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와 거리: 20210708 – 202107012 43km
코스: 서울 둘레길 관악산 구간 외
평균 속도: 3.2km/h
누적거리: 4,407km
기록 시작일: 2019년 11월 20일
코로나로 인해 강화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오늘부터 시작되었다. 변이 바이러스의 영향과 백신 공급의 부족 등의 이유로 하루 확진자가 1,300명을 넘어서고 있다. 앞으로 2주간은 낮에는 4명 이상, 오후 6시 이후에는 세 명 이상 모임이 허락되지 않는다. 온 나라가 멈춘 느낌이다. 학교도 정상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자영업자는 더욱더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빨리 코로나가 물러나길 바랄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앞으로 우리는 코로나를 포함한 예상치 못한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수많은 바이러스 중 그나마 극복해 낸 것이 독감 바이러스 외에 한 두 가지 정도밖에 없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이미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백신이 관건이다.
어제 친구들과 서울 둘레길 일부 구간 중 석수역에서 사당역까지 약 13km 정도 걸었다. 비 소식이 있어서 날씨는 매우 습했고, 중간에 비를 만나기도 했다. 바람이 조금 불어오기는 했지만, 땀을 시원하게 식혀줄 정도는 아니었다. 무더운 날씨로 인해 몸이 많이 무거웠다. 석수역 진입로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등산 준비를 하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 모일 기회가 없어질 것에 대한 보상심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걷고 있다. 우리는 그들과 조금 거리를 두고 걸었다.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걷는 틈 속에 끼어 걷는 것은 그다지 유쾌한 일은 아니다. 호암산으로 가는 등산로도 있고 서울 둘레길도 조성되어 있지만, 초입에는 오르막 길을 제법 올라야 한다. 숨도 차고 금방 땀범벅이 된다.
호압사로 가는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실수로 그 길을 놓쳐서 호암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둘레길을 찾으려 해도 표식이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어떤 사람들이 왼편으로 난 내리막길로 가는 것이 보여서 따라가며 물었더니, 둘레길과 만나는 길이라 했다. 그 소리가 너무 반갑고 고마웠다. 길 안내자로서 친구들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편안한 길을 놓쳐서 힘든 길을 오르고 있었다. 너그러운 친구들은 덕분에 땀을 흠뻑 흘려서 몸이 가벼워졌다고 한다. 좋은 친구들이다. 호압사를 지나 서울대 입구 쪽으로 내려왔다. 길을 건너 관악산 진입로부터 관음사까지 가는 길이 무척 힘들었다.
사당역에서 뒤풀이를 거하게 했다. 함께 땀 흘리고 빗속을 걷고 습도가 91도에 달하는 산속을 걸었던 친구들과는 이미 전우가 되었다. 전우는 전쟁을 마친 후에는 진하게 한잔을 곁들여야 전우애가 더욱 돈독해진다. 마실 때는 즐겁게 마셨지만, 즐거움의 크기와 과음의 괴로움은 비례한다. 과음했던 탓에 오늘 하루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점심 식사 후 겨우 힘을 내서 약 두 시간 정도 상암동 공원을 걸었다. 땀 흘린 만큼 술을 마셨고, 걸으며 마신만큼 땀을 배출시켰다. 이제야 조금 균형이 맞는지 몸 상태가 조금 회복되었다. 길을 걸으며 어제 걸었던 느낌이 떠올랐다. 그리고 혼자 걸었다면 중간에 틀림없이 포기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던 것이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지만, 이 말은 진리다. 함께 걸으면 서로에게 의지를 하고, 위로도 하며 힘든 길을 끝까지 걸어갈 수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독불장군이 있을 수는 있지만, 결국 외로움에 빠지거나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곳이다.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사회와 조직이 있고, 나라가 있고, 세계가 있다. 독립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독립의 이유는 타인, 사회, 세상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다. 독립을 하게 되면 주변 사람들과 사회가 눈에 들어온다. 남의 고통이 결코 ‘남의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행복은 나눈 만큼 커진다고 한다. 자신만을 위한 행복은 자신의 범위를 벗어날 수 없고, 따라서 행복의 크기도 자신의 크기와 같을 수밖에 없다. 반면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게 되면 행복의 크기는 나눈 사람들의 범위와 크기만큼 확장된다. 봉사가 행복의 조건 중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나눔’이다. 이 ‘나눔’이 함께 가는 것이다.
함께 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마음가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상호 존중’이다. 나이, 성별, 직급, 사회적 지위, 권력, 명예로 인해 ‘상호 존중’이 아닌 ‘불합리한 갑을 관계’가 되어서는 함께 갈 수 없다. 사람마다 각자의 사회적 위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의 사회적 위치가 다른 누군가의 위치보다 높거나 낮지 않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오죽하면 ‘갑질’이라는 표현조차 하기 싫은 단어가 만들어졌을까?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랫사람 없다. 하지만, 가끔 뉴스에 나오는 꼴 사나운 사람들의 행태를 보면 그들에게는 오직 ‘갑’과 ‘을’만이 존재하는 것 같다. 영원한 ‘갑’은 존재할 수 없다. 그들 논리라면 ‘갑 A’는 누군가의 ‘갑’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의 ‘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상호 존중’이라는 단어는 그저 책에서만 나오는 단어일 뿐이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겉치레용 단어 일 뿐이다. 상호 존중하며 함께 살아가는 풍토가 조성되길 바란다. 너무 이상적일까? 나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상호 존중하는 태도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우선 자신을 존중하고 싶다. 어제처럼 과음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중이 아니다. 어떤 언행이 자신을 존중하는 것인지 잘 판단하고 행동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들을 존중하며 살고 싶다. 아내와 아내의 삶을 존중하고, 딸과 사위, 손주들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이미 성인이 된 딸과 사위의 삶에 참견하거나 쓸데없는 조언을 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손주들에게 먼저 살아봤다고 이런저런 불필요한 지시나 방향 제시를 하는 꼰대가 되고 싶지 않다. 친구나 선후배들을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상황과 상관없이 두루 존중하며 살고 싶다. 사회에서 만난 동호회 친구들이나 다양한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차별 없이 대하며 존중하고 살고 싶다.
상호 존중하는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잘 듣기’이다. 얼마 전 친구들 모임을 통해서 나 자신이 공감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담심리사이면서 사람들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며 자괴감에 잠시 빠진 적이 있었다. 내담자를 상담하면서 공감이 정말로 어렵다는 것을 점점 깨달아 가고 있다. 공감을 잘하지 못하면 남의 얘기를 평가나 판단을 하지 않고 잘 들어주면 된다. 근데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공감도 못하고, 남의 얘기를 잘 듣지도 못하는 상담심리사로서 매우 부적합한 사람이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밖에 없다. ‘집중해서 그냥 잘 듣기’이다. 마치 ‘듣기 명상’하듯 듣는 것이다. 쓸데없는 판단이나 평가도 내려놓고, 불필요한 조언이나 충고도 내려놓고, 그냥 귀 기울여 들으며 상대방이 내가 듣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듣는 것이다. 이것은 노력하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함께 가기 위해서는 ‘상호 존중’과 ‘잘 듣기’가 필수 요건이다. 굳이 남의 태도에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나 스스로 두 가지를 잘 지켜나가며 자기 수양을 하면 된다. 타인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자신은 스스로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사람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스스로 노력하고 변화해야 한다. 어제 길을 걸으며 좋은 가르침을 받았다. 함께 걸었던 전우들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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