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다. 특기라고 내세울 만한 것도 없다. 아마 그래서 자존감이 낮은 것 같다. 학교 시절 영어를 좋아했고, 주변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회사 입사도 영어 특채로 들어갔으니 제법 잘했던 것 같다. 외국인 회사에 근무할 때에는 노사 협의회 통역을 맡아서 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영어 한계를 잘 알고 있었다. 발음도 나쁜 편은 아니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지만, 청취력에 자신이 없었고, 어휘력에 자신이 없었으며, 표현의 한계를 많이 느꼈다. 남이 판단하는 나의 영어 능력과 나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영어 뉴스도 잘 들리지도 않았고, 외국 영화를 자막 없이 보기 어려웠다. 지금의 영어는 예전 영어 수준의 1/10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니 더더욱 영어를 잘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
그래도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영어였으니 일반적인 수준의 능력은 되었던 것 같다. 그 외에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딱히 남에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 불교에 관심을 갖고 책도 조금 읽고, 명상도 조금 수행했으니 일반적인 불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 외에 무엇이 있을까? 독서는 누구나 하는 일이니 굳이 독서를 취미나 특기로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했고, 상담심리사로 활동하고 있으니 상담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격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담 전문가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는 없다. 그냥 내담자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평범한 상담심리사다. 사회성이 좋은 사람도 아니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편도 아니다. 딱히 잘하는 것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부끄럽다. 그럼에도 60대 중반이 지금까지 살아왔으니 삶이 얼마나 고달팠을까? 대부분 사람들도 나와 같을까?
최근에 든 생각이 있다. 걷기와 발에 관한 얘기다. 나는 스스로 내가 잘 걷는다거나 발이 특별히 건강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근데 최근에 와서야 걷기를 무척 좋아하고 건강한 발을 타고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군대 시절 행군이 떠오른다. 입대 후 두 달 만에 동계 훈련이 시작되었다. 야간 행군을 30km 정도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졸병이었던 나는 소총 대신 10.5kg의 LMG(경기관총)을 메고 행군했다. 그 행군하는 시간이 내게는 아주 귀한 휴식 시간이자 선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모두 피곤해서인지 말을 걸거나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었다. 발에 물집이 잡혀 고생하는 병사들도 있었지만, LMG를 메고 걸어도 나의 발바닥은 너무 말짱했다. 동계훈련 마친 후 행군을 잘한다며 선임들이 인정해 주어서 나름 편안한 군대 생활을 할 수 있었다. 말년에 100km 행군을 할 때도 나의 발바닥은 너무나 말짱했다. 행군하는 시간이 내게는 가장 편안한 휴식 시간이었다.
지금까지 많은 길을 걸었다. 기억나는 길로서는 산티아고 순례, 서울 둘레길, 경기둘레길, 지리산 둘레길, 한라산 둘레길 등이 있다. 그 외에도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제법 많은 길을 걸었다. 하루에 50km를 11시간에 걸쳐 걸었던 적도 있고, 밤샘 걷기를 했던 적도 있다. 요즘도 혼자서 집 주변을 걸으러 나가도 최소한 10km 정도는 걷고 돌아온다. 그만큼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도중 휴식 시간에도 거의 앉지 않고 서서 잠시 간식을 먹거나 물을 마신 후 바로 걷는 편이다. 휴식 시간 없이 꾸준히 걷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걸으며 발바닥과 다리에 피곤을 느끼기는 하지만 단 한 번도 발에 물집이 잡힌 적은 없다. 그만큼 건강하게 타고난 발이다. 아직도 발의 아치는 예쁘게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언젠가는 가라앉아 평발처럼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잘 유지되고 있다. 발에 물집이 잡히지 않는, 즉 발로 인해 고통스럽지 않은 건강한 발을 갖고 태어난 것은 큰 복이다.
최근에 걷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잘 걸을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갖게 되었다. 물론 걸으며 누군가와 경쟁을 하거나 시합을 하지는 않지만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 속에 내가 빠지면 서운하다. 그만큼 걷기를 좋아한다. 누구에게도 좋아하는 크기 면에서 지고 싶지 않다. 걷기 동호회에서 활동하며 길 안내자를 하고 있다. 길 안내를 위해 사전 답사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안내 한 길을 걸은 사람들이 그 길이 인상적이었다는 얘기를 하면 괜히 으쓱해진다. 걷기를 통해서 비로소 나의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걷기를 통해서 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그 일을 통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그에 따른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무척 행복한 일이다. 건강한 발을 타고난 덕분에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되었고, 그 발 덕분에 나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걸을 것이다. 혼자서도 걷고, 사람들과 함께도 걸을 것이다. 걷기를 통해 심신이 허약한 사람들에게 건강을 되찾아 주고 싶다. 그들이 자신들의 발걸음으로 건강하게 앞으로 나아가는데 도움을 주고 싶다.
사람들에게는 타고난 최소한 한 가지 이상의 특기나 장점, 또는 강점을 갖고 있다. 타고난 능력을 잘 살리면 더욱 뛰어나게 그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찾지 않거나 계발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살게 된다면 그 능력과 잠재력은 사장될 것이다.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만의 강점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매우 평등하게 태어난다. 평등이 우수함으로 빛나거나, 평등이 열등으로 나타나느냐는 결국 자신의 책임일 뿐이다. 그럼에도 주변 환경을 탓하거나 불평불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지금 주어진 모든 상황과 여건은 결국 스스로 만든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잘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이 된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남보다 더 잘하는지를 찾는 작업이 두 번째 걸음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지금이라도 타고난 능력을 알게 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10년 이상 걷기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확인하게 된 사실이다. 좋아하는 일도 꾸준히 하지 않으면 그 힘을 잃게 된다. 10년이라는 세월의 힘이 나를 찾게 만들어 준 힘이 되었다. 걷기를 통해서 나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자 주변사람들의 고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걸으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는 발원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나의 길을 가기 위해서 또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이 두 가지는 실은 한 가지일 뿐이다. 나의 길이 주변 사람들의 길이 된다. 나를 위한 걷기가 주변 사람들을 위한 걷기가 된다. 나의 고통과 즐거움이 주변 사람들의 것이 되고, 그 반대도 그대로 성립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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