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에는 어떤 기능이 있을까? ‘기능’이라는 단어보다는 ‘목적’이 더 어울릴 수도 있겠다. 아니면 ‘왜 걷는가?’라는 질문이 맞는 표현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걷기가 어떤 특별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닐 수도 있고, ‘왜 걷는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굳이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그간 생각해 낸 걷기의 기능을 한번 정리해 본다.
제일 먼저 떠오른 기능은 건강이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또는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걷는다. 최근에 동산이나 공원을 걷다 보면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 TV에서 ‘맨발 걷기의 효과’에 관한 프로그램을 상영한 이후부터 갑자기 맨발로 걷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이전에도 가끔 맨발로 등산하는 사람들을 본 적은 있지만 매우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요즘은 맨발 걷기 열풍이 불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맨발로 걷고 있다. 맨발로 걷든, 신발을 신고 걷든 걷기의 기능 중 하나는 건강을 유지하거나 회복하는 것이다. 하루에 30분 이상 매일 걸으면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자료를 읽은 기억도 있다. 걷기 동호회 활동을 오랫동안 하면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몸의 건강 회복이 마음의 건강으로 연결된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이들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대화도 걷기의 기능 중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능이다. 걷기 동호회에 처음 나온 사람들도 같은 동호회라는 소속감이 주는 편안함이 있어서 그런지 쉽게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눈다. 굳이 특정 주제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일상을 공유하거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공유하며 함께 웃고 대화한다. 또한 길을 걸으며 생긴 에피소드는 뒤풀이에서 아주 즐거운 화젯거리가 된다. 길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기억나기보다는 길 위에서 만들어진 에피소드 덕분에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예전에 걸었던 길을 걸으면 그 길을 함께 걸었던 사람들의 표정과 나눴던 얘기, 그 당시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걸으며 대화하고 웃고, 걷고 나서 뒤풀이 장소에서 떠들며 웃고, 걸은 후 길에서 만들어진 에피소드를 떠올리며 웃는다. 이 멋진 추억은 나중에 걷기 힘든 상황이 되었을 때 웃음과 즐거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산티아고 길은 순례길이다. 순례도 걷기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성인의 유해가 묻힌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으며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고,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고,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 위한 기도를 하고, 모든 생명의 행복과 건강을 기원하기도 한다. 산티아고 프랑스 루트 500km 지점에 철탑이 있다. 이 길을 걷는 순례자들은 그 철탑 아래에 쌓여있는 돌무덤 위에 자신의 소망을 담은 편지나 물건을 올려놓으며 기도한다. 500km를 참회와 용서, 화해의 기도를 하며 걸어온 사람들의 소망을 하느님께서 당연히 이루어 주실 것이다. 일본에는 시코쿠 사찰 순례길이 있다. 시코쿠 섬을 한 바퀴 돌면서 88개 사찰 순례를 하는 것을 ‘오헨로’라고 한다. 이 길은 약 1,200여 년 전에 홍법대사가 순례길을 만들었다고 한다. 삿갓을 쓰고 지팡이를 집고 걷는 것이 전통으로 알려져 있다. 고(故) 최인호 작가가 쓴 ‘길 없는 길’이라는 책이 있다. 경허선사의 발자취를 따라서 선사의 일대기를 쓴 책이다. 경허선사는 한국의 선맥을 이어 주신 큰 스님으로 이 스님 덕분에 한국은 선불교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언젠가는 경허선사가 머물렀던 사찰 순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의미 있는 순례가 될 수 있다. 꿈은 갖고 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니 그 말을 믿고 계속 이 꿈을 간직할 것이다.
