직업을 찾아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든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도 있다.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이 다르고 살아가는 모습도 다르기에 인생 3막에 대한 정답이 있을 수도 없다. 나의 지난 여정이 인생 3막을 어떻게 준비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단 한 가지라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나의 방식이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10여 년간의 삶의 과정을 지내며 지금 편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 반드시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사람마다 지닌 삶의 가치와 방향이 다르지만,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싶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사람도 나의 지나온 과정을 보며 자신만의 인생 3막을 살아가는데 작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에 어른들이 아침에 일어나 마당을 쓸던 기억이 난다. 굳이 집에 누군가가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마당에 지저분한 쓰레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마당을 쓸고 있어서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사찰에는 아침마다 절 마당을 쓸거나 잡풀을 뽑는다. 그 선명하고 정갈한 빗자루 자국을 보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잡풀을 매일매일 뽑지 않으면 마당은 금방 폐허로 변해버린다. 집안에서 할 일이 없는 노인들이 아침마다 논이나 밭을 둘러보곤 한다. 때로는 마실 간다며 동산 넘어 친구를 만나러 간다. 별로 할 일도 없는 노인들이 하루를 보내는 방법이다. 그 당시에는 이런 모습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분들도 나름대로 할 일을 스스로 찾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 할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또 사회적으로는 어떤 도움이 되거나 생산적인 일이 아님에도 그분들에게 그 일은 매우 중요하고 엄숙한 일이다. 잡풀을 뽑지 않으며 폐허가 되듯 일상이 무너지면 삶은 금방 피폐해진다. 자신만의 일상을 만들고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 바로 인생 3막이다. 만약 그 행동을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행동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은 아직 삶을 덜 살아 본 사람들이다. 어떤 행동도 주변에 피해를 끼치지 않고 아주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된다.

 

나는 매일 걷고, 글을 쓰고, 가끔 심리상담을 진행하며 살아가고 있다. 혼자 걷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걷기도 한다. 최근에는 ‘걷고의 걷기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걷기의 중요성과 걷기 명상을 안내해서 사람들이 걷는 시간만이라도 편안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다. 물론 함께 걸으며 나 역시 즐거움도 느끼고 있고, 이를 계기로 게으름도 다스리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음악 듣는 취미를 키워나가고 있다. 걷기, 글쓰기, 상담, 명상, 음악감상이 내가 하는 일이고 하고 싶은 일이다. 다행스럽게 음악 감상을  빼고는 꾸준히 해 온 익숙한 일이다. 이런 일은 별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고 창조적이거나 생산적인 일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을 매일 반복하고 있을까? 노인들이 아침에 일어나 마당 쓸기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다. 적어도 나의 마음 마당을 폐허로 만들고 싶지 않다. 정갈한 나의 마당에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놀 수 있다면 더욱 고맙고 행복한 일이다. 나의 행복과 사람들의 행복이 만나는 접점이다. 그래서  무의미하게 보이는 이런 일상을 꾸준히 반복적으로 하고 있나 보다. 늘 왜 이런 일상을 꾸준히 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문을 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쓰며 그 답을 찾았다. 나의 마음 정원을 정갈하게 가꾸는 일이 내가 할 일이고, 그 정갈한 마당이 ‘참 나’이다. 그리고 그 마당에서 사람들이 함께 춤추고 뛰어놀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도 없다. 결국 나의 이런 일상은 나와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무의미하게 보이는 유의미한 일이다. 내가 꾸준히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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