걷기는 기능 중 하나는 ‘저항과 자기표현’이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는 ‘삼보일배’가 자기표현의 수단이 되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한다. 환경단체들은 환경을 지키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기 위해 ‘삼보일배’를 한다.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 저항 운동으로 소금 행진을 이끌었다. 영국이 인도에서 채취한 소금을 영국으로 운송해 가공을 마치고 인도에 엄청난 세금을 부과해 되팔았다. 간디는 이를 간파하고 소금을 인도인의 손으로 만들기 위해 바다로 향한 것이다. “간디는 1930년에 1월 30일에 아슈람에 있던 79명과 함께 행진을 시작해서 24일간 390km를 걸었다. 간디는 이때 61세의 적지 않은 나이였다. 남쪽 단디 바닷가에 도착해서 한 줌의 소금을 집어 들었다.” (네이버 블로그 인용)
상황 극복도 걷기의 기능 중 하나다. 수많은 인생의 굴곡 속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진 경우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있다. 가만히 있자니 무기력에 빠질 것 같고, 주변 시선도 신경 쓰이고, 자신이 마치 잉여인간처럼 느껴질 경우도 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걷기다. 그리고 걷기를 통해 극복해 나간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정년퇴직 즈음에 아내도 죽고, 어머니도 돌아가신다. 정부에서 날아온 연금통지서를 받고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연금 받아 입에 풀칠하며 소파에서 TV나 보다 죽으라는 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삶의 무의미를 느낀 순간 조카의 방문으로 집을 비워준 채 바로 집을 나선다. 집에서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약 3,500km를 걸은 후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며 할 일을 찾게 된다. 아직 건강하고, 저널리스트로서 전문성도 있고, 경제력도 있고, 배운 학식도 있으니 자신이 갖고 있는 것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만든 것이 ‘쇠이유’라는 단체다. ‘쇠이유’는 ‘문턱’이라는 의미로 낮은 문턱만 넘으면 삶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의미를 지닌 명칭이다. 그 낮은 문턱조차 넘는 것이 어려운 청년들이 있다. 바로 청소년 범법자들이다. 이들이 쇠이유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멘토와 함께 약 3,000km를 걸으면 수형을 면제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자신의 무기력을 걷기를 통해 승화시킨 후 범법자인 청소년의 갱생을 위한 사회운동으로 만든 멋진 사례다. 2017년 산티아고 순례를 마친 후 그를 프랑스에서 만났다. 89세의 연세인 그의 손아귀 힘이 나보다 강해서 놀랐고, 은퇴자를 위한 아카데미를 구상하고 있어서 또 한 번 놀랐다.
걷기는 특히 홀로 걷기는 자아성찰과 사유의 중요한 기능이다. 홀로 걸으면 수많은 생각들이 떠오른다. 때로는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화도 떠오르고, 때로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걸으며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은 정화되어 자신의 참회로 이어지고 반복된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자아 통찰로 연결된다. 자연의 변화를 보며 무상을 체험하고, 자연 앞에 아주 초라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겸손을 배운다. 자연은 자연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우리는 우리 모습대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좀 더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다. 경험상 화가 많이 났을 때 두 시간 이상 걸으면 화는 저절로 사라진다. 심지어 왜 화가 났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화가 난 자신이 머쓱해지고 상대방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자기반성을 한다. 니체는 8시간 이상 걸으며 책 한 권을 쓸 내용을 정리했다고 한다. 루소도 대단한 걷기 마니아였고, 특히 홀로 걸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수많은 비난 속에서 스스로 사회와 격리시키며 자신의 사상을 굳혀 나갔다.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걷기 마니아인 이유는 걷기와 사유, 그리고 통찰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거리두기’도 걷기의 유용한 기능 중 하나다. 어딘가로 이동해서 물리적 거리감을 만들어내며 현실에서 벗어나 자유를 느낄 수 있다. 물리적 거리감은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어내며 현실과 자신을 격리시킨다. 바쁜 일상에서 못 느끼는 자유와 해방감을 걷기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다. 걷기 위해 이동하고 길을 걸으며 사회와 자신을 격리시키고, 그 이격 된 공간 속에서 자유롭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삶의 공간과 활력을 만들어 낸다. ‘거리두기’는 자신과 일의 분리다. 목적 중심의 일상에서 존재 중심으로 회복되는 매우 중요한 방편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와 성취를 동일시하며 성취를 위해 온갖 노력을 쥐어짠다. 자기는 자신이 이룬 성취의 주인이 아니고 성취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다. 자신이 주인이 아니고, 성취의 종과 노예가 되어 살아간다. 최근에 읽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 (톨스토이 지음)이라는 소설에는 자신의 성취와 자신의 존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서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
어떤 일이든 일 자체에 즐거움이 없다면 오랫동안 할 수도 없고, 흠뻑 빠질 수가 없다. 걷기의 기능 중 가장 중요한 ‘즐거움’이 있다. 걸으면 행복하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환희심이 올라온다. 무슨 특별한 상황이 만들어진 것도, 또 상황의 변화가 생긴 것도 아닌데 그냥 즐겁다. 마치 미친놈처럼 혼자 웃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스틱을 위로 들어 올리며 춤을 추기도 한다. 틱낫한 스님은 “무언가로 인해 마음이 소란스러울 때, 걷기를 통해 고요를 되찾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셨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걸으면 마음의 소란스러움이 저절로 가라앉게 되고, 소란스러움이 가라앉으면 저절로 평화가 찾아온다. 평화는 미소와 고요한 즐거움으로 나타난다. 이 외에도 걷기의 기능에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즐겁게 꾸준히 걷다 보면 걷기의 기능을 좀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것은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걷기의 즐거움’만 발견한다면 다른 것들은 언젠가는 저절로 앞에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